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작

윤 수필가, 자급자족을 하다

윤근택 2015. 7. 29. 22:53

 

 

                          윤 수필가, 자급자족을 하다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자급자족(自給自足), 이는 우리네가 너무도 자주 쓰는 말이기도 하며, 여러 모로 그 의미가 깊은 말이기도 하다. 사전적 의미는, ‘ (자신이) 필요한 물건이나 자원 따위를 스스로 생산하여 충당하는 일이다. 어느 한 국가의 안위는 군사력 확충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도 익히 알려진 바다. 거기에 더해 식량자원도 무기가 된다는 거. 이 가운데서도 식량자원은 국가 간의 문제에만 그치지 않는다고 본다.

      나와 내 가족이 먹어야 할 주식(主食)인 쌀을 남한테 더 이상 맡겨둘 수도 없고, 내가 농주(農酒)로 즐겨 마시는 막걸리를 더 이상 면소재지에 위치한 ‘OO양조장에서만 사와서는 아니 되며, 골초인 내가 하루에 한 갑 태우는 ‘Simple Classic’을 더 이상 담배인삼공사에서 사와서도 아니 된다. ‘

      내가 위 작은 따옴표 속처럼 마음을 굳힌 계기가 따로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국민 건강증진을 위함이란 얼토당토않은 구실을 달아, 201511일부터 담배값을 거의 100% 무모하게 인상하고 말았다. 딴에는 머릿속에 들었다는 이 정부 당국자들은 하나같이 지난날 <<경제학원론>> 시간에는 꼬박꼬박 졸았던 모양이다. 1857년 독일 통계학자 엥겔은 중요한 통계를 낸 바 있다. 그는 가계지출을 조사한 결과, 저소득 가계일수록 총지출 가운데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고, 고소득 가계일수록 그 비율이 낮음을 밝혀내었다. 이를 두고 엥겔지수라고 하며, 수식으로 표현하자면, ‘식료품비/ 가계총지출비X100’이다. 직장에서 은퇴한 이후 소득이 현격이 줄어든 나한테 하루 담배값 4,300원은 큰 타격이 아닐 수 없었고, 화딱지 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해서, 아래와 같은 특단의 조치(?)를 취하게 되었다.

 

       1. 쌀 자급자족

 

      나는 가난한 농부 내외분의 열 남매 가운데 아홉 번째로 태어났다. 나의 서열은, 위로는 형님들이 넷, 누님들이 다섯, 아래로는 동생 하나. 해서, 양친으로부터 토지 한 고랑 물려받지도 못하였다. 나의 양친은,나러더 유일하게 4년제 대학까지 보냈으니, 그걸로 재산 삼으라고 하였다. 섭섭하거나 억울하거나 하지 않았다. 4반세기 반듯한 직장에 다녔으니, 불평할 일도 없었다. 오히려 그 점 양친께 감사드릴 따름.

      고향이 아닌 객지에 농토를 구해 터전을 잡고 15년 가까이 사는 나. 남이 묵혀둔 논 400여 평도 임차하여 3년째 벼농사를 하고 있는데, 손수 지은 벼를 찧어 우리 네 가족의 주식으로 삼고 있다. 그때그때 필요한 양만큼만 방앗간에 가져가서 찧어먹는데, 찰기가 흐르는 그 쌀밥맛은 이전까지 사먹은 쌀에 비교할 수가 없다. 사실 그렇게 손수 지은 쌀이 먹고도 남아서 일부는 아주 가까운 분들한테 팔기까지 하고 있으니... . 설령, 밑천이 많이 들어 사 먹는 게 더 헐하게 칠지리라도 벼농사만은 거듭거듭 할 요량이다.

 

      2. 담배 자급자족

 

      위에서도 언뜻 이야기하였지만, 정부가 하는 일에 화딱지가 나서 이른 봄에 용단을 내렸다. 이미 적어 인터넷 매체에 발표한 적 있는, ‘담배모를 심고에 상세히 나타나 있지만, 한때 엽연초 주산지(主産地)로 명성을 떨쳤던 내 고향 청송의 어느 엽연초 농가에 부탁하여 담배모 50포기를 택배로 받아 내 밭에다 옮겨 심었다. 유년시절, 소년시절을 거치며 양친을 도와 담배농사를 경험했던 터라, 언제 잎을 따고 어떻게 잎담배를 말리며 또 어떻게 말아 태우는지 등에 관해 환한 나. 적정한 시기를 골라 이제 두 차례 잎을 땄으며, 원두막 그늘 새끼줄에 꿰인 잎담배는 잘도 마르고 있다. 오늘밤엔, 미리 준비해둔 장죽(長竹)에다 가스레인지에 살짝 구운 잎담배를 비벼 우겨넣고 불을 댕겨 보았다. 그리고는 양 볼이 옴팍해질 정도로 빠끔빠끔 담배연기를 빨아당겨 보았다. 이 맛, 이 재미 왜 진작에 몰랐던고? 앞으로는 힘없는 서민의 호주머니나 넘보는 정부한테 적어도 담배값만은 더 이상 뜯기지 않을 것 같다. 한마디로, “야호!”.

