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의 날줄을 생각함
거미의 날줄을 생각함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단언컨대, 그들 종족의 조상들은 어부들의 대선배이다. 그들은 어부들이 정치망(定置網)이니, ‘쌍끌이 그물’이니, 저인망(底引網)이니 온갖 그물을 지어 물고기를 잡기 전에 이미 그물을 짰다. 일찍이 우리네 인류는 그들 종족의 조상들로부터 ‘그물’의 개념을 전수(傳受)받았음이 분명하다.
농부인 나는 이른 새벽마다 밭으로, 논으로 나서게 되는데, 허공에 가로로 걸쳐진 실오라기가 양 눈에 걸쳐지는 예가 잦다. 그 실오라기는 바로 그물짓기에 관한 한 대가(大家)인 거미의 그물 날줄 내지 그물 기본줄이다. 새벽에 나는 더러 완성된 거미의 그물도 보게 되는데, 이슬 알갱이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막 떠오르는 태양의 빛에 그야말로 영롱하기 그지없다. 내가 밤새 곤히 잠든 사이에 그들 거미는 분주히 사냥을 위해, 그물을 짰음을 알 수 있다.
내가 아는 바, 대체로 거미들은 고작 한 시간 만에 그물 하나를 ‘뚝딱’ 짓는다고 한다. 그 작업순서 내지 작업과정도 퍽이나 흥미롭다. 가령, 나뭇가지 끝에 앉은 거미는, 맨 처음엔 배끝 3쌍의 실샘[絲泉]에서 외가닥의 실오라기를 ‘솔솔’ 풀어낸다고 한다. 그러면 마치 연실처럼 바람에 나부끼던 그 실오라기의 한 쪽 끝이 자기가 앉은 나뭇가지 건너편 적정한 나뭇가지에 걸리게 된단다. 마치 대추나무에 연실 걸리듯. 그러나 바람이 알맞게 불어주지 않거나, 처음부터 길목(?) 선정을 잘못하거나 하면 기준선 걸기에 실패를 하고 말 것이다. 새벽마다 내 양 눈에 걸쳐지는 실오라기들은 대개가 거미들이 첫 단계에서 실패한 날줄들인 셈이다. 참말로, 첫 단계에서 실패하는 일이 잦을 텐데, 거미들은 굴하지 않고 거듭거듭 시도할 것이다. 거미가 그 기본 날줄을 걸게 되면, 그 다음 단계에는 빨랫줄처럼 드리워진 그 줄을 바짝 당겨 가급적 팽팽하게 한다고 한다. 그러고서는 마치 남사당패의 외줄타기 꾼처럼, 전화 회사 가설요원처럼, 유선 방송사 가설요원처럼 그 외줄을 타고서 복판쯤에 간다고 한다. 그런 다음에 꽁무니에서 실오라기를 내는 한편, 그 실오라기를 타고 땅 쪽으로 사정없이 내려온다고 한다. 그러면 기본 날줄과 방금 전 씨줄은 대문자 ‘Y’꼴이 될 터. 마치 빨래가 많이 널린 빨랫줄이 쳐지듯. 거미는 그때부터 나뭇가지를 오르내리기도 하고, 각 고정점(固定點)을 기본으로 삼아 돌기도 하는 등 방사형(放射型)의 정치망(定置網)을 완벽하게 짜나가게 된다는 거 아닌가. 그 과정을 요약하면, 대략 이렇다. 가로줄 (네, 다섯 곳) 짓기- 가운데 자리로 옮겨가기 - 윤곽선 만들기- 안에서 밖으로 나가면서 나선형으로 만들기 - 밖에서 안으로 사냥용 거미줄 치기( 끈끈이 바름) - 숨은 띠(위장 그물; 수시로 당겨보는 등 신호를 보내어 먹이가 걸려들었는지 여부 확인함.) 만들기.
나는 사반세기 동안, ‘네트워크(net-work)’라는 통신회선 용어에 익숙해 있었다. 통신기술직이 아닌 사무직이었지만, 대한민국 최초, 최고(最高)의 통신회사 ‘KT’에 근무하였으니까. 그 용어, ‘네트워크’는 바로 ‘거미의 그물망’을 상정(想定)한 용어였다. 전국의 그 많은 낱낱의 전화회선을 총규합하여 한 몸체로 만든 상태를 ‘네트워크’라고 보면 된다. 그 네트워크에서 한 구간의 전화선이라도 끊어지면, 이를 곧바로 자동복구하는 체계로 되어 있었다. ‘우회절체(迂廻絶體)’니 ‘바이패스(by-pass)’니 하는 것들. 참말로, 전국의 전화회선 아니 전 세계의 전화회선은 ‘네트워크’로 되어 있다. 그리고 요즘 우리네가 단 5분만 원활한 접속이 아니 되면, 곧바로 금단현상(禁斷現象)까지 느끼게 되는 인터넷에도 거미줄과 관련된 용어가 있다. 바로 ‘www(world wide web)’이 그것이다. 쉽게 풀이하면, ‘전 세계에 펼쳐져 있는 (통신의) 거미줄(web, coweb)’이 된다. 이 인터넷 회선의 덕분으로, 작가인 나는 실시간대로 전국 방방곡곡에 꼭꼭 숨어 정체를 밝히지 않는 애독자들과 이렇게 소통하고 있으니!
거미가 치는 그물이 정교하다느니, 아주 효율적인 구조라느니, 그 실이 놀라우리만치 질겨 여러 실생활에 응용된다느니 등은 다들 너무도 많이 알고 많이 들었을 터. 대신, 나는 거미가 최초로 건너편 지지대(支持臺)인 나뭇가지 등에 걸치기 위해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날고 있는 ‘날실’에 관해 생각을 더 얹어보도록 하겠다. 그것은 마치 우리네가 누구랑 인연을 닿게 하려는 시도(試圖)와도 같다는 것을. 내가 끊임없이 쏟아내는 말들이, 내가 끊임없이 적어대는 변형된 연서(戀書)인 수필작품들이 그 누군가의 촉수(觸手)에 촉수(觸鬚)에 닿기를 간절히 바라왔지 않았던가 하고서... . 정말로 나의 애씀은 그러해 왔다. 참말로, 거미의 집념은 대단하였다. 내가 매일 그 이른 아침에 들에 나서면 양 눈에 걸쳐지는 거미의 ‘날줄’을 다시 생각해보자니, 그저 허망한 일이 아니라는 거. 나는 단 한 애독자의 촉수에라도 내가 토해내는 실오라기 곧 글 한 줄이 닿기만 해도 만족해 할 요량이다. 그러한 점에서 나는 늘 행복하고, 또 다른 행복을 예감한다.
다시 한 번 말하거니와, 거미들은 어부들의 대선배이다. 아울러, 이 수필작가의 대선배이다. 그들은 쉼 없이 기본 날줄을 바람에 나부끼도록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은 그물망 기초작업을 하기 위함이요, 그 누구와 연(緣)을 맺기 위함이다. 거미들이 그 첫 단계에 성공하고 나면, 참말로 얼개를 잘 갖추어 촘촘히 그물을 짠다는 거. 그러한 수고조차도 작가인 나는 진지하게 본받아야겠다. 즉, 제대로 구성미를 갖춘 글을, 태작이 아닌 일정 수준의 작품을 번번이 적어야겠다는 점. 그래야만 ‘애독자’로 일컬어지는 이들이 더 많이 내 치밀한 그물에 걸려들어 옴짝하지 못할 게 아닌가. 나아가서, 문학평론가라고 자처하는 이들조차 꼼짝 못할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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