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50)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50)
- 집시(Gypsy)의 노래와 춤은-
윤요셉(수필가/문장치료사/수필평론가)
결론부터 말하건대, 집시의 노래와 춤은 몇 몇 작곡가들을 더욱 유명하게 만들었다. 나는 곧 그들 작곡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차례로 소개할 텐데, 그러기에 앞서 몇 가지 기본소양을(?) 애독자 여러분과 함께 갖춰보기로 한다.
집시는 15세기경 몽고 대제국 건설 때에 인도 북쪽 펀잡 지방에 살던 이들이 몽고의 위협에 이집트 등으로 피신하여 이집트를 비롯한 전 세계로 흩어져 유랑민으로 살게 된 데서 비롯되었다는 게 거의 정설로 되어 있다. 그 많은 갈래 가운데 이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50)’과 관련된 집시에 관해서만 간략간략 소개코자 한다.
일군(一群)의 집시들은 스페인 안달루시아에 이주하여 정착하게 된다. 그들은 15세기 스페인인들이 ‘국토회복운동’으로 이슬람교도를 몰아내고 스페인 통일을 하는 데 큰 이바지를 하였다고 한다. 그들 집시들은 이사벨여왕과 페르난도 군대가 무어인들과 전쟁을 하는 동안 큰 공을 세웠다는 거 아닌가. 군대가 알함브라성을 도저히 접근을 못하는 데 비해 그들은 성에 쉽게 들어가는 방법을 알고 지냈고, 그걸 비밀지도로 작성하여 군대에 전해줌으로써 전쟁에 승리토록 하였단다. 그러자 그 대가로 '사크로 몬테(Sacro Monte;'성스런 언덕‘이란 뜻을 지님.)’를 비롯한 여러 산에 동굴을 만들어 지낼 수 있는, 이른바 ‘동굴 허가권’을 받은 것이다. 그리하여 현재 스페인에는 안달루시아를 중심으로 약 1백만 명의 집시들이 산다고 한다. 그들 집시들은 안달루시아에 정착하여 이 지역 민요를 자신들의 스타일로 바꾸어 즐기게 된 것이 ‘플라멩코(flamenco)’. 이 플라멩코는 ‘플란더스에서 온 사람들’이란 뜻을 지녔다는데, 벨기에 ‘플란더스’ 지방 노예들이 추던 춤과 노래에서 유래하였다고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플라멩코는 노래(칸테), 춤(바일레), 기타연주(토케) 세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는 것은 두루 아는 터. 플라멩코는 유랑민인 집시들의 애환이 너무도 잘 녹아 있다는 것도 두루 아는 터.
헝가리에는 ‘차르다시(czardas)’라는 민속무곡이 있다. 본래는 집시 무곡이었다. 느릿한 도입부인 라시(lassú)와 빠른 주부(主部)인 프리시(friss)로 이루어진다. 주부의 강한 싱커페이트 리듬이 특징이다. 19세기 초 생겨났다. 느린 움직임으로 시작해 점점 정열과 야성미를 드러내며 속도도 빨라진다. 4분의 4박자 또는 4분의 2박자로, 남녀가 파트너를 이루어 춤을 춘다.
자, 이 정도면 되겠다. 이제부터 집시의 노래와 춤으로 더욱 유명해진 작곡가들을 차례차례 소개해도 되겠다. 무순(無順)임을 미리 밝혀둔다.
1. 파블로 사라사테(Pablo Sarasate, 스페인, 1844~1908)
그는 바이올린 연주자 겸 작곡가였다. 그는 8세 때 이미 ‘신동(神童)’ 소리를 들으며 널리 알려졌다. 당시 이사벨 여왕은 그를 불러 그 묘기를 듣고서는 크게 감동하여 명품 바이올린인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선물로 주었다. 이윽고 파리에 나가 파리 음악원에 입학, 알라르(J.D. Alard)에게 사사하여 13세로 1등상을 받았다.
1861년 그가 17세 되던 해 런던 첫 공연에 이어 눈부신 연주 활동을 개시, ‘파가니니’ 이래의 비르투소(Virtuoso : 음악의 거장)로서 명성이 높았고, 죽을 때까지 널리 러시아ㆍ유럽ㆍ미국 등지로 연주 여행을 했다. 폭넓은 비브라토와 개성적인 리듬의 매력을 가진 명인적인 연주는 특히 에스파냐 풍의 무곡의 연주 등에서 파가니니를 상기시켜 대중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았다.
