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작

책상서랍을 정리하고

윤근택 2015. 2. 26. 01:53

 

책상서랍을 정리하고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모처럼 내 농막 안 책상서랍을 정리하였다. 아울러, 냉장고의 안도 일제히 정리하였다. 사실 나의 아내는 여성이다 보니, 나보다 본디 더깔끔이라서 어쩌다 이곳 농막에 들르면, 서랍[舌盒]이며 장롱이며 문갑(文匣)이며 온 데다 양말은 양말끼리, 팬티는 팬티끼리, 일회용라이터는 일회용라이터끼리... 내가 꺼내 쓰기에 용이토록 가지런히 넣어두게 되는데, 그렇게 한 것이 오히려 내가 찾기에 불편할 적도 있다. 아내한테는 다소 미안한 이야기지만, 앞으로는 주로 사용하는 내가 그런 것들을 손수 정리하도록 관두었으면 좋겠다.

      그건 그렇다 치자. 오늘 책상서랍 등을 정리하다가, 우리네 조상들은 참으로 편리한 물건을 고안해내었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언뜻 생각하면, 책상서랍이든 문갑이든 장롱이든 방안의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듯하나, 그것들이 있어, 온갖 잡다한 것들을 차곡차곡 넣음으로써 오히려 공간을 넓게 쓸 수 있으니,참으로 묘한 일이다. 그 많은 옷가지를 장롱 속 등에 간수치 않고, 벽 못걸이에 주욱 걸어두는 걸 한번 상상해보자. 그러면 얼마나 어지럽겠는가. 하여간 여닫이즉 서랍장은 신통방통하다.

      이번엔 문득 지난 사반세기의 내 책상서랍이 떠오를 게 뭐람? 나는 사반세기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참말로 서랍정리를 자주, 그것도 썩 잘 하였다. 역마살(役馬煞)이 끼어서였던지, 어느 한 자리에서 2년을 채 견디기 힘들었다. 해서, 상부 인사부서에다 통사정하다시피하여, 남들이 근무하기를 꺼려하는 오지(奧地)로 오지로 전근을 희망했다. 자연히 현 근무지에서 떠날 적에도 책상과 책상서랍을 정리했으며, 새 근무지에서도 전임자(前任者)가 쓰던 책상과 책상서랍을 내 방식대로 꽤나 깔끔하게 정리정돈하곤 하였다. 돌이켜보니, 그러했던 나의 행태(行態)매너리즘 극복과 깊은 관련이 있었던 거 같다. 사실 문방구는 문방구끼리, 플로피 디스켓(당시는 ‘USB’가 아니었다.)은 플로피디스켓끼리, 업무지침서는 업무지침서끼리... 삼단(三段)의 서랍장에다, 심지어 찾음표[[見出紙]까지 붙여 가지런하게 넣었던 기억. 실제로, 월급쟁이가 한 자리에서 마치 붙박이인양 말뚝인양 지내면서, 같은 일을 반복한다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면 그가 속한 조직은 그로 하여금 나태해지게 하기 십상이다. , 그로 하여금 매너리즘에 빠지게 만든다는 뜻이다. 하여간, 나는 스스로 그처럼 지루한 짓(?)만이라도 피하고자 애썼던 셈이다. 그래서인지, 내가 뜬 자리의 후임자(後任者)로부터, “그 자료 어디에서 찾을 수 있어요?” 혹은 그 열쇠 어디에 두었어요?” 등의 전화 따위를 대체로 받지 않았다. 후일 내가 여러 직원들을 거느리는, 직장 내 중간책임자가 되었을 적에도 늘 다음과 같이 노래한 편이다.

      "나는 조선 행정(, 사무)’ 별 것 없다고 봐요. 모두 정리정돈에서 시작해서 정리정돈으로 끝난다고 믿어요. 여러분의 책상서랍 정리정돈 상태를 불시에 점검하겠어요. 여러분 유고시에라도 남이 곧바로 대무(代務)를 할 수 있도록 해두세요.”

      그렇게 신신당부했음에도, 아니 되는 직원은 끝까지 아니 되었다. 내가 대구에 소재한 어느 전화국에서 총무과장으로 지냈던 때다. 한 기수(期數) 입사 후배인 OO’ 주임은 정리정돈 아니 하는 데는 선수였다. 마음 씀씀이는 그 누구보다도 뛰어났던 그에게 서무(庶務)를 맡겼는데, 그는 자신이 작성한 서류 하나를 찾는 데 무려 20여분씩이나 걸리곤 하였다. 우리는 그와 같은 문서관리 상태를 배추쟁이(배추장수) 문서라고 부르곤 하였다. 내가 왜 케케묵은 지난날의 이야기를, 그것도 남의 험담 같은 이야기를 내 신실한 독자님들께 이렇게 새삼 하는 걸까?

