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작

알레르기에 관해

윤근택 2015. 7. 31. 20:20

 

                              알레르기에 관해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엄밀히 말하면, 나는 농부로서도 부적격자이며 산골생활자로서도 부적격자이다. 왜냐고? 농부라면 풀독[草毒] 따위에는 강해야 하거늘, 맨살이 풀에 스치기만 하면, 곧잘 간지러워 견디지 못하고 마구 긁어댐으로써 피가 송글송글 맺히도록 상처를 내고 만다. 해서, 여름이면 온 몸에 상처투성이가 된다. 또 산골생활자라면, 온갖 벌레들의 가루쯤은 거뜬히 견뎌야 하거늘, 나방 등의 몸에서 일어나는 가루로 인해 알레르기가 끊이지 않는다. 그리고 복숭아 농사도 200여 평 하고 있는데, 털복숭아의 솜털로 인해 마찬가지 증상을 앓게 된다. 더 심각한 것은, 내가 벌을 보면 기겁을 한다는 사실. 몇 해 전 벌에 쏘여 호흡곤란 등 위험한 상태에까지 이르러 병원응급실에 실려가 산소호흡기까지 착용하고 항알레르기 주사를 맞은 일도 있다. 회복되자 간호사가 신신당부를 하였다.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벌침 알레르기가 매우 심한 체질이에요. 아실는지 모르지만요, 벌침 알레르기는 면역이 되는 게 아니라 앞으로는 더 심해져요. 그러니 항알레르기약을 늘 상비해두시는 게 좋을 거에요. 벌에 쏘였다 하면 즉시 그 약을 먹으시거나, 아예 벌초에 나서기 전에 두 알을 먹는 게 좋을 거에요.”

      이렇듯 나는 특정물질에 알레르기 증세를 잘 보인다. 심지어, 국민학교에 다닐 적에는 겨울날 등, 하굣길에 찬바람만 쐬어도 손과 발이 붓고 간지러워 애를 먹곤 하였다. 당시는 가족들이 다들 내가 몹쓸 병에 걸린 줄로 알았다. 이 찬바람 알레르기만은 어인 일로 커오면서 누그러졌다.

      누가 나더러 수필작가가 아니라고 할까봐서, 나는 겉보기에는 텁텁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 같으면서도, 실상은 사소한 일에도 가슴을 쉬이 다치는 사람이다. , 감수성이 아주 예민한 사람이다. 아울러, 위와 같은 물질들에 대해 신체반응이 심하다. 그러니 꽤나 마음과 몸이 까다로운 사람임에 틀림없다. 신혼 때에 나의 어머니는 당신의 넷째며느리이자 나의 아내인 이를 앞에 앉혀놓고 일렀다고 한다.

      아가, 내가 열 남매를 키워봐서 잘 아는 일인데, 니 신랑 근택이는 겉보기보다 성질이 까다롭대이. 그러니 앞으로 살아가면서 그 아이보다 세살이 더 많은 니가 잘 받아넘겨야 할 일이 많을 끼다(거다).”

      사실 위 비밀스런 고부간의 대화를 직접 듣지는 못했다. 그러나 가끔씩 사소한 일로 말다툼을 할 적이면, 아내가 지난날 고부간의 그 비화(秘話)를 읊어서 안다. 아내는, “어머니가 그카시더니(그렇게 말씀하시더니) 역시... .” 로 시작하는 예가 많다.

      나는 위에 열거한 물질 외에도 알레르기 반응이 잘 일어나는 물질이 셋 있는데, 그것이 등 푸른 생선과 옻과 아내의 잔소리다. 그 모든 알레르기는 다 참겠는데, 아내의 잔소리 내지 간섭은 참말로 견기기 힘들다. 해서, 내 농막에 간헐적으로 찾아드는 아내는 떠날 적마다 혼잣말인양 다짐하곤 한다. 그것은 숫제 탄식이다.

      당신은 천상 돌문둥이처럼 혼자 살 팔자! 그러니 혼자 잘 먹고 잘 사시오.”

       온 몸이 근지러워 손톱으로, 효자손으로 피가 솟도록 마구 한 바탕 긁은 지금. 나는 알레르기가 도대체 어떠한 것인지 인터넷 매체를 통해 이리저리 알아본다. 그러다가 크게 놀라고 만다. ‘다음 백과사전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지 않은가.