나는 그가 34세가 되던 해에 적은 작품 <<찌고이네르바이젠(Zigeunerweisen; ‘집시의 노래’란 뜻임.)>> 듣기를 좋아한다. 어느 음악평론가의 다음과 같은 해설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인상적인 도입부와 애잔한 분위기, 빠르고 긴박감 넘치는 결말에 이르기까지 이 곡은 바이올린의 서정적 특성과 불꽃 튀는 기교를 남김없이 보여주고 있다. 바이올린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런 곡을 만들 수 없을 것이다.’
그의 연주법은 매우 화려하고 기교가 뛰어날 뿐 아니라 우아함까지 갖추고 있어서 연주회 때마다 센세이션을 일으켰다고 한다. 특히 사라사테가 32세 때 음악의 도시 빈에 데뷔했을 때 청중들은 그의 독특하고 화려한 연주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한다. 당시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는 엄격하고 절제된 독일 바이올린 악파의 연주법이 유행하고 있었기에 그의 화려한 연주는 더욱 놀라움을 자아냈다는 거 아닌가.
당시의 작곡가들은 사라사테가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으로 찬란한 기교를 뽐내던 연주에 깊은 영감을 받아 사라사테를 위해 많은 바이올린 곡을 작곡했다고 한다. 그 중 랄로의 <<스페인 교향곡>>과 브루흐의 <<스코틀랜드 환상곡>>, 생상의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와 <<바이올린 협주곡 b단조>> 등.
<<찌고이네르 바이젠>>은 사라사테가 남긴 많은 바이올린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져 있다는데... . ‘집시의 노래’라는 뜻 그대로 이 곡은 집시풍의 느낌을 전해주는 이국적인 선율이라는 거. 헝가리의 민속춤 차르다시(csárdás)의 리듬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위에서도 이미 살짝 소개했듯이, 전형적인 ‘차르다시’의 형식에 따라 느린 도입부인 라수(lassu)와 빠른 프리수(frissu)로 이루어졌다. 해서, 처음엔 느리고 애수 띤 선율로 전개되다가 후반부에는 강한 리듬을 바탕으로 빠른 춤곡이 전개되면서 바이올린의 관능적 선율과 화려한 기교가 펼쳐진다.
더욱 놀라운 점은,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로 알려졌던 파가가니 작품 연주 못지않게, 당시 사라사테 자신 외에 그 어느 바이올리니스트도 << 찌고이네르바이젠>>을 제대로 연주할 수 없으리만치 난해하고 기교적이었다는 거.
이처럼 위대한 작곡가의 작품인 <<찌고이네르바이젠>>을 이따금씩 감상한다는 거, 그것 또한 행복이다.
2.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 독일, 1833~1897)
그에 관해서는 ‘브람스의 눈물’이란 부제가 붙인 본 시리즈물 제 14화에 이미 적은 바 있다. 그 작품 한 단락을 다시 베껴다 붙이기로 한다.
<(상략)그러한 브람스한테 뜻하지 않은 사건이 발생한다. 그의 스승 슈만이, 4개월 여 러시아 연주여행에서 돌아와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 정신병을 앓게 되면서부터다. 슈만은 라인강에 투신자살을 기도하고, 그런 일이 있은 2년 후 죽게 된다. 그때 슈만의 나이는 고작 46세에 불과했다. 슈만은 유가족으로 아내와 자녀 일곱을 두었다. 브람스는 스승의 은혜에 ‘기워 갚고자’물심양면으로 애쓴다. 마음 같아서는 스승의 아내 클라라를 아내로 왜 삼고 싶지 않았겠냐만, 둘레의 이목 등을 의식해서인 그리 못했다.
브람스는 64세에 세상을 뜨기까지 한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20세부터 인연을 맺었던 슈만 내외한테 지근거리(至近距離)에서 무려 44년 동안 음으로 양으로 힘이 되어주었던 사람. 그는 가슴 속에다 한결같이 품고 지낸 스승의 아내 클라라가 77세의 할머니가 되어 죽자, 다음과 같이 탄식하게 된다.
“ 나의 삶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체험이요, 가장 위대한 자산이요, 가장 고귀했던 의미를 상실했다.”
브람스는 가슴 속으로 그토록 사모한 스승의 아내 클라라가 죽자, 그 이듬해 1897년에 세상을 떴다. 그가 이승에서 누린 나이는 64세였다.
