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을 심고
콩을 심고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어른들 말마따나 ‘이런 지랄발광이 없다’. 이런 광대짓이 없다. 이런 난장굿이 없다. 평화롭고 아늑하기만 해야 할 산골에 숫제 굿판을 벌리어야 하다니! 밭 둘레에다 ‘OO 속셈학원 원생 모집’, ‘기호 O번 OOO’ 등의 현수막을 온통 둘러칠 게 뭐람? 산골짜기가 어디 학원가냐고? 산골짜기가 어디 국회의원 선거철이냐고? 그리고 ‘반짝이’라 일컫는 비닐 테이프를 밭의 반공(半空)에 이리저리 매달게 뭐람? 유월 초순, 산골짝은 가을운동회가 분명 아니건만, 만국기가 펄럭이는 운동장 같기만 하다. ‘반짝이’는 산새들이 아닌, 농부들마저도 정신 어지럽게 한다.
이른 새벽, 나는 내 농장에서 들깨모를 심고 있었다. 가뭄이 심해 스프링클러까지 틀어두고서. 사실 농사는 작물마다 다 때가 따로 있는 법. 들깨모의 경우, 모를 따로 내어 유월말께에 본밭에다 이식함이 적절하나, 올해는 2,000여 평 들깨농사를 준비하는 터라, 밭밭마다 시간차를 두고 모를 현장에 파종하였고, 다소 이르긴 하지만 그렇게 일차적으로 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윗마을에 사는 ‘태OO’가 찾아와 졸라댔다.
“윤형, 대단히 바쁘지 않거든 내 일부터 도와주시오. 300여 평 밭에다 지난해처럼 또 콩을 심어야 하는데... . 윤형은 우리 어머니가 담근 생된장을 그리도 맛있다고 하지 않았어? ”
나는 저녁 무렵에 마저 심을 요량으로, 마지못해 들깨모 다라를 그늘진 곳에다 물을 듬뿍 축여 옮겨놓고 곧바로 그를 따라 나섰다. 현대 농업은 연장 내지 기계가 하는 터. 그는 어떤 이가 특허품으로 개발한 본인 소유의 ‘만능파종기’와, 이웃으로부터 한 대 빌려온 만능파종기를 손 봐서 콩알이 두어 개씩 정확히 내리도록 하였다. 나와 그는 각각 한 대씩 만능파종기를 들고, 미리 피복해둔 비닐(멀칭 비닐)에 정확한 거리를 유지하며 쿡쿡 찔러나갔다. 내 신실한 독자님들께 알려 드리오니, 만능파종기는 마치 착암기처럼 생겨먹었다. 아니, 토양 속을 쿡쿡 찍어대는 장총(長銃)처럼 생겼다고나 할까? 하여간, 대단히 능률적인 기계이며, 나는 그이한테서 해마다 그 파종기를 잠시씩 빌려와서 참깨를 심곤 하기에 사용요령을 거의 완벽하리만치 익혀두었다. 해서, 그가 일손을 도와달라고 한 것도 큰 무리가 아니다. 그와 조화롭게 작업을 하고 보니, 300여 평의 밭에다 콩을 심는데, 불과 한 시간가량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콩을 심은 것으로 모든 공정이 끝난 게 아니다. 위에서 이미 소개했듯, 반짝이를 이리저리 밭의 반공에 쳐서 바람에 어른거리도록 해야만 했다는 거. 그러면 산새들이 어지러워 콩알을 훔쳐가거나 콩의 떡잎을 쪼아가지 못한다고들 하였다. 믿거나 말거나. 사실 종자로 쓰는 콩알은 이미 농약으로 살충살균 되고 새들이 쪼아가지 못하게 가루약이 발린 상태였다. 그는 종묘사에서 우량품종이라고 선발하여 그처럼 약제 처리된 콩씨를 한 포대 굳이 사왔던 것이다. 또, 그는 대개의 농부들처럼 밭 둘레에다 현수막과 그물망을 미리 둘러쳐둔 상태였다. 고라니는 어찌나 콩잎을 좋아하는지, 장차 햇순을 댕강댕강 잘라먹는 걸 방지하기 위함이다.
콩은 여느 작물보다 조수(鳥獸)의 피해가 심한 편이다. 콩이 촉을 틔우기도 전에, 영리하기로 유명한 산비둘기들은 콩 심은 자리를 용케도 차례차례 찾아가며 콩알을 훔쳐간다. 또, 어쩌다 싹을 틔운 콩을 습격하여 ‘떡’ 곧 ‘자양분’으로 끝까지 문드러질 때까지 남아 있어야 할 두 개의 떡잎을 쪼아 먹어버리기도 한다. 괘씸한 산비둘기 녀석들. 농부들이 밭둑에 나서 집으로 향하는 걸 지켜본 후 자기네 친구들까지 ‘구구’ 불러 모아 그러한 행패를 부린다는 게 농부들의 중론(衆論)이기도 하다.
