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작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윤근택 2015. 2. 24. 05:58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내 신실한 애독자 여러분께 미리 밝혀둘 게 있다. 지금부터 내가 펼칠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정리되지 않은 내 얕은, ‘천박(淺薄)생각일 따름이라고.

      겨우내 내내 얼어붙은 땅이 녹기만을 기다렸다. 만돌이 농장의 앞밭 한 켠에 자리한 5평가량 되는 비닐하우스가 흉물스러워, 너널너덜한 비닐을 걷어치우려고 그렇게 별렀던 것이다. 사실 그 동안 아내의 성화도 어지간하였다. 바야흐로 해동(解凍)이 되어, 오늘에야 드디어 비닐을 다 걷어 불살랐다. 이제 철골(鐵骨)만 앙상히 남았지만, 내 속이 다 후련하다. 나는, 흔히들 2년은 멀쩡하게 쓸 수 있다고 하여 이름 붙인 장수(長壽)비닐을 덮었고, 그것들 잔해가 세 겹이나 되니, 줄잡아 6년 동안 그곳에다 비닐하우스를 지어두고 있었던 셈이다. 창고삼아, 온상삼아 요긴하게 써왔던 비닐하우스. 하지만, 따로 창고를 짓고, 헛간도 지은 관계로, 비닐하우스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해 있었다.

      지금은 다시 수필작가의 농막(農幕) . 다시 내다보아도 내 속이 후련하다. 그런데 느닷없이 살아생전 내 어머니의 모습과 말씀이 떠오를 게 뭐람?

      근택아, 지랄도 이런 지랄이 없제(없지)? 이 무슨 얘수(여우) 같은 짓이고(짓인가)? 묻었다가 파냈다가를 이날 이때까지 이 에미는 도대체 몇 차례나 했겠노(했겠느냐)?”

      백발이 성성하고 허리가 편찮은 노파(老婆)는 그렇게 말하면서, 젊은 아들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멋쩍게 웃었다. 당신은 말이 평토(平土) 작업이지, 잡은 괭이에 하나도 힘이 실리지 않았다. 우리 쪽 말로, 그저 흉내만 내고 있었다. 참말로, 당신은, 당신의 부지런하고 성미가 불같은 남편이자 내 아버지인 분의 성화에 못 이겨, 마지못해 그 일을 편찮은 몸으로 하게 되었음이 분명하다.

      대체, 무슨 일을 모자(母子)가 함께 하였냐고? 그 해 전년(前年) 초겨울에, 내 아버지는 온 식구가 함께 겨우내 먹을 를 묻되, 양지바르고 꺼내먹기 편한 곳에다 무구덩이를 파고 묻고자 했을 법. 해서, 당신은 습관대로 고향집 마당 앞 싸리울타리 너머 임하댁(그 대 택호임.)’ 밭에다 커다랗게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다 무를 차곡차곡 쌓고, 그 위에다 굵직한 작대기를 어긋어긋 걸친 다음, 그 위에다 솜씨 좋게 짚 등으로 덮고 흙을 마치 봉분(封墳)처럼 떠 얹었을 것이다. 사실 나의 애독자들 가운데 웬만한 시골 출신인 분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무구덩이임을 아시겠지만, 도회지 출신 분들의 이해를 돕고자 다소 장황히 설명한 것이니, 두루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해동이 되자, 내 아버지는, 당신만은 여전히 펄펄해서(?) 지게를 지고 들에 가면서, 노쇠한 당신 아내한테 그러했던 무구덩이를 뭉개어 원상복구하라고 일렀다는 거 아닌가. 이런 분부가 분명 있었을 법.

      봄이 되어, 곧 임하영감이 밭갈이를 할 텐데, 오늘은 () 없어도그 일을 ... .”

      내 어머니의 그 날 그 쓸쓸한 표정과 그 혼잣말 같은, 맥없는 말을 나는 앞으로도 잊으려 해도 차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내 어머니는 끝도 밑도 없이 반복되어 온 당신의 삶, 그 고달팠던 70여년의 여정을 시골 할머니답게 그렇듯 명쾌하게 술회(述懷)하였으니까! 연세가 들어갈수록 육담(肉談)도 퍽이나 늘어났던 당신. 사실 시골 어디를 가나, 준영구적으로 쓰기 위해 무구덩이를 만드는 집은 거의 없다. 대개가 내 아버지, 내 어머니처럼 묻었다가 꺼냈다가를 반복하게 된다.

