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42)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42)
- 동양의 신비사상을 음악에 담아낸 뮤지션 -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또다시 새로운 뮤지션과 그가 만들어낸 새로운 뉴에이지 음악을 알게 되고 즐겨 듣게 된다는 거. 그것은 희열이며 행복이다. 사실 나는 요즘 들어 부쩍 뉴에이지 장르의 음악을 즐겨듣는 편이다. 익히 알려진 바 뉴에이지 음악은, 클래식 음악이 지닌 ‘이해하기 어려움’과 파플러 뮤직이 지닌 ‘천박성’을 동시에 극복한 음악장르이다. 그러기에 뉴에이지음악을 두고, ‘크로스오버(Cross-over; 넘나드는 음악)’이라고도 부르는가 보다. 참, 두루 아시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파플러(Popular)’란, ‘Pop’의 본디 글자이다. ‘대중적인’ 혹은 ‘흔해빠진’의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은가. 자의적(字意的)으로 풀이하더라도, 파플러 뮤직은 ‘천박하고 흔해빠진 음악’이니, 파플러 뮤직을 전공하는 뮤지션들께서는 나의 글에 관해 공연히 시비삼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오늘밤 또 새로운 뮤지션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는 ‘제 3세계 음악가’로 불린다. 인간의 근원을 파고들어가는 종교적 화두를 완성도 높은 사운드로 표현해낸 곡들을 적는다. 명상(瞑想)의 전통을 현대감각에 맞게 살려내고 있는 몽환적인 리듬과 주술적(呪術的)인 보컬이 특징이다. 그는 인도·티베트· 아메리카 인디언·수피·기독교 신비주의 등 다양한 전통을 독창적인 분위기로 연출해 내곤 한다.
오늘밤에 거듭거듭 듣는 그의 음악은 ‘Sacral Nivana(거룩한 해탈)’이다. 악기 연주 사이에 마치 대사(臺詞)인양 시낭송인양 여럿이서 입을 모아 읊어대는 게 특징이다. 음악 평론가들은 바로 이 ‘Sacral Nivana’도 ‘명상음악(Meditation)’이라고 부른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실은, 그의 연주곡 가운데에 ‘Meditation’이란 제목을 지닌 곡도 따로 있다. 자, ‘Sacral Nivana’에 삽입되어 읊어대는 그 시(詩)를 소개하기로 한다.
<< 가거라--,
내 영혼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생장(生長)이 멈춘 그 지점에서
너의 이름을 지우고 너의 생애도 지우고
순하디 순한 입술로 너를 진술할지니
가거라--,
나를 감싸안고 딩굴던 이름들
나를 증언하던 날들이여
결코 뒤돌아보지 못하는
시간의 길 위를 걸어가던 육신이여>>
<<자유롭게 태어남을 사랑하라
수도자의 땅(수도원)
하늘 아래 자유로운 땅을 사랑하라
우주적인 깨달음에는 막힐 것이 없나니
보살님이여, 당신의 모든 지혜로 오시옵소서. >>
위 시의 원작자(原作者)에 관해서는 이따가 따로 이야기를 펼쳐갈 테고... . 이번 글의 주인공인 뮤지션에 관해 소상히 밝혀야겠다. 그가 바로 ‘울리히 슐츠 [Ulrich Suhulz, 예명(藝名) 올리버 산티(Oliver Shanti, 독일 함부르크 태생, 1948~]’다. 그의 성장과정은 좀 별났다. 그는 어린 시절 집시처럼 지냈다고 한다. 13세가 되던 해 반전가두시위에 쫓아다녔다고 한다. 그 이듬해 그는 파리와 카리브해 등지를 방황했다. 16세 때에는 암스테르담, 베를린, 캘리포니아, 북 아프리카 등지를 쏘다녔다고 한다. 자연, 그 기간 동안 먹고 사는 문제가 따랐으니, 그는 온갖 허드렛일도 마다 않고 했으며, 나이트클럽에서 노래도 불렀다. 그러다 보니 여러 뮤지션들과 교분도 쌓게 된다.
