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작

덤벙주초에 관해

윤근택 2015. 9. 3. 21:55

 

       

                            덤벙주초(-柱礎)에 관해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업무상 하루 종일 붙어 지내다시피 해도 내 삶에 전혀 도움 되지 않는 이도 있다. 그러한 이는 한마디로 피곤할 따름이다. 환갑을 넘어섰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하루 종일 하는 이야기들은 너무도 저급한 데 머물러 있다. 주식 이야기, 더 이상 욕심 낼 것도 없으련만 작은 조직 내 동료에 관한 험담, 남의 부인들과 노닥거렸던 이야기 등. 숫제, 귀를 씻고픈 적이 많다. 그런가 하면, 간헐적으로 그것도 잠시잠깐씩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이한테서는 얻는 게 참으로 많다. 그의 지식과 교양은 남다르다. 그는 명문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이이기도 하지만, 동양화를 그리는 화백(畵伯)이기도 하다. 나아가서, 그는 나와 마찬가지로 유명 통신회사 KT 출신인데다가 종교까지 나와 같으니... .

      어젯밤에는 그가 자기가 근무하는 사감실에서 내가 근무하는 경비실에 잠시 내려와, 끼니거리 곧 오늘의 글감이 궁해 쩔쩔매는 나한테 한국의 미()’에 관해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사실은 내가 그의 도움으로(?) 엊그제 신작수필 빨랫줄을 갈고에서 ‘20세기의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Antonio Gaudiy,스페인, 1852~1926)의 곡선도 거뜬히 적었노라고 고마움을 표했다. 그랬더니, 그는 덧붙여 곡선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것이다.

      윤형, 전통가옥에는 덤벙주초가 곧잘 쓰이지 않았던가요? 생긴 대로의 돌을 주춧돌로 삼았다는 말이지요. 그리고 대들보나 기둥이나 서까래도 가급적이면 구부러진 재목이면 구부러진 대로 그 원형을 유지하려고 애쓰지 않았던가요? 우리네 선조들은 그처럼 자연친화적이었어요. 실은 가우디보다도 훨씬 전에요.”

      내가 덤벙주초라는 게 어떤 주춧돌을 일컫느냐고 되묻자, 그는 아주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어린 날 시골 우리 집을 새로 지을 때 익히 보았던 그 주춧돌이 바로 덤벙주초임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해서, 나의 오늘밤 글감은 자연 덤벙주초이다.

      덤벙주초란, ‘둥글넓적한 자연석을 다듬지 아니 하고 놓은 주춧돌을 일컬으며, ‘다듬주초내지 다듬주초석에 대응되는 말이다. 덤벙주초로는 강돌[江石]이 아닌 산돌[山石]이 주로 쓰였다고 한다. 강돌은 미끄럽기도 하거니와 그 성질이 차갑고 음()이라 여겨 꺼려했단다.

      덤벙주초덤벙-’은 다듬주초인 주초석(柱礎石) 사이사이에 덤벙덤벙 놓은 데서 비롯된 말이라고 한다. 지금부터 적는 이야기는 어린 날 우리 집을 새집으로 지을 때 똑똑히 보았던 것의 재구성이다. 그처럼 생겨먹은 대로의 돌을, 온 동네 장정들이 모여 덜구질하여 흙을 다진 후 기둥 세울 자리에 놓았다. 그런 다음 목수는 주춧돌과 주춧돌 사이에다 먹줄을 튕겨 열 ’이 되도록 하였다. 그것이 기둥을 세울 기준점(基準點)이었던 셈. 목수는 밑면이 반듯한 기둥을 그 덤벙주초에 세웠다. 그런 다음 그 덤벙주초의 요철(凹凸)을 요리조리 보면서, 귓바퀴에 끼운 연필을 오른손으로 빼서 심에다 침을 묻힌 후 기둥의 밑면에 덤벙주초의 요철대로 베껴 그렸다. 그러고는 사정없이 기둥의 밑면을 자귀로, 끌로 연필자국만치 도려내었다. 오늘에야 알았지만, 그렇게 하는 작업을 그렝이질또는 그레질또는 그레발이라고 이른다. 목수는 자기 맘에 쏙 들 때까지 그렝이질을 했다. 그러고서 기둥을  세웠다. 올록볼록 생긴 주춧돌의 주좌면(柱座面)과 그렝이질을 한 기둥 밑면이 아귀가 딱 맞아떨어졌을 때 그 결합력이란 아주 대단할 거라는 거 미루어 짐작이 되었다. 내가 몇 해 전 손수 창고며 헛간이며 닭장이며 지은 적이 있는데, 편편한 돌을 주춧돌로 삼고 기둥의 밑면을 그렝이질을 전혀 하지 않고 세웠다. 그랬더니, 주춧돌과 기둥이 서로 밀려나 네 기둥이 틀어져 기둥들이 단체로(?) 쓰러진 예가 있었다. 그것은 덤벙주춧돌의 위력을 반증하는 일이었다.

      우리네 선조들의 지혜는 이처럼 덤벙주초에도 그대로 간직되고 있다. 덤벙주초는 다듬주초처럼 따로 가공을 아니 해도 되는 터라, 일반 살림집에는 거의 다 쓰였다고 봄이 옳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사찰의 대웅전 등 커다란 건물의 주춧돌로도 예외 없이 쓰였다는 거 아닌가. 밀착력과 자연미를 동시에 추구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덤벙주초 외에도 주춧돌은 그 쓰임에 따라 그 모양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다고 한다. 장주초석, 사다리형 초석, 방형초석, 다각형 초석 등. 그리고 주춧돌의 명칭도 몇 된다. 주좌(柱座)는 주초석 위 기둥이 서는 자리, ‘운두는 다듬초석의 초반(礎盤) 위로 볼록하게 솟은 부분, 초반(礎盤)은 주초석 밑 부분 또는 다듬주초의 밑 부분을 각각 일컫는다.

      나는 이 밤 이 글을 적는 동안, 직장동료 OO’ 화백(畵伯)의 심미안(審美眼)을 새삼 존경하게 된다. 그는 어젯밤 자기 앞에 놓인 대폿잔의 막걸리가 발효가 지나쳐 물이 다 될 지경으로, 우리네 조상들이 생긴 대로의 재료로 집을 짓고 가구를 만들고 생활도구를 만들고 했음에 거듭거듭 찬사를 보내고 있었다. 그는 자못 진지한 표정과 진지한 말투로 이런저런 우리 조상들이 추구했던 곡선(曲線)에 관해 이야기 들려주고 있었다. 숫제, <<고전미술>> 강의였으나, 전혀 지루하지가 않았다.

      다시 온전한 수필작가로 돌아온 나. 나는 덤벙주초를 통해 우리 조상들의 지혜를 다시 생각함은 물론이려니와, 새로운 각오를 다진다. 글을 짓되, 지나치게 기교적어서는 아니 되겠다는 점. 너무 다듬다가 보면, 자연스럽지 못하리란 두려움까지 갖게 된다. 일찍이 윌리엄 와트좋은 글 12개 척도가운데 맨 나중에 자연스러울 것을 들었지 않던가. ‘자연스러울 것이 곧 덤벙추초가 보여주는 아름다움과도 같다는 것을. 특히 수필 장르야말로 글쓴이의 생활을 아주 자연스럽게, 생생히 보여주는 특장점을 지녀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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