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근택 2014. 4. 15. 08:19

비료주기

-수필을 통한 수필쓰기 견해-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바야흐로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되었다. 어제는 종일 봄비가 내렸다. 과일나무 발치에다 비료를 주기에 딱 좋은 날이다. 토양에 물기가 촉촉하여 질소,인산,칼륨이 적정하게 배합된 소위, 복합비료가 토양 속으로 녹아 스며들기에 좋은 조건이기에 그렇다. 사실 첫 문장을 이렇게 적고 보니 무척 우스꽝스럽다. 평소 나는 윌리엄 와트가 주장한 좋은 글 12개 척도를 내세워, 남들 문장에 곧잘 힐난을 했던 사람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이는 자기다운 글을 정성되이 써야 한다는 이른바,  성실성을 결여한 문장이기에 하는 말이다. 달리 말해, 상투어(常套語)로 된 문장이라는 뜻이다. 무얼 알아도 제대로 알아야 하며, 또 제대로 알았더라도 이를 곧바로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짝에도 못 쓴다는 이야기를 펼치려고 부러 그렇게 적었다. 마치 양념을 치듯, 복선(伏線)을 깔듯. 그건 또 그렇다 치자. 하여간, 과일나무에 첫비료를 주기에 딱 좋은 시기다.

문득, 상식 없이,요즘 말로 개념 없이 비료를 주는 이웃 어른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분들은 거의 한평생 농사를 지어온 분들임에도 엉터리로 비료주기를 한다. 어떻게 하는 것이 엉터리냐고?  우선, 과일나무의 원줄기 바로 아래에다 수북 뿌려대는 게 엉터리라는 이야기다.  그럼 어떻게 주어야 하냐고? 적어도 수관(樹冠) 너비에 둥글게 원을 그리며 주어야 한다. 수관이란, 나뭇가지가 뻗은 끝 둘레 내지 폭을 일컫는 농업전문용어다. 그 둘레를 선으로 나타내면 대체로 원이 된다. 진짜로 왜 그렇게 비료를 주어야 하는지에 관해 과학적으로 설명해보라고 하면 제대로 말할 이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기껏 해 보았자, 나무 원줄기 아래에다 바싹 붙여 비료를 주면 나무가 말라 죽을 수도 있기에.라고 빈곤한 대답들을 하곤 하였다.

, 이제부터 요즘 흔히들 쓰는 말로 불편한 진실을 밝힐 차례다. 식물뿌리의 활동 양식, 삼투압, 반투막(半透膜), 생리식염수, 모세혈관, 농도, 수용액(水溶液), 콜로이드,아미노산,당도,saline 등 그 동안 우리네가 살아오면서 익힌 온갖 것들을 다 동원하여야만 충분히 풀 수 있는 문제임을 미리 밝혀 둔다. 두서 없이 그 몇 가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식물뿌리를 크게는 둘로 가를 수 있다. 주근(主根)과 세근(細根)이 그것이다. 주근, 즉 원뿌리는 식물의 하중을 지탱해준다. , 식물이 쓰러지지 않게 해준다. 세근, 즉 실뿌리 내지 모세근(毛細根)은 영양분 흡수를 주로 담당하게 된다. 식물의 생명활동도 동물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고 남이 심어주어야 된다 하여 식물이라고 이름했을 따름이다. 그에 비해 스스로 움직이는 생명체라 하여 동물인 것이고. 그러니 동물의 모세혈관 역할을 설명함으로써 식물의 모세근 활동 메커니즘 설명으로 갈음할 수가 있겠다. 모세혈관은 세포의 활동을 도와, 노폐물과 에너지원 즉, 원소를 1:1로 맞교환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를 이산화탄소와 산소의 맞교환으로도 바꾸어 말할 수도 있다. 혈액은 이들 원소를 실어나르는 매개자일 따름이다. 엄밀히 말해, 모세혈관은 동맥이나 정맥과 달리, [] 구조가 아니다. 세포의 세포막에 맞닿아 있다. 한쪽 끝은 세포의 세포막(細胞膜)으로 폐쇄된 상태다. 세포막은 반투막(半透膜)이라는 독특한 구조를 지닌다. 용액 가운데 입자가 굵은 것은 걸려서 빠져 나가지 못하고, 입자가 가는[] 것만 빠져 나가도록 되어 있다. 이를 삼투압(渗透壓)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저장액(低張液)은 용액을 묽게 하기 위해 고장액(高張液) 쪽으로 빠져나간다는 게 바로 삼투압 원리 아니던가. 식물뿌리에도 이러한 기능을 가진 세포막이 있다. 농도가 짙은 비료 성분을 어린 식물뿌리에 바짝 닿게 하여 뿌리게 되면, 삼투압이 일어나서 뿌리 속의 영양분 내지 체액(體液)이 죄다 빠져 나오게 되고, 그러면 고사(枯死)할 위험이 있다는 거. 이는 자명(自明)한 사실이다. 그리고 영양분 흡수가 주로 이루어지는 곳이 원뿌리가 아닌 실뿌리인 까닭에, 비료를 그렇듯 멀찍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술이 취했을 적에 자꾸 찬물을 찾게 되는 이유도 그 진한 술의 농도를 묽게 하려는 생리작용, 즉 삼투압 원리로 설명할 수가 있으며,김장용 배추를 소금으로 절이는 것도 삼투압으로 설명할 수 있다. 우리 모두가 국민학교(나는 분명코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를 나왔다.) 이상의 학력을 가진 이상, 이러한 과학적 기본지식을 늘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생활의 지혜이며 생활인의 기본자세다. 그러함에도 거의 한 평생 농사한다는 분들 가운데도 더러는 비료주기의 기본도 모르는 경우가 있으니 . 사실 그것이 비단 농부들의 문제만은 아니다. 한 평생 문학인으로 지낸다는 분들 가운데도 논리적인 사고(思考), 분석력, 추리력 등도 제대로 갖추지도 않은 채 마구 원고지에 덤벼드는 이들이 얼마나 많더냐고?  특히 제법 배웠다는 이들이 그러한 어리석음을 저지를 때에는 가엾기까지 하였다.