그는 레바논에서 열린 음악 축제에 참가했다가 동양음악에 심취하게 되어, 느닷없이 자취를 감추게 된다. 그때 그의 나이가 25세였다. 1980년 그가 32세가 되던 해, 인도 갠지스 강가 어느 병원에서 일을 하던 걸 발견한 그의 친구들. 그 친구들은 그에게 유럽으로 돌아갈 것을 권유하지만, 그는 완강히 거절하고 ‘올리버 산티’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하게 되는데... . 그는 그룹을 결성하여 첫 작품 <<Frieden Shanti Peace>>을 만들게 된다. 명상적인 사운드에다 매혹적인 멜로디를 싣는 한편 월드뮤직이 녹아있는 다차원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내었다. 이는 설득력 있고 개성이 강한 그의 음악세계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의 첫 음악은 치페와(Chippewa) 부족장과 22인의 인디오의 협력으로 만든 것으로, 아메리카 인디오의 음악을 근원으로 삼아 엠비언트,스페이스뮤직, 월드트랜스 등이 잘 배합되어 있다고 한다. 음악 평론가들은, 그 곡에는 자연의 이치에 따라 살아가는 인디오들의 뼈아픈 반성과 슬픈 영혼을 위로하는 제의(祭儀)가 한 바탕 펼쳐진다고 말한다. 그 작품 첫째 곡 <<Well Balanced >>는 국내 텔레비전 드라마 <<여인천하>>에 삽입되어 잘 알려졌다는데... . 여성의 애조 띤 보컬과 아픔을 노래하는 인디언 플루트, 그리고 장대한 일렉트릭 기타의 연주가 압권이라고 평가받는다. 이밖에도 더 소개하고픈 그의 작품세계가 있지만, 지면 관계상 생략키로 한다. 하여간, 그의 음악은 독특하다고 말할밖에. 그는 기질적으로(?) 한 군데 머물러 지내지 못하고 이곳저곳 오랜 방황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 그러는 과정에서 여러 종류의 토속음악에 심취했을 터. 그는 그러한 토속음악들을 나름대로 가공하여 오로지 자신만의 음악세계로 그 외연을 넓혀 나갔다는 거 아닌가.
이제 ‘올리버 산티’의 음악들 가운데에서, 이 글을 아니 쓰고는 배길 수 없게 하였던 위 ‘Sacral Nivana(거룩한 해탈)’에 관해 집중탐구할 차례다. 그 음악은 바로 어느 위대한 시인의 시를 바탕으로 적은 것임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그 시인의 영전에 바치고자 쓴 음악편지인지도 모른다. 시를 쓰되, 입으로만 읊고 글로써는 전혀 남기지 않았던 인도의 영적(靈的) 시인, 까르비(Kabir Das, 1440~1518). 그분은 인도의 비하르주(- 洲)에서 브라만 계급의 남자와 가난한 하층계급 과부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이내 어머니한테서 버림을 받고,이번에는 이슬람 종교를 가졌으며 베를 짜는 부부한테 업둥이로 들어가게 된다. 그분은 한 평생 수공예로 베를 짜며 아주 평범한 삶을 살게 된다. 피는 못 속인다고 했으니, 브라만 계급의 피를 받아서였던지, 그분은 사상적으로 대단히 깊었다고 한다. 시를 쓰되, 입으로만 읊고 전혀 글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분 댁에는 그분의 가르침 아니, 입으로 읊어대는 시를 들으러 힌두교의 사두와 요기, 회교의 파키(수행자)와 수피(회교의 신비주의자) 등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분은 위대한 영혼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인도 민중문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그분. 그분은 글을 배우지 않아 단 한 줄의 시도 쓰지 않았음에도 인도 신비주의의 대표적 시인으로 알려진다. 후일 시성(詩聖)이라 일컬어지고 노벨문학상까지 받은 타고르한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니... . 나아가서, 그분은 마하트마 간디의 정신적 스승이었다고 한다.
