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작

'어불러', '더불러'

윤근택 2015. 11. 9. 00:12

 

                     

                            

                                   ‘어ᄇᆞᆯ러’, ‘더ᄇᆞᆯ러

           

 

 

                                                                     윤요셉(수필가/문장치료사/수필평론가)

 

우리 쪽 경상도 사투리 가운데는 어불러더불러가 있다. 전자(前者)어울러, 후자(後者)더불어를 각각 일컫는다. 그러함에도 우리 쪽에서는어불러’, ‘더불러라고 쓰고 있으니, 고어(古語) ‘아래 아가 잔존(殘存)함에서 비롯된 듯.

내가, 국어국문학자도 아닌 내가 그저 사투리 소개나 하자고 이 글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나는 트랙터· 경운기·콤바인 등 농기계를 두루 갖추고 또 그 농기계를 잘 다루는 이웃 OO’과 수년째협력 농업을 하고 있는데, 올 가을 들어 더 이상은 협력 농업을 즉 어ᄇᆞᆯ러서 농사해서는 아니 되겠다고 마음을 고쳐먹게 되었다. 한마디로, 서로 불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결코 그가 갑질행세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 시