브람스. 그를 두고 어느 음악평론가는 이렇게 요약한다.
‘자유롭게, 그러나 고독하게(Frei aber Einsam).’(하략)>
한평생 그렇게 살았던 브람스. 그는 20세가 되던 해 헝가리의 바이올리니스트인 ‘레메니’와 연주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는 이 여행에서 헝가리의 집시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음악에 영감을 얻어 <<헝가리 무곡>>을 무려 21곡이나 작곡 또는 편곡하였다는 거 아닌가. 그 작품들 가운데 제1번, 제3번, 제5번,제 6번은 대단히 유명하다. 단, 제 5번은 표절 등의 시비에 휘말렸던 모양이다. 그 멜로디가 사실은 동시대의 헝가리의 작곡가 켈레르 벨라(1820~1882)의 작곡이라는 것이다. 제 5번은 브람스가 다시 편곡을 했다는 것이다. 그의 이 헝가리 무곡집은 엄청난 인기를 얻어 날개가 돋친 듯이 팔려나갔고, 헝가리의 음악가들이 그에 반대하며 들고 일어나 브람스를 고소했지만, 브람스는 애초 악보를 출판할 때 ‘편곡’이라고 못 박았기 때문에 오히려 승소했다고 한다.
브람스의 그 유명한 헝가리 무곡 시리즈물도 ‘헝가리 집시 무곡’ 곧 ‘차르다시’를 바탕으로 한 것이니, 집시들의 음악이 얼마나 위대하냐고?
3.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헝가리, 1811~1886)
그는 교향시의 개척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작 그는 자기 조국 헝가리의 집시 무곡 차르다시를 토대로 곡을 적었기에 더욱 유명해졌다고 보면 옳다. 그의 <<헝가리 광시곡(Hungarian Rhapsody. No.2. C#단조)>>는 그를 더욱 빛나게 한다고들 평가한다. 그 작품에는 자유분방함과 힘참, 정열적이고 생명력 넘침이 두드러진다.
그도 어린 나이에 피아노 신동으로 알려져 13던 해 조국을 떠나 프랑스 등지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그가 27세 되던 1838년 조국으로부터 불행한 소식을 듣게 된다. 홍수로 말미암아 온 국민이 어려움에 처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는 연인과 파경을 무릅쓰고 그 이듬해 조국을 찾게 된다. 그는 구호기금을 모금하기 위해 국립극장에서 몸을 돌보지 않고 연주회를 여는 등 마련한 기금을 국가에 바쳤다. 이러한 그의 조국애에 보답코자 동포들은 횃불을 들고 그를 호위하여 숙소까지 안내하는 등 뜨거운 동포애를 발휘한다. 이때부터 그는 위에서 소개했던 브람스 사례처럼,자기 조국 헝가리의 민속음악을 수집하여 <<헝가리 광시곡>>를 준비하게 된다.
그의 <<헝가리 광시곡>>의 기틀도 ‘헝가리 집시의 무곡’이었다. 곧 ‘차르다시’였다는 거. 다시 말해, 그는 <<헝가리 광시곡>>을 구상할 적에 ‘차르다시’를 주요 소재로 삼았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조용하고 애수적인 느릿한 도입부인 라시(lassú)와 빠르고 광적인 주부(主部)인 프리시(friss)로 이루어진다.
그는 총 19편의 <<헝가리 광시곡>>을 적었는데, 모두 본디는 피아노 독주용이었다. 그 가운데 가장 애연되는 작품번호 2번을 포함해서 총 6편을 오케스트라용으로 편곡하게 된다.
자, 이제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서 위 3인의 당해 명곡을 틈내어 한 번씩 감상하시기를 바라면서, 내 이번 글을 정리해보아야겠다.
그 어느 한 곳에 머물러 살지 못하는 기질과 환경을 지니고 살아온 집시들. 그들은 자신들의 애환을 노래로 춤으로 표현했다. 그것이 집시의 무곡으로 나타났다. 위 삼인(三人)의 작곡가들은 각각 헝가리 집시의 무곡인 ‘차르다시’를 기초로 하여 곡을 적었다. 그 곡들은 시공(時空)을 초월하여 온 인류의 가슴을 울린다. 참말로, 그들 작곡가들은 집시들의 삶을 음악으로 잘도 그려낸 거장(巨匠)들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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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종합문예지이며 계간지인 <<自由文學>>에 뒤따라오며 시리즈물로 실릴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