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음악 이야기

영감에 관해

윤근택 2014. 4. 15. 07:49

영감(inspiration)에 관해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발명왕 에디슨은 이러한 명언을 남겼다.

천재는 하늘이 주는 1%의 영감과 99%의 땀으로 이루어진다.

내가 왜 갑자기 이 말을 인용하느냐고? 수필작가의 길을 4반세기 걸어오는 동안, 예술가들 가운데는 영감이 빼어난 분들이 많았다는 걸 알게 되었으며, 그분들을 무척 존경하기 때문이다. 내가 문학인이면서도, 정작 음악인들을 더 존경하며, 그분들의 생애를 더 기리곤 한다. 여타 예술 장르보다는 음악이 나한테는 더 이해하기 쉬웠던 것도 사실이다. 내 고막이 성한 이상, 크게 힘들이지 않고도 아름다운 선율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빼어난 음악인들 가운데는 5,6세 때부터 피아노를 쳤다거나 교향곡을 적었다거나 하는 이들이 너무도 많았음에 놀라곤 한다. 그에 비해 문학 장르를 택한 예술가들은 좀 굼뜬 출발을 하게 되는 편이다. 일단은 문자(文字)를 해득한 연후에야 가능한 예술이기 때문이다. 하여간,나는 음악인들이 부럽기도 하고 또 그분들한테 부끄러울 때가 많다.

예술가의 최고덕목이기도 영감. 나는 오늘 두 분 작곡가들의 경우를 예로 삼고자 한다.

모리스 조셉 라벨(Maurice Joseph Ravel,1875~1937,프랑스 작곡가, 파리음악원 출신). 그의 곡 볼레로(Bolero)는 아주 유명하다. 이 볼레로의 본디 뜻은 3/4박자로 이루어지며 캐스터네츠 반주에 맞춰 추는 에스파냐의 민속춤을 일컫는다. 라벨의 볼레로는 경쾌하기 이를 데 없다. 그는 이 볼레로 말고도 유명한 곡을 만들었다. 그게 바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Pavane  pour  une  Infate Defunte). 이 곡을, 달랑 그림 한 장 보고서 영감을 얻어 적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대체,죽은 왕녀는 누구를 가리키며 파반느라는 게 뭔지? 본디 호기심 많은 나는 기어이 찾아 보았다. 우선, 파반느부터 소개해야겠다. 본디 바스 당스(Basse danse)에서 온 말로, 16세기경에 유행했던 춤곡을 일컫는다. 2박자 또는 4박자로 된 위엄 있는 춤곡이라고 한다. 다음은, 죽은 왕녀. 라벨은 파리 음악원 재학시절, 파리의 루브르 미술관을 찾게 된다. 거기서 17세기 스페인의 화가, 벨라스케스라는 이의 그림 한 장을 감상하게 된다. 스페인의 젊디 젊은 왕녀, 마가레타의 초상화였다. 그는 바로 그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그러한 걸작을 만들게 되었다. 사실 나도 인터넷에 소개된 그 소녀의 초상화를 보니, 너무나 우아하고 기품이 있었다. 그는 그 작품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적어, 에드몽 드 포리냑(Edmondde Pollignac) 공작 부인한테 헌정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는 한번도 본 적 없는 그 어린 왕녀를 그리며 그렇듯 작품을 쓰고, 또 어찌할 수도 없는(?) 그 여성한테 바쳤다는 말 아닌가. 그는 깔끔한 성품이라 결혼도 않고 62세까지 독신으로 지내다가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라벨은 초상화 한 장에서 영감을 얻어 그러한 불후의 명곡을 적었다.

모데스트 페트로비치 무조르그스키(Modest Petrovich Mussorgsky, 1839~1881,러시아 작곡가). 그는 자신의 친구이자 화가이자 건축가인 빅토르 하르트만 39세 젊은 나이에 죽자, 비탄에 빠진다. 마침 빅토르 하르트만의 또 다른 친구 하나가 고인을 기리며 유작(遺作) 전시회를 한다기에 그곳에 가게 된다. 무조르그스키는 친구의 그림 한 장 한 장을 지나면서 영감을 받게 된다. 전시회를 다녀온 그는 곧바로 음악으로 만들게 된다.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전람회의 그림이다. 10곡으로 된 그 음악. 난장이, 옛 성, 튀일리 궁전의 정원, 비드로(소달구지), 달걀 껍질 속의 병아리 춤,부자 유태인과 가난한 유태인, 리모쥬의 시장, 묘지, 바바 야가의 오두막집, 키예프의 거대한 대문 등의 그림을 음악으로 바꿔치기(?) 했으니 . 어느 음악평론가는, 그가 정지된 그림을 그림자 그림으로 재현했다고 한 마디로 요약한다. , 음악으로써 친구의 그림을, 살아서 꿈틀대는 그림으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이밖에도 음악인들 가운데는 영감 하나로 걸작을 빚어낸 이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달랑 한 장의 그림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명곡을 빚은   양인(兩人)을 소개하는 것으로 만족해 한다. 그들 양인의 빼어난 영감을 몹시 부러워한다. 그들의 창작이, 누에고치에서 실마리 하나를 빼 잡고서 끊임없이 명주실을 뽑아내는 일과 무엇이 다르랴! 하더라도, 그들 양인도 이 글 첫 문장에서 에디슨의 말을 빌어 내가 밝혔듯이 하늘에서 거저 얻은 재능만은 결코 아니었으리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들 양인은 늘 의식이 깨어 있었고, 더듬이를 늘 곧추세우고 지냈을 거라는 추측을 하게 된다.

이제 내 이야기는 엄연히 수필작가로 돌아와 나의 이야기로 접어든다.사실 나도 그분들 못지 않게 늘 더듬이를 곤두세우고 지내는 편이다. 어떤 이들은 글감이 딸려 애를 먹는다고들 하던데, 나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수필작가로 데뷔한 지도 벌써 사반 세기 될뿐더러, 거기다가 습작기까지 합치면 30년은 족히 되는 문학인의 길. 내 눈에 비친 사물들을 허투루 넘길 턱이 없다. 결코 천부적인 재능이 아니다. 피나는 훈련으로 그리 된 줄로 알고 지낸다. 나의 안테나에 그 무엇이 걸려들었다 하면, 아니 쓰고는 버텨낼 재간이 없다. 요즘은 A4용지에다 어구(語句) 또는 어휘 여남은 게 적기만 하면, 어떤 모양으로든 한 편의 수필로 빚어내곤 한다.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게 있다면, 한국의 수필문단에서 전무후무(前無後無)한 다산(多産)의 수필작가로 기록되는 일이다. 역사가 그렇게 적기를 정말로 바란다. 진실로,1% 영감과 99%의 땀은 바로 나를 두고 한 말인 듯싶다. 내 작은딸의 지적대로, 남들도 나더러 교만에 빠진 사람이라고 손가락질 한다고 하여도 진실은 진실이니까 어쩔 도리가 없다.

끝으로, 수필작가들께 수필작가 지망생들께 이 말 한 마디만 하고 이 글 접기로 한다. 머릿속에, 가슴속에 아무리 있은들 무엇 하나? 어쨌든,적어 버릇해야 한다. 그 결과물이 좋든 싫든 문자화(文字化)해야 한다. 나의 이 권고를, 우리네 속담으로 바꾸어 써도 될 듯하다.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가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