'아스피린'에 숨겨진 이야기
‘아스피린’에 숨겨진 이야기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본디 농토(農土) 욕심이 많은 나. 이번에는 나의 ‘만돌이농원’이 위치한 곳보다 더 깊은 산골짜기로 찾아갔다. 그곳엔 남이 버려둔, 묵정밭이 있어서였다. 내가 이 골짝에 정착한 지도 벌써 15여년 되는데, 그때도 그 밭이 묵정밭으로 있었으니, 도대체 몇 년째 그 밭을 묵혀 두었을까? 해서, 한마디로 마련 없었다. 꽉 들어찬 잡목·칡덩굴·사위질빵·찔레덤불·나무딸기 등을 모조리 베어내고 걷어내는 등 거의 하루 종일이 걸렸다. 그러자 드디어 밭이 거의 본디 모습을 드러냈다. 곧 봄이 되면, 그 밭에 새롭게 잡초와 잡목이 돋아날 테지만, 나는 그것들을 보이는 족족 몇 종류의 제초제로 다스리면 될 것이다. 경험으로 그러한 걸 그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리하고서는 유월 하순께 들깨모를 빼곡 이식할 요량이다.
하지만, 나한테 제법 커다란 숙제가 하나 남아 있다. 줄잡아 스무 살은 될 성 싶은 버드나무가 그 밭 한 가운데에 떠억 버티고 서 있다. 그 나무는 크게 그늘을 지을 테고, 내가 소망하는 작물인 들깨가 그 그늘에 치여 제대로 자라지 않을 것은 뻔하다. 사실 내가 톱의 날을 새파랗게 쓸어갔지만, 흉고직경(胸高直徑; ‘수목의 가슴높이 지름’을 임학도였던 우리는 그렇게 부른다.) 50센티가 넘는 그 나무를 베기에 엄두가 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위험도 도사리고 있었기에 후일을 도모하며 일단은 보류해두고 돌아올밖에.
지금은 다시 꼿꼿한 수필작가의 밤, 수필작가의 컴퓨터 앞. 그 버드나무를 어떻게 처치할까 궁리하자니, 엉뚱한 생각이 더불어 일어난다. 그곳에 자기 이웃들과 달리, 커다란 버드나무가 주인행세를 하게 된 이유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앞이 확 트이지 않은 협곡(峽谷)이긴 하지만, 해서 볕도 잘 드는 곳도 아니지만, 맑은 개울물을 끼고 있어,그 녀석이 ‘우점종(優占種)’으로 자라고 있다는 사실. 느닷없이 수목학을 강의하셨던 노은사(老恩師) 백승언 교수님의 더듬거리는 목소리가 떠오를 게 뭐람?
“자-자네들 말이여, ‘버드나무’란 나무는 본디 없는 거여. 버드나무과(-科) 내지는 버드나무류만 있는 거여. 그리고 버드나무속(-屬)을 학명으로 ‘salix(사릭스)’라고 혀. 희랍어로 ‘salix’는 ‘물가를 좋아해서 물가에 잘 자라는 나무’란 뜻이여.”
곧 어떤 방법으로든 나는 그 나무를 그 밭에서 몰아내겠지만, 물가를 그토록 좋아하는 그 버드나무 종족들이 우리네 인간들한테 끼친 영향이 얼마나 컸던지에 관해서만은 내 신실한 애독자들한테 보고(報告) 아니 할 수가 없다. 더더욱 내가 그 누구도 아닌 임학도 출신의 수필작가인 까닭에. 결론부터 이야기하자. 버드나무의 껍질에서 추출한 물질은 전 인류 보편적인 복용제이며 거의 만병통치약에 해당하는 ‘아스피린(Aspirin)’이라는 점.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고 지낸다. 하지만, 그 탄생 비화(秘話)까지 속속들이 알고 지내는 분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 글을 쓰고자 이런저런 자료를 챙기다가 그 많은 자료 가운데서도 맘에 쏙 드는 기사(記事)가 있어, 굳이 내 이야기로 채우느니 아래와 같이 베껴다 전하기로 한다. 내가 요즘 들어 즐겨 쓰는 ‘꼴라주 형태의 수필’ 방식이다.
제목 : 버드나무에서 나온 120조원짜리 회사
글쓴이 : 아시아경제 전필수 기자
글 쓴 날 : 2014.1.30.