      알레르기는 항원으로 작용하지 않는 어떤 물질이 인체에 들어왔을 때 체내에서 항원으로 인식하여 면역 반응을 일으키는 현상이다. 즉 병원체가 아닌 물질이 체내에 들어왔을 때 이를 병원체로 인식하여 면역 반응을 일으키는 일종의 과민증(hypersensitivity)이다.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물질을 알레르겐(allergen)이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보통 사람에게는 항원으로 작용하지 않는 꽃가루 · 특정 단백질 등이 이에 해당된다. 복숭아 껍질의 털이나 새우 껍질, 화학 물질, 특정 약물 등 알레르겐의 종류는 다양하다.‘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다. 특히 이 부분, ‘병원체가 아닌 물질이 체내에 들어 왔을 때 이를 병원체로 인식하여일종의 과민증(hypersensitivity)’ 두 어휘군에 주목한다. 이를 달리 풀이하면, ‘(병원체가,진짜가) 아닌 것을 진짜로 오인(誤認)하거나 왜곡해서 받아들인다가 될 터. 사실 알레르기 반응의 메커니즘은 매우 복잡하기도 하고, 이해하기도 어려워 수필작가로서 더 깊이 적을 수도 없다. 다만, ‘진실또는 진짜와 동떨어진 사항을 오해하거나 오인함으로써 생겨나는 증세가 바로 알레르기라는 것만은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곱씹고 되씹어 볼 요량이다. 나 스스로 체질을 바꾸지 않는 한, 언제든지 특정 물질이나 특정 사항(?)에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날 거라는 거.

      텔레비전 어느 실버보험 광고에 세 명의 원로 남자배우와 한 명의 원로 여자배우가 등장한다. 그들 가운데 한 배우가 곁에 앉은 배우한테 이런 우스갯소리를 한다.

      “형, 나이가 들어가면 꼭 필요한 게 셋 있다는데 그게 무엇일까?”

      그러자 곁에 앉은 배우는 모르는 눈치였다.

       “... ... .”

       맨 처음 말을 꺼낸 배우의 말이 걸작이었다.

        마누라, 아내, wife!"

        그러니 다른 알레르기는 몰라도, 누구든지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기의 아내 잔소리한테만은 면역이 생겨나야 할 터인데... .

       사실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만 내 아내 모르게 일러바치는데, 세살 손위인 나의 아내는 결혼생활 30여 년 동안 실망을 넘어서서 절망하고 있을 것이다. 왜냐고? 내가 입는 내의나 양말 등을, 남편인 내가 손수 빨래를 하고 있으며, 된장찌개나 열무김치를 손수 만든 게 더 맛있다고 여기니, 아내 자신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얼마나 좁아져버렸냐고? 정말로 내 아내는 얼마나 무력감을 느끼겠냐고? 그런데 아내한테도 영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환갑이 넘었으면서 여태 고객 중심이 아닌 주인 중심의 사고(思考)’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거. 이 무슨 이야기냐고? 오랜 세월 동안 객지생활을 하면서 식당 음식 맛에 길들여진 나더러, 아내는 조미료가 몸에 해롭다느니 하면서 조미료 가미하지 않은 반찬을 만들어 내게 내민다는 거.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엔, 그게 과연 사랑하는 방법이냐는 결론. 내 신실한 애독자님들도께서도 이 사항을 지나쳐보면 곤란하다. 특히 여성 애독자라면, 이 점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줄로 안다. 내일 당장 죽더라도, 기왕에 남편이 하늘이라면, 그가 원하는 대로 해 주어야 할 줄로 아는데... . 해서, 이런저런 이유로 이어지는 아내의 잔소리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알레르기다.

      감히 구인광고 하노니, 둘러보아 어디 벙어리이며 남편 말에 마냥 고분고분 바보처럼 따르기만 하는 과수댁(寡守宅) 하나 없소? 그러면 내 몸에 더 이상 알레르기가 일어나지 않을 터인데... . 심지어 황혼이혼 당하는 거 불사하고 이러한 글을 적었다.

      사랑? 얼어 죽을 사랑? 그건 어디까지나 철없고 혈기왕성했던 지난 날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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