      오늘 내가 비닐하우스의 비닐을 벗긴 일과, 그날 우리 모자가 무구덩이를 다시 메운 일이 크게 다르지 않다. 분명 유사성을 지닌다. 그것은 단순히 동일한 일의 반복, ‘다람쥐 쳇바퀴 돌듯의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채우고 비우고의 반복이라는 사실. 실제로, 우리네는 거의 유사한 경험을 지녔다. 우리네 변덕은 어지간하다. 휑하던 들판에다 집을 짓고, 이런저런 부속건축물도 짓고, 방마다 곳간마다 온갖 아기자기한 가구 등으로 채우고 나면, 금세 풍요롭게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 포만감 내지 풍요감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시나브로 그 가구 등에 싫증을 느끼거나 번거롭다고 느끼게 된다. 그러면 이번에는 그것들을 정리정돈이란 이름으로 말끔하게 치우고 나면, 속이 후련해진다. 마치 오늘 내가 6년여 만에 비닐하우스를 걷어내면서 느낀 것처럼. 그러한 걸 내 어머니는, 그날 아주 짧디짧은 말로 그렇게 압축해서 표현한 듯하다.

      이제 내 이야기는 한 걸음 성큼 더 앞으로 나아간다. 감히 말하건대, 나의 비닐하우스 건()과 내 어머니의 무구덩이 건은 공()히 불가(佛家)에서 이르는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色不異空 空不異色,色卽是空 空卽是色).’을 떠올리기에 족하다. 이미 첫 단락 도입부에서 내가 밝혔듯, 어디까지나 내 얕은 생각임을 다시 한 번 환기하면서... . 없던 곳 즉 에 비닐하우스가, 무구덩이가 생겨났다. 그것이 바로 이다. 하여, ‘空卽是色이다. 그러고도 비닐하우스와 무구덩이를 허물고 짓고를 반복하니, 불가에서 가르치는 그 구절 그대로 아니냐고?

      어디 그것뿐인가. 비닐하우스와 무구덩이의 생성소멸은 숫자와도 통한다는 것을. 고대 마야인들은 이 지구상에서 숫자 개념이 대단히 뛰어났다고 전한다. 그들이 최초로 고안해 내었다는 숫자 ‘0’의 개념. 사실 그들의 우주관은 생성과 소멸의 반복이라고 알려져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들은 밀림지대에서 옥수수 화전민(火田民) 생활을 했다니, 불을 질러 밀림이 타버린 상태를 ‘0(zero base)’로 보았지 않겠나 싶다. 그리고 생성을 ‘1’로 보았을 것도 같고. 실제로, 숫자개념 가운데 ‘0’의 개념은 수학적으로도 대단한 의미를 지녔다고 한다.

      내 이야기는 점입가경으로 치닫는다. 비닐하우스와 무구덩이 생성소멸의 반복은, 그리스인들의 우주관인 카오스(chaos; ‘혼돈을 일컬음.)‘코스모스(cosmos; kosmos; ‘일체로서의 질서로운 우주뜻함.)‘까지를 생각하게 한다. 사실 카오스는 숫자 ’0‘과 통하며, 코스모스는 숫자 ’1‘과도 통한다. 여기서 ’1‘은 변하지 않는 수 즉, ’상수(常數)‘에도 맞닿아 있는 성싶다. 물론, 이 상수 ’1‘ 하나 가지고도 질량 불변의 법칙이니 에너지 불변의 법칙이니 모두를 쉽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고. 나름마다 보기에 따라서는,’없는 것이 있는 것이요(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이요), 있는 것이 곧 없는 것이다(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에까지 닿아 있음을. 한 쪽을 손가락으로 누르면, 반대쪽이 부풀어 오르는 이른바, ’풍선효과같은 거.

      고대 마야인들이 발견한(?) ‘소멸의 개념내지 제로 베이스 개념인 숫자 ‘0’은 현대에 이르러 여러 과학자들한테 대단한 영감을 준 게 사실이다. 이 역시 어디까지나 내 천박한 생각일 따름이다. 바로 디지털(digital)’ 개념이다. 이는 아날로그 개념과 달리, ‘0’‘1’의 부호만이 끝없이 이어지는 걸 말하지 않은가. 이 디지털 개념이야말로 현대사회를 거의 지배한다고 보면 옳다. 전기신호 내지 전자신호의 단속(斷續) , ‘없고 있고만 존재할 뿐 더 이상의 그 무엇도 없다.

      이제 뒤죽박죽 내가 위에서 흘려놓은 이야기들을 과감히 그러모아야겠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했던가. 우리네가 흔히 그 양반의 생각은 거의 철학적이다.”라고 쓰는 말, 실상 그것은 그리 대단한 게 못 된다는 거.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살아가면서 문득문득 무질서하게나마 어우러지는 그 생각, 그것이야말로 살아있는 철학이 아닐까 하고서. 나아가서, 모든 학문이 세밀하게 분화(分化)하기 이전에는 큰 덩어리 덩어리로만 지어졌다는 거.

      요컨대, 내일 새벽이면 또다시 세면대 앞에서 나는 이러한 생각을 하며 면도할 것이다.

    매일 하는 세수와 면도, 하루 더 한들 어때? 살아생전 내 어머니가 말년에 그렇듯 나직 탄식했지만, 삶이란 어차피 단순반복인 것을. ’

 

 

    창작후기)

     하고픈 이야기는 참 많은데... . 내가 못다 한 이야기는 독자님들이 채워 읽어주시길... .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한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 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