      진짜로 들려드릴 이야기는 잠시 미루어두자. 대신, 정리정돈의 달인(?)들부터 소개해야겠다. 적어도 내가 보아왔던 이들 가운데 빼어난 정리정돈가는 배관공(配管工)과 통신선 가설요원이더라는 거 아닌가. 여러분들께서도 자주 보았겠지만, 고층 아파트 외곽에는 도시가스관이 질서정연하게 다발로 올라가고 있다. 그 도시가스관은 큰 다발로 올라가다가 집집이 분기(分岐)하되, 90도로 절도있게 꺾여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기술자의 혼이다. 그런가 하면,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천정을 쳐다보면, 시렁[rack;]에 얹힌 통신 케이블을 보게 될 텐데, 그것들이 어찌나 질서롭게 달려가는지 거의 예술의 경지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정리정돈의 요체는 계통분류내지 분류. , ‘끼리끼리가 핵심이다. ‘칠칠하다는 말은 야무지고 반듯한 걸이르는 말, ‘칠칠맞다혹은 칠칠찮다는 말은 야무지고 반듯한 데가 없다는 말. 우리네 인류 가운데 칠칠하게’, 끼리끼리에 관한 한 가장 위대했던 이가 따로 있다. 그가 바로 스웨덴의 린네(Carl von Linn‘e, 1707~1778)’. 그는 모교인 웁살라대학에서 수학과 의학을 강의하고 있었는데, 그는 식물에 환장해서(?) 식물학 교수가 강의 펑크를 내자, 대타(代打)를 치면서 유명해졌고, 수강생들이 교양과목 선택으로 구름같이 몰려들었다는 일화도 남겼다. 보다는, 그가 1753년 출판한 <<식물의 종()>>을 통해, 이른바 이명법(二名法)’을 세상에 선보였다는 사실. ‘>>>>>이라는 분류단계에서 식물마다 을 구분해서 쓴 걸 이른다. ‘은 이탤릭체로 쓰되, 대문자로 시작하는 명사로, ‘은 이탤릭체로 쓰되, 소문자로 시작하는 형용사로(특징적인 사항 적기 위함.), 그리고 맨 나중에다 최초 명명자를 ‘Linne’식으로 적은 거. 사실 그의 업적은 대단하다. 이 지구상의 식물 가운데 그가 최초로 명명한 학명(學名)’이 거의 대부분일 정도로.

      이번에는 관공서나 회사의 부서명도 분류학에서 이르는 >>>>>분류학의 개념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 ‘>>>등으로 되어 있으며, 상하위부서간 소위 위계질서(位階秩序)’라는 게 엄존한다는 점을 놓칠 수 없다. 위계질서야말로 정리정돈과 통하는 말이다. 어느 조직이든 사닥다리 구조계제(階梯; stage; step)’ 내지 체계(體系)’가 분명 있게 마련이다. 보고채널 역시 상위부서로, 차상위부서로, 차차상위부서로 이어지는 것이고. 그러함에도 뒤죽박죽이면, ‘콩가루집안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이제 내가 위에서 한 때 부하직원이었던 OO’ 주임을 왜 새삼 비난했던지에 관한 진짜 이야기를 들려드릴 차례다. 그는 린네가 창안한 이명법의 원리를 업무에 그대로 적용하지 않음으로써 그처럼 혼돈에 빠졌던 것이다. 가령, ‘가을 체육행사란 문서를 작성했으면, ‘행사진행이란 파일명의 파일에 철()했어야 옳았다. 물론 파일명도 본인만이 아닌, 타인도 금세 알 수 있는 이름으로 정했어야 옳았다. 나의 이 이야기는 많은 수필작가들과 수필작가 지망생한테도 예외일 수 없다. 자기가 적는 작품의 제목이야말로 파일명에 해당하며, 린네의 속명(屬名)’에도 해당한다는 것을. 사실 그 책이나 그 글에 담긴 내용보다도 제목만 뛰어난 경우도 많았음을 개탄한다. 주 아무개가 놓친 게 하나 있다. 그는 체계적인 사고또는 사고의 체계를 확보하지 못했다. ‘논리학에서 이르는 개념을, 특히 그 가운데서도 상위개념하위개념만 제대로 익혔더라면, 그러한 불상사는 진작에 피했을 것이다. 이 점 또한 많은 수필작가들과 수필작가 지망생들도 자유로울 수가 없다. 글쓰기에 필수적인 ()’()’의 개념과도 별개가 아니니까. 사실 나는 이 체계적인 사고를 글쓰기에 들어가서는 단락(段落)의 개념으로 바꾸어 말하곤 하였다. “단락은 통일된 생각의 덩어리이다.”라고 하면서까지. ’칠칠맞은 글이 되지 않으려면, 단락의 개념을 정확히 알아, 그것을 실천해야 한다.

      이제 두서없는 나의 이야기를 총정리해 볼까 싶다. 서랍이든 머릿속이든 신변이든 주변이든 늘 정갈하게 할 필요가 있다. 온통 어지럽혀 놓는 일, 그것은 악순환으로 이어질 따름이다.

       끝으로, 내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차츰 늙어가면서 깨닫는 바, 정리정돈에 관한 한 가장 교훈적인 사항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나이가 들어갈수록 아기자기하며 정리정돈 할 거리(물건)를 많이 두지 말라.’는 거. 굳이 바꾸어 말하자면, 서랍이든 옷장이든 과다하게 물건을 넣어두지 말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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