그분의 생애는 지극히 평범했다. 아니, 천했다. 그저 베 짜고 물 긷고 시장가는 것이 전부였지만, 신(神)을 향한 헌신과 사랑의 노래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왔다고 한다. 후일 그분의 정신적 제자에 해당하는 타고르는 구전되어 오는 그분의 시를 모아 영어로 번역하여 책으로 만든 후 서방세계에 알렸다는 거 아닌가. 그분의 신은 그 어떤 신도 아니란다. 오로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각성(覺醒)된 영혼의 상태로서 신이라니! 그분의 신에 대한 사랑은, 현세에서 생활하는 매순간마다 체험을 통해 구체화할 수 있는 사랑과 절대적 헌신. 그분은 형식적인 모든 종교와 명상마저도 거부했다고 한다.
그분의 죽음도 의미심장하다고 하는데, 시신을 두고 다툴 힌두교 제 자들과 이슬람교 제자들이 다툴세라, 일정기간 천으로 덮어둘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고 한다. 나중에 천을 걷어보니 몸은 어디로 사라지고 꽃 몇 송이만 남아있었다는 거룩한 죽음. 힌두교 제자들은 그 꽃을 화장하여 갠지스강가에 뿌리고, 이슬람교 제자들은 땅에 묻어 묘지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분이 읊어 구전되어 온 시 가운데 세 편을 여기 소개할까 보다.
♧ 물속의 물고기가 목마르다 한다
나는 물속에 있는 물고기가 목마르다고 들었을 때 웃었다.
그대는 집에서 진실을 보지 못하고
숲속에서 숲속으로 방황한다.
여기에 진리가 있다!
베나레스(Venares)나 마투라(Mathura)로 가보라.
만약 그대의 영혼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세계는 그대에게 실체가 아니다.
♧ 님의 존재를 말할 수 있는 언어는 없다
내 어찌 비밀의 언어를 말로 할 수 있으리.
내 어찌 님이 이것은 좋아하지 않고
저것은 좋아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으리?
님이 내 안에 있다고 한다면 우주 전체가 부끄러워 할 것이고
님이 내 곁에 없다면 거짓말이 되리라.
님은 내면과 외면의 세계를 분리하지 않은 하나로 만드셨으니,
의식과 무의식은 님의 발판이다.
님은 나타나지도 않고,
숨지도 않는다.
님은 드러내 보이지 않으며
드러내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니다.
님의 존재를 말할 수 있는 언어는 없다.
♧ 지혜의 눈으로 본질을 꿰뚫어라
강과 물결은 똑 같은 물이다.
강과 물결 사이에 다른 점이 어디 있는가?
물결이 일어나도 그것은 물이며
물방울이 떨어져도 그것은 물이다.
말해보라, 다른 것이 있다면!
이제 물결이란 이름은 더 이상 물결이란 말로 표현되지 않는다.
창조자께서 세계는 한 줄 염주 알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그 염주 알을 꿰뚫어 지혜의 눈으로 주시하라.
참말로, 하나같이 신비스런 내용이다. 나의 신실한 애독자님들께서는, 그분의 여타 시를 더 읽으실 요량이면 인터넷 매체를 활용하시기 바란다.
이제 두서없는 글을 마무리해 보아야겠다. ‘올리버 산티’라는 뮤지션은 괴짜임에 틀림없다. 기행(奇行)에다 방황에다 ... 한 곳에 전혀 머무르지 못하는, 신비주의 음악인. 그는 인도의 정신에 매료되었던 게 분명하다. 그는 그곳 인도에서 한 위대한 신비주의자를 만나게 되었고, 그 신비주의 시인의 시구(詩句)를 자기 방식대로 음미하게 된다. 그 음미는 곧바로 ‘Sacral Nivana(거룩한 해탈)’이란 이름을 가진 음악으로 재탄생 내지 완성된다. 그는 오로지 위대한 시인‘까르비’한테 헌정코자 그 곡을 적었을 것만 같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그럴 것만 같다.
끝으로, 수필작가입네 나부댔던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다는 말을 내 애독자들한테 전하며 글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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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cral Nirvana' - Oliver Shanti &Friends (Official Musi...
(다음 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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