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작

대롱(39)

윤근택 2015. 6. 19. 20:54

 

 

 

                                                     대롱(39)

                                                       - 농수관(農水管)-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정말 올해 가뭄은 대단하다. 해서, 나도 이웃들한테 뒤질세라,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고추와, 가뭄 들어 쭈그러진 알을 달고 있는 복숭아 등에게 물을 주기적으로 대어 주어야만 한다. 뿐더러, 전기모터를 가동하여 도라지밭 어린 도라지싹에는 스프링클러(sprinkler)로 물을 뿌려주어야 한다. 사실 농부들은 저마다 독특하게 가뭄을 해결하는 편이다. 그러나 그 어떤 방식이든 호스 곧 대롱을 근간으로 삼는다는 거. 해서, 대롱은 농부한테도 없어서는 아니 될 물건이다. 물 이용하는 시설 즉 수리시설(水利施設)’의 정도가 곧 농업의 선진도일 것이다. 그 수리시설의 정도는, 평소 농수관을 어느 정도의 굵기로, 어느 정도의 갈래로 펼쳐두느냐와 직결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터. 나아가서, 그 많은 농약 살포도 호스 없이는 결코 행할 수 없다는 사실.

       요즘 농촌은 가뭄과 전쟁을 치르는 중이라고 할만하다. 나는 오늘 낮엔 잠시 짬을 내어 천막호스, 분수 호스, 비닐호스 등의 연결구(連結具) 대용품을 구하려고 시내 자전거수리점을 몇 군데 돌았다.

       사장님, 폐튜브 있으면 몇 개만 얻어가려고요.”

       그랬더니, 가게 사장들은 하나같이 요즘은 폐튜브를 내어놓기 바쁘게 농부들이 경쟁적으로 가져가곤 한다고 했다. 해서, 두어 군데 자전거수리점을 돌고서야 겨우 한 개의 폐튜브를 구해오게 되었다. 다소 과장되이 말하자면, ‘자전거 폐튜브 품귀현상이다. 각종 농사용 호스를 연결하는 데에 자전거튜브보다 간편하고 효율적인 자재도 없다. 이러한 점을 농부들 대개가 아는 터라, 가뭄의 정도가 심해지자 폐튜브 품귀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자전거 폐튜브를 가위나 칼로 적당한 너비로 배를 타서 또 적당한 길이로 자르면 아주 손쉽게 호스를 연결할 수 있다. 설령 다른 굵기의 천막호스일지라도, 그 양단(兩端)에 폴리에틸렌 파이프 토막을 끼우고, 그 위에다 자전거 폐튜브로 꽁꽁 처매면 연결은 끝난다. 그러면 거의 누수(漏水)없이 본인이 원하는 목표지점까지 물을 정확히 나를 수 있게 된다. 나는 분수호스나 비닐호스 등도 손쉽게, 간단히, 변통부리기 쉽게 연결하기 위해 폐튜브를 즐겨 쓰는 편이다.

       전동분무기, 경운기, 양수기 등 각종 물 푸는 장비가 나오지 않았더라면, 생활화되지 않았더라면 이처럼 가뭄이 심한 해에는 기근(饑饉)을 면치 못할 테지만, 얼마나 다행한 일이냐! 그러나 아무리 장비가 좋아도 호스 곧 농수관이 없었으면 그야말로 앙꼬 없는 찐빵이 되고 말았으리라. 나는 그러한 점에서라도 온갖 편리한, 말 그대로 내 입맛대로인 농수관을 새삼 기린다. 천막호스와 비닐호스의 장점도 어지간하다. 이것들은 고정적으로 펴두지 않더라도, 필요에 따라 이리저리 펴기만 하면 된다. 아니, 오히려 임시로 쓰기에 그저 그만이다. 물을 대어야 할 밭자리 따위가 수원지(水源池)와 꽤나 떨어져 있어도 크게 문제가 될 게 없다. , 그 사이에 잡초 등 장애물이 있어도 큰 어려움 없이 목표지점까지 정확히 물을 나를 수도 있다. 그렇게 펼쳐진 호스에는 이 대롱연작물 37호에 소개한 바 있는 이른바 사이펀(siphon)’의 원리까지 그대로 적용되어 손쉽게 물을 댈 수 있다는 거.

       이토록 지독스런 가뭄에는 봇도랑보다는 호스 곧 대롱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것도 빠뜨릴 수 없다. 봇도랑은 물을 나르는 동안에 소망하지 않은 땅으로 스며드는 등 누수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호스는 거의 누수 없이 소망하는 곳에다 정확히 물을 날라 준다. 이처럼 농수관은 나 같은 농부한테는 고마운 발명품임에 틀림없다. 그 생광(生光)스러움에 비해, 비교적 값도 싼 편이다. 100미터 길이인 한 롤의 비닐 분수 호스도 2,3만원이면 살 수 있다. 마찬가지로, 한 롤의 천막호스도 수 만원이면 살 수 있다. 비닐 호스도 마찬가지로 그 가치로움에 비해 무척 싼 편이다.

       농부인 나는 이처럼 그 누구도 아닌, 그 무엇도 아닌 농수관의 도움으로 이토록 심한 가뭄을 견뎌낼 수 있으니, 감히 또다시 다음과 같은 결론에 닿는다.

       세상만사 모든 게 대롱에서 출발해서 대롱으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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