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근택 2015. 6. 25. 22:35

 

 

                                 

                                           떡잎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참말로, 그것을 떡잎이라고 부른다. 올해 콩 씨앗을 벌써 두 차례 심었으나 잇달아 실패하였다. 딴에는, 산비둘기 따위가 훔쳐가지 못하도록 가루농약을 묻혀 씨앗을 심고, 그런 연후에 곧바로 그물망을 그 위에다 씌웠으나 또다시 낭패를 당하고 말았다. 제법 떡잎이 나왔다싶어 지레 그물망을 벗겼기에 그런 일이 생겼다. 이번에도 산비둘기들의 소행으로 여겨지지만, 그 떡잎들을 거의 다 쪼아 먹어버렸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떡잎이 그렇듯 사라지면, 콩 싹의 생명은 끝나는 법. 괘씸한 것들 같으니라고! 하는 수 없이 72()짜리 플러그트레이(plug-tray)에다 상토(床土)를 채워 거기다가 콩 모종을 길렀다. 그랬더니 다행스레, 산새 따위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마침 내일부터 장맛비가 내린다니까, 그렇게 기른 콩 모종을 본밭에 이식하겠지만... .

      플러그트레이에 자라는 콩 모종을 들여다보다가 새삼스레 놀란다. 포기마다 각각 도톰하고 빳빳한 두 장의 떡잎이 여태 온전하다는 것을. 그 떡잎 두 장은 새로 돋은 잎들과 달리, 그 너비가 맨 처음과 다를 바 없이 보잘것없다는 것을. 오히려 쪼그라든 경향이 짙다. 마치 노인네들이 허리가 휘고 왜소해지듯. 사실 어릴 적부터 여태껏 콩이 자라는 모습을 퍽이나 자주 보아왔으나, 콩의 떡잎이 언제 가서야 스러지는지에 관해서만은 찬찬히 살펴본 적이 없다. 해서, 올해엔 꼭 그 떡잎들이 언제쯤 시들게 되는지 마치 학동(學童)처럼 그렇게 관찰해볼 테다. 대신, 이번엔 떡잎의 기능을 새삼스레 음미해보기로 한다.

      떡잎, 씨앗에서 움이 트면서 맨 처음 나오는 잎을 일컫는다. 농학적으로는, 종자식물에서 개체가 발생하여 가장 먼저 마디에 형성된 잎이다. , 떡잎은 (; embryo)’에 의해 만들어진 종자의 잎이라고도 부른다. 다들 너무도 잘 아시다시피, 본잎이 발아하여 광합성작용으로 스스로 양분을 만들 때까지 종자에서 양분을 흡수하여 제공하도록 하는 게 떡잎의 역할이다. 콩과, 장미과, 참나무과 식물의 경우, 떡잎은 종자가 발아할 때에 필요한 양분을 이 떡잎 속에 다량으로 저장하고 있다고 한다. 대체로, 식물은 본잎이 나올 때쯤이면 떡잎의 양분을 다 써버리게 되어, 그것들이 달고 있었던 떡잎은 그길로 시들어 떨어진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식물 종류에 따라 그 양태(樣態)는 찬차만별이라고 한다. 마치 우리네 부모의 성향이 조금씩 다르듯이. 내가 살펴본 바, 지금 모판에 기르는 콩은 본잎 두 장도 났고 다시 속잎이 돋았건만, 두 장의 떡잎은 여전히 활력을 유지하고 있다. 마치 스스로 혼자 힘으로 다 컸다고 믿는 자녀들이건만, 그래도 미덥지 않아 밤낮 내내 근심하던 지난 날 나의 양친 모습과도 같은 떡잎. 하여간, 그 어떤 떡잎이든 본잎이 돋아 스스로 일어설 때까지 자양분이 되어준 다음 쭈그러들어 스러진다는 것을. 우리 선조들은 그러한 기능을 하는 잎을 왜 굳이 떡잎이라고 이름지었을까?밥잎이라고 할 수도 있었을 터인데... . 아마도 밥보다는 떡이 더 맛있고  영양분이 더 많기에 그렇게 불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떡잎을 한자어로는 자엽(子葉)’이라고 부른다는 점. 사실 그 잎은 나중에 돋아날 잎들의 모태(母胎)인 관계로, ‘모엽(母葉)’이라고 불러야 옳거늘... . 모르긴 하여도, ‘떡잎자엽이라고 부른 데는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도 같다. 그것이 모든 잎의 모체(母體)이되, ‘자식이 먹게 될 자양분이라서, 자신을 자식 위해 오롯이 내어주는 잎이란 뜻을 담지는 않았을까 하고서... . 그렇다면, 자엽이란 말은 가슴시린 낱말이다. 한편, 영어식 표현은 ‘a seed leaf’.

      떡잎은 식물에 따라 각기 다른 양상(樣相)을 띤다. 크게는 외떡잎식물(單子葉植物)’쌍떡잎식물(雙子葉植物)’로 가른다. 외떡잎식물은 잎맥이 주로 나란히맥이며, 형성층이 없고, 종려과 등 10% 내외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초본과다. 반면, 쌍떡잎식물은 잎맥이 주로 그물맥이며, 형성층이 있고, 뿌리는 1차근과 2차근으로 되어 있다. 새삼스레, 외떡잎식물이니 쌍떡잎식물이니 더듬자니, 문득 홀아버지와 홀어머니, 양친을 제각각 모시고 사는 우리의 모습이 오버랩 될 게 뭐람? 참말로, 우리는 저마다 다른 환경에서 자라났다. 앞으로 우리의 후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더라도, 어떠한 떡잎 형태였던지 떡잎 없이는 클 수가 없다. 문득, 내가 키우는 콩 모종한테서 한 쌍 가운데 한 장의 떡잎을 떼어내 버린다 하더라도, 콩이 온전히 자라지 못하리란 생각까지를 해 본다. 그러한 면에서 성년이 될 때까지 내 양친이 살아계셨다는 게 얼마나 축복이었던지 새삼 깨닫게 된다.

      장미과, 참나무과 식물과 더불어 대표적인 무배유종자(無胚乳種子)’로 알려진 콩과식물. 나는 산새들한테 그 떡잎이 훼손될세라, 도둑맞을세라, 묘상(苗床)에서 싹을 이처럼 틔웠다. 그리고는 곧 본밭에다 그 떡잎이 다치지 않게 옮겨 심을 것이다. 무배유종자란, 말 그대로 벼나 감나무가 보여주는, 종자 속에 젖[胚乳]이 풍부한 종자와 달리, 말 그대로 젖이 없는 종자를 일컫는다. 무배유종자도 사실 가슴 시린 말이다. 자녀 열을 내리 낳아 빨리다 보니 아홉 번째인 나에 이르러서는 젖꼭지가 말라버렸다던 내 어머니 당신을 불현듯 떠올리기 때문이다. 해서, 내가 지금 기르는 콩 같은 무배유종자들은 하나같이 발아할 때에 필요한 양분을 떡잎 속에 다량으로 저장하는가 보다. 그러기에 쭈그렁텅이로 누렇게 말라비틀어질 때까지 제법 오래도록 콩의 가지 곁을 떠나지도 못하는가 보다.

      참말로, 떡잎 두 장 없이는 콩이 콩으로 자랄 수가 없다. 진실로, 떡잎이야말로 지극한 모성애를 지닌 존재다. 문득, '잘 되면 제 덕이요, 못 되면 부모 탓이다.'는 우리네 속담이 겹쳐져 송연(悚然)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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