‘시가총액 810억유로,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120조원짜리 글로벌 제약사 바이엘의 시작은 독일의 작은 염료제조 회사였다. 1863년 8 월 프리드리히 바이엘(Friedrich Bayer)과 요한 베스코트(Johann Friedrich Weskott)가 설립한 프리드리히 바이엘(Friedrich Bayer) 이 전신이다. 출발 당시 직원은 이들을 포함해 단 세 명에 불과했 다. 가내 수공업 수준에서 출발했던 이 회사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 하는데 초석을 다진 제품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아스피린'이란 약 이다. 1897년 바이엘사의 연구원이었던 호프만 박사가 만든 아세틸 살리실산으로 만든 아스피린은 1899년 특허를 등록하고, 전 세계시 장을 석권했다. 1955년 바이엘의 아스피린은 전 세계 90개국에서 110억 정 이상 판매될 정도였다. 이 아세틸살리실산을 개발한 배경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국 내 1세대 바이오 담당 애널리스트에 따르면, 독일 모지역에 마시기 만 하면 웬만한 병이 다 낫는 샘물이 있었다. 소문만큼 실제 효능 도 탁월해 과학자들이 이 샘물의 효능의 원인을 찾기 위해 연구를 할 정도였다. 이때 한 과학자가 발견한 것이 이 샘물에 버드나무 가지가 드리 워져 있다는 점이었다. 버드나무 껍질은 고대부터 진통제로 활용돼 온 물질이었다.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에 기술돼 있으며, 그리스 의 의성(醫聖) 히포크라테스는 해열·진통을 위해 사용했다. 호프만 박사는 이 버드나무 껍질 즙을 화학적으로 합성해 아세트 살리실산, 즉 아스피린을 개발했다. 아스피린이란 이름은 주성분인 아세트산(acetic acid)의 a와 버드나무의 학명인 스피라이아 (spiraea)의 합성어다. 버드나무 껍질 추출 성분으로 만든 약이다. 수천 년 역사를 자랑하는 원료처럼 아스피린의 생명력도 다른 빅 히트 약품들에 비해 더 긴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다. 당초 해열진통 제로 세계시장을 석권했던 아스피린은 심혈관 질환 예방약으로 새 로운 효능이 밝혀지며 무려 3세기에 걸쳐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다양한 해열진통제들이 쏟아지면서 아스피린의 시대가 저물던 1978년 캐나다 연구팀이 "아스피린이 뇌졸중 위험을 31% 떨어뜨리 고 관상동맥 질환으로 인한 발작을 줄인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것이 반전의 계기가 됐다. 이를 근거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1980년 아스피린을 ‘심혈관 질환 예방약’으로 승인하면서 화려하 게 재비상할 수 있었다. 현재 바이엘그룹의 전체 매출액은 400억 유로 수준으로 이중 아 스피린의 비중은 크지 않다. 하지만 아스피린이 없었다면 전 세계 에 직원수 11만명을 거느린 지금의 바이엘은 없었을지 모른다.‘
다시 나의 이야기로 채워나가겠다. 위 기사에 나오는 ‘호프만’ 박사는 효자(孝子)였던 덕분에 아스피린을 개발해 낼 수 있었다. 그는 부친이 신경통으로 오래도록 고생하자, 그 통증을 완화시킬 약을 찾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제라르’라는 이의 논문을 우연히 읽게 되었단다. 거기서 영감을 얻어, 아세틸살리실산’을 떠올리게 되었고,‘스피라에아 울마리아(Spiraeaulmaria; 조팝나 무의 일종)’에서 추출한 물질로 약을 지어 부친께 드려보았다고 한다. 그러자 그 약을 먹은 그의 부친이 통증 없이 하룻밤을 보내 게 되었다는데... . 사실 위 기사와 달리, 허준 선생이 적은 그 유 명한 의학사적 <<동의보감>>에도 버드나무 껍질과 잎의 다양한 효 능을 아주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고 한다. 버드나무의 효능이야말 로 아주 광범함을 알 수 있다. 숫제 버드나무는 만병통치약이라고 할 만하다. 이순신 장군이 나이 스물여덟에 무과(武科)에 응시하여 마지막 관문인 말타기에서 낙마하여 큰 부상을 입자, 버드나무 가 지를 꺾어 껍질을 벗겨 다리를 처매고서 끝까지 응시하였으며, 그 상처 부위가 나았다는 이야기도 우린 익히 알고 지낸다. 어디 그뿐 인가. 최초로 달나라에 착륙했던 암스트롱 등 미국 과학자들도 버 드나무 추출물로 만든 아스피린을 필수품으로 달나라에까지 지니고 갔다지 않은가. 나의 신실한 애독자 여러분들께서도 아스피린의 범 용적(汎用的) 효능, 아니 버드나무 추출물의 폭넓은 효능에 관해서 는 따로 한번 살펴보시길 바란다.
이제 내 이야기는 정리단계에 이른다. 지난날 내가 대학에서 그 어느 학문도 아닌 임학을 전공했던 걸 늘 자랑스럽게 여긴다. 세상 의 그 어느 나무라도 인간한테 이롭지 않은 나무가 없으니까. 아낌 없이 주는 이가 바로 나무라는 사실. 그러한 나무 가운데서도 버드 나무는 좀 더 특별하다는 거. 유난히 물가를 좋아해서 ‘salix'란 학명까지 지닌 나무. 실은, 내가 그 묵정밭마저도 욕심낸 데는 들 깨농사 하나 때문만은 아니다. 그 밭을 쓸어안고 사시사철 맑은 개 울물도 흐르고 있으니... . 그 밭 한 가운데에 떠억 버티고 선 버 드나무 못지않게 그 맑디맑은 개울물이 탐나서, 그곳에다 제2의 ’ 만돌이농원‘을 꾸미고 싶어서다. 마음 같아서는 그 밭주인을 어찌 어찌 꼬드겨 밭을 통째로 사고 싶지만, 돈 냥께나 있는 양반이라 쉬이 팔려고 하지 않는 게 탈이다. 대신, 그 밭주인이 내어놓으라 고 하기 전까지는 그 밭을 점유(占有)할 요량이다. 물론, 위에서 주욱 적은 대로 버드나무의 그 폭넓은 효능을 모르는 바 아니지 만, 아스피린의 위력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염치 무릅쓰고 그 오 랜 동안 그곳을 자기 영토라고 믿으며 서 있던 버드나무더러 이젠 그 자리를 내어놓으라고 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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