이번엔, 비료주기에 관해 또 다른 이야기를 해야겠다. 우리는 한 그루의 과일나무 줄기를 보고서도 토양 아래 뿌리 뻗은 모습도 그려낼 수가 있어야 한다. 대체로, 땅거죽을 기준으로 닮은꼴 내지 대칭형이라는 사실. 마치 모래시계 같기도 하고, 장구라는 악기를 모로 세워둔 꼴 같기도 하다.이는 균제(均齊) 내지 균형(均衡)의 기본원리 때문이다. 농학(農學)에서는 이를 두고 S/R(shoot/root; 수관/근관율) 또는 T/R(top/root)이라고 하는데, 일반적인 수목은 그 값이 1이다. 그러나 과수의 경우, 1보다 값이 높은 상태로 만든다. 그러기에 비료를 주되, 지상(地上)의 가지뻗음까지 고려해서 주면 효율적이지 않겠나? 이는 바로 분석력과 유추력에 해당한다. 나아가서,과학적 사고이기도 하다. 하나의 토막지식으로 많은 걸 끄집어 낼 수 있는 능력. 만약에 지상의 가지뻗음이 어느 한 곳으로 치우쳐 있어,이를 바로잡고자 한다면 또 어떻게 하면 좋을까? 우선은, 전정(剪定) 등의 방법을 택하면 될 터이고, 비료주기도 보조적인 방법으로 택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왜 다들 못한단 말인가. 왜 우리가 평소 속되게 하는 말이 있지 않으냐?  줄 듯 말듯 줄 듯 말 듯 약을 올려야 . 라고 하는 말. 비료주기에도 그 방식을 취하면 아주 효율적이라는 사실. 실뿌리는 비료 성분을 빨아들이고자 비료성분이 뿌려진 곳까지 용을 쓰며 나아가려는 성질이 왜 없겠냐고?  아슬아슬 실뿌리에 닿을 듯 말 듯 비료를 주는 거. 그것은 상당히 의미로운 농법(農法)이다. 비료를 줄 적에도, 농부는 굳이 누가 알려주지 않았더라도 이처럼 이런 거 저런 거 다 상상하여야 옳을 줄로 아는데 .

비료주기에 관한 또 다른 생각이다. 비료를 많이,자주 주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그러면 식물의 뿌리는 나태해진다. 그것들은 분명 이런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애써서 내가 영양분을 찾아 헤맬 게 뭣 있어? 부지런한 우리 농부가 맛나는 걸 알아서 척척 때맞춰 주는데 뭐.

실제로 그럴 것이다. 콩나물 시루에다 물을 자주 주지 않으면 잔뿌리가 많이 나오던 걸 우리는 똑똑히 보았지 않은가. 그것이 위 사실을 반증한다. 식물한테도 이처럼 적절하게 긴장과 배고픔을 주어야 함을 알 수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식물에 대한 진정한 사랑임을, 생장을 촉진하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

사실 비료주기 하나만 파고들어도 할 이야기가 수도 없을 것이다. 가뭄때나 병약한 작물한테 잎에다 아주 묽은 물비료를 바로 주는,이른바 엽면시비(葉面施肥)의 이야기만 하여도 밤을 꼬박 샐 수 있을 테니까. 엽면시비의 기본원리는, 우리네 체액과 농도가 같은 0.9%의 생리식염수 내지 링거액 주사와 같은 거다. 하는 이야기부터 시작하면 하룻밤도 부족할 지경이다. 이러한 이야깃거리를 우리는 이미 국민학교에서 다 배웠다. 나머지는 모두 응용에 불과하다.

이제 두서 없는 나의 이야기 정리해야겠다. 정감적인 글도 좋긴 한데,허구한날 정감적인 글만을 써서야 어디 쓰겠는가. 특히, 많은 여성 수필작가들한테서 항용 느끼는 그러한 글들 이젠 지겹기까지 하다. 어쨌든, 한 편의 글감을 잡고서도 끝까지 파고드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유감이 있다. 비료주기를 아주 쉽게 비료주기라고 쓰면 될 텐데,우리네는 시비(施肥)라고 일본어투로, 그것도 전혀 저항 없이 여태껏 써오고 있으니 이게 될 말인가. 한심하다. 그저 유식한 척 해야 남이 알아줄 듯해서 그런 일들이 이 광명천지에 버젓이 남아 있는 것일까? 지름길을 두고서 애써 에움길을 택할 이유는 전혀 없다.

끝으로, 한 마디만 더 보태기로 하자. 비료의 삼대원소가 질소,인산,칼륨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작물의 생장을 좌우하는 것은 그것들이 아니라는 사실. 웬만하면 작물들은 그것들을 충족한다고 한다. 그러나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될 듯 여겼던 미량요소의 과잉이나 결핍이 작물의 생장을 크게 좌우한다는 사실을 결코 지나쳐서는 아니 된다. 심지어 그러한 불균형이 식물의 생명까지도 앗아가기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사실을 굳이 글쓰기에 적용한다면, 내가 평소 그리도 강조하는 문장부호 빠뜨림 정도에 해당할 것이다. 특히, 쉼표의 기능 15개를 정확히 이해하지 않고 또 이를 정확하게 부려 쓰지 않는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작가의 말)

현명한 독자 여러분께서는 제가 단순히 비료주기 요령에 관해서만 이 글을 적지 않았음을 짐작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