 

     3. 농주(農酒) 자급자족

 

      벌써 몇 년째, 거의 이틀 간격으로 면 소재지에 위치한 ‘OO양조장에 드나들었다. 나는 그곳 사장으로부터 매번 2홉들이 막걸리 12병씩을, 세종대왕 한 장 곧 배추 이파리 한 장과 맞바꾸어 오곤 하였다. , 일반 가게에서는 병당 1,000원 내지 1,500원 정도 하는 막걸리이지만, 양조장에서는 도매가가 850원꼴이라는 이야기다. 나는 그렇게 사온 막걸리를 농막 냉장고에다 간수해두고, 들며나며 하루에 평균 네다섯 병을 마시고 있었는데... . 그 비용도 내 수입에 비해 만만찮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마침 나는 내가 격일제로 근무하는 연수원 구내식당에서 잔밥을 몇 양동이씩 얻어오곤 한다. 무려 여섯 마리씩이나 되는 개들과 아홉 마리씩이나 되는 오골계들한테 사료 대신 그 잔밥을 먹이기 위함이다. 그런데 그렇게 얻어오는 음식물 가운데 하얀 쌀밥은 그것들한테 먹이고도 남아돌곤 한다. 그래서 착안한 게 바로 술 담그기. 착하고 알뜰한 시골 출신 주방장 아주머니는 그 잔밥을 아주 정갈히 모아 주곤 한다. 심지어 여름철인지라 음식이 상할세라, 대형 냉장고에 넣어두고서 내가 퇴근하는 아침에 가져가라고 친절을 베푼다. 사실 그분도 시골 출신이고 내 또래인 관계로 배려심이 많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나는 갚음으로 그 잔밥을 가져오기에 앞서, 수레에 실린 구내식당의 폐박스 및 구격봉투 속 쓰레기를 쓰레기 하치장에 옮겨다 주곤 한다. 여성들로만 구성된 구내식당팀한테는 내리막사리 길로 수레를 끌기엔 힘든 일.

      나는 경산시장에 들러 밀기울로 만든 누룩과 술약으로 일컬어지는 이스트(효모)를 사는 한편 인터넷, 마을의 할머니들, 시골 누님들 등을 통해 술 담그는 법을 새삼 익혔다. 실은, 지난 날 나의 어머니가 술을 담그는 걸 보았지만, 시행착오를 덜 겪기 위해 그리 하였다. 바로 오늘 밤, 나는 손수 담근 시제품(試製品) 막걸리 항아리를 열어보았다. 담근 지 이틀만인데, 부글부글 거품이 일고 있었다. 여름철이라 발효가 왕성하게 이루어짐을 알게 되었다. 국자로 술을 떠서 마셔 보았다. 그랬더니 맛이 제대로였다. 술이 익었다는 거 아닌가. 술을 걸렀다. 그리고는 4홉들이 P.E.T.병 세 통에 옮겨 담아 냉장고에다 넣어두었다. 물론 시음(試飮)을 하겠노라 한 되 정도는 마셨고.

 

      4. 자급자족의 종합편

 

      나는 오늘 저녁 아주 행복하다. 손수 지은 벼농사로 얻은 쌀로 밥을 지어 저녁밥을 먹었으되, 그 반찬 또한 손수 끓인 된장찌개, 손수 졸인 들깻잎이었다. 저녁밥을 먹는 동안 반주(飯酒)로 손수 빚은 막걸리를 두 세 대접 따라 마셨다. 얼떨떨할 지경이다. 그러고서는 장죽에다 손수 길러 조제한 잎담배를 비벼 넣어 연기를 빨고 있다. 밝은 외등(外燈) 아래 의자에 앉아 깊어가는 여름밤을 즐기는데, 이 기분과 이 성취감과 이 승리감을 그 누가 알랴? ‘앓느니 죽는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막상 그렇지도 않다. 양주를 마시고 취하거나 신 막걸리를 마시고 취하거나 취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빨간 립스틱을 바르거나 고추장을 바르거나 입술이 빨갛게 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양담배를 꼬나물든지 말똥담배를 꼬나물든지 니코틴 들이마시기는 마찬가지다. 지금 내가 중시하는 것은, 그저 자기 형편에 맞게, 전혀 요란 떨지 말고 살아가는 거. 남들은 나더러 짠돌이라고 하든 말든 더 이상 상관 않겠다.

      참말로, 자급자족은 신명나는 일이다. 나아가서, 자급자족은 그 어떤 악질 같은 세력들로부터 돈 뜯기지 않아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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