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줄기는 해코지를 해야
고구마 줄기는 해코지를 해야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고구마 줄기는 해코지를 해야 알이 굵어진다. 여기서 말하는 알이란, 우리가 먹는 ‘변한 뿌리’ 곧 ‘덩이뿌리’다. 대신, 감자의 알은 ‘변한줄기’인데, 고구마의 알이든 감자의 알이든 녹말저장고인 점은 같다.
고구마를 해코지해야 하는 이유는, 오줄없이 기는 줄기의 밑쪽 잎자루 기부(基部)마다 뿌리를 내어놓기 때문이다. 그러면 고구마 줄기는 ‘선택과 집중’이 아니 되어 즉 에너지 분산으로 말미암아 알이 잘아진다. 고구마의 입장에서야 굳이 한 군데 녹말을 저장할 게 아니라, 여러 군데 분산 저장하는 게 더 효율적일지 모른다. 그렇게 하는 것이 주식투자가들한테 금언(金言)인 ‘한 광주리에 담지 말라.’를 실천하는 일일 테고, 조선시대 주요 문서를 동서남북 사고(四庫)에다 분산 관리하는 일일 테지. 그러나 고구마를 작물로서 재배하는 농부들한테만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일. 해서, 대개의 농부들은 고구마를 농사하는 동안, 두어 차례 기는 줄기를 지겟작대기 등으로 이리저리 젖혀 소망하지 않은 여러 자리에 고구마가 녹말을 저장치 못하도록 한다. 하지만, 나는 몇 해 전부터 넷째누님 내외분한테 배워서, 달리 고구마 사후관리(?)를 한다. 고랑에다 부직포(不織布)가 아닌 종이박스 해체분을 깔곤 한다. 넷째누님 내외분은 내 농장 아랫밭을 나로부터 도지(賭地)로 얻어 그 밭 한 켠에 고구마도 해마다 심는데, 그분들은 봄날 고구마 줄기를 심고서 이내 고랑에다 종이박스를 주워다가 해체한 후 깔곤 하였다. 그러면 소망치 않은 덩이뿌리가 땅에 내리지 못한다고 일러주었다. 고구마의 덩이뿌리는 부직포를 쉽게 뚫고 들어가지만, 종이박스만은 뚫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여간, 고구마의 줄기는 어떤 방법으로든 해코지를 하여야만 알이 굵어진다.
어디 고구마만 괴롭게 해야 되던가. 과수(果樹) 등도 가지치기니, 수형(樹型)잡기니 하며 어느 정도 시달림을 주어야 충실한 열매를 얻을 수 있다. 콩이나 들깨는 적심(摘心)이라고 하여 그 원순의 정수리를 낫이나 가위로 댕강댕강 잘라 주어야만 열매를 많이 맺게 된다. 내가 몇 해 동안 경험한 바, 포도재배는 잔손질이 참으로 많이 따르는 농사였다. 숫제 포도밭에서 살아야 하리만치. 그 작업들 가운데 ‘덩굴손 따기’도 만만찮았다. 자고나면 돋아나는 덩굴손을 일일이 손톱이나 가위로 잘라주어야만 했으니까. 그 또한 포도나무를 괴롭히는 일. 이밖에도 농부인 내가 부지불식간에 실천하는, 작물에 대한 해코지는 많다. 이러한 작업을 통틀어 관리(管理) 내지 비배(肥培)라고 하여야 할 터. 전문가들의 주장에 의하면, 다소 수고스럽기는 하지만, 작물을 여러 차례 이식(移植)할수록 열매가 많이 맺는다고 한다. 그러면 위기감을 느끼게 되고, 심지어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게 되어 얼른 후사(後嗣)를 두고자 열매를 더 많이 더 속히 맺게 된다고 한다. 이러한 이치를 아는 터라, 부지런히 작물을 돌보아주지 않을 수 없다. 게을리 하면 수확물이 급감(急減)하고 만다. 나는 글 편편에서 밝힌 바 있지만, ‘작물’과 ‘잡초’는 본디부터 따로 정해진 게 아니다. 농부가 소망하는 것은 작물이요, 소망치 않는 것은 잡초이다. 우리는 작물을 비배하기 위해 잡초를 깡그리 제거하는 일을, ‘제초작업‘이라고 한다. 사실 ’제초‘라는 말은 아주 잔인한 표현이다. 서양인들은 ’제초작업‘이란 말 대신에 ‘잡초관리(weed control)’라고 다소 누그러진 표현을 한다는 게 퍽이나 의미롭다. ‘control’은 ‘관리하다’, ‘제어하다’, ‘통제하다’, ‘조절하다’, ‘규제하다’ 등의 뜻을 두루 지녔기에 그러하다. 내가 일단은 이 글에서 ‘해코지하다’라는 다소 거친 표현을 여러 차례 썼으나, 고구마 줄기를 ‘관리하고 조절하는’ 거라고 함이 좋을 듯하다. 제멋대로 살아가도록 하면 아무짝에도 못쓴다. 너무도 ‘당연’한 걸 아주 ‘태연’하게 말하는 것이지만, 우리네 자녀들마저도 천방지축 자유분방하게 내버려두면 망치고 만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잔소리가 많아지는 법이라는데, 그것은 ‘(세상 경험이 많은) 할머니의 마음’ 곧 ‘노파심(老婆心)’이라는 거.
요컨대, 농부가 나뭇가지를 자르는 일은 그 나무를 너무도 사랑하기 때문이며, 농부가 고구마 줄기를 이리저리 휘젓는 일은 고구마를 너무도 사랑하기 때문이다. 보다 탐스런 열매와 알을 얻기 위함이다. 훌륭한 농부의 손은 그 자체가 ‘거름’이다. 마찬가지로, 부지런한 작가야말로, 밤잠 없는 작가야말로, 생각이 단지 한 군데만 머무르지 않으려는 작가야말로 제대로 된 작품을 빚을 수 있게 되리란 믿음을 떨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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