조수의 공격만이 콩 재배를 어렵게 하는 게 아니다. 우리 속담에 ‘가뭄에 콩 나듯 한다.’ 는 말이 있지 아니한가. 메주콩의 파종 적기가 유월 초순인데, 그때가 마침 가뭄이 심한 때다. 그러한 까닭에 콩을 직파한 후 자주자주 물을 줘야 한다는 거. 산새들의 도둑질과 가뭄으로 인한 발아 저해를 동시에 해소코자 많은 농가들은 지혜롭게 대처하기도 한다. 포트(pot; 묘상)에다 상토(床土)를 채운 후 거기다다 두 알씩 콩알을 넣어 모를 알뜰히 키우기도 한다. 그런 다음 제법 모가 자랐을 적에 장마철을 틈타 본밭에 옮겨 심는다. 그러면 우리가 오늘 파종기로 직파한 데 비해 얼마나 비능률적이겠냐고?
이밖에도 콩 재배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 하나 더 있다. 콩고투리가 맺힐 때 즙액을 훔쳐 빨아먹는 벌레가 있다는 거. 해서, 콩고투리가 죄다 쭉정이가 되어버리는 예가 많다. 바로 ‘노린재’라는 벌레의 소행이다. 마치 벌처럼 생겨먹은 벌레가 그러한 짓을 한다고 했다. 노린재 구제(驅除)의 적기(適期)는 그것들이 날갯짓을 하기가 불편한, ‘이슬 있을 적’이라는 거.
이러한 제반의 어려움 때문에, 나는 몇 해 동안 실패 끝에 더는 메주콩 농사를 하지 않고 있다. 풋콩을 모닥불에 구워먹던 이른바 ‘콩사리’를 하기 위해서라도 몇 포기쯤 메주콩을 심어봄직도 하건만... . 내 사랑하는 애독자님들, 우리네가 거의 매일 아니, 매 끼니 즐겨먹는 된장의 주원료가 메주콩임을 환기해주시기 바란다. 농부들은 조수와 벌레와 병균을 이겨내고자 위와 같은 어려움을 겪으면서까지 된장과 두부의 원료인 메주콩을 수확해낸다는 것을. 이는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한 톨의 쌀이나 한 톨의 수수를 얻기 위해서도 갖가지 어려운 과정을 다 거친다.
다시 이야기하지만, 아늑하고 평화로워야 할 산골짜기마저도 전쟁터이다. 조수와 전쟁터이다. 현수막에다 반짝이에다 농약코팅에다... . 하오니, 내 신실한 독자님들께서는 유기농 농산물입네 자랑하는 농부들의 말을 액면대로 믿어서는 곤란하다. 농약 전혀 아니 치고 농사를 했다는 거, 그것은 사기(詐欺)에 불과하다는 거 명심 또 명심하시길.
그런데 사족(蛇足) 하나는 붙여야겠다. 콩 수확량을 늘리게 한 이는 그 누구도 아닌, 고라니 또는 소[牛]였다는 거. 고라니나 소는 농부들한테 어떡하면 콩 수확량이 더 늘어나는지 똑똑히 가르쳐 주었다는 거 아닌가. 그 녀석들은 주인 몰래, 농부 몰래 햇순을 따 먹음으로써 이른바 ‘적심(摘心; 정수리 순 따기)’의 효능을 일깨워주었다는 거. 실제로, 농부들은 고라니나 소가 콩의 햇순을 따먹은 곳의 콩이 더 풍성한 열매를 맺더라는 거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제법 자란 콩의 햇순을 손으로 따거나 낫으로 베어냄으로써 가지를 더 벌게 하여 콩의 소출을 늘였다는 거 아닌가. 그러니 세상만사 ‘전화위복(轉禍爲福)’은 늘 존재함을.
끝으로, 우스갯소리인데, ‘전화위복(轉禍爲福)’은 내 지난 직장후배들한테 늘 강조했던 말이다. ‘KT’라는 대한민국 최고의 통신회사에 근무했던 나.
“여보게, ‘전화위복’이란 말일세, ‘전화기 위에 복이 얹혀 있다’는 말일세. 전화기 위에 자네 부인의 블라우스 값과 매니큐어 값이 있고, 자네 아이들의 우유 값이 있지 아니 하냐고?”
작가의 말)
나는 늘 말해 왔다.
“수필은 생활인의 글이어야 한다. 생활이 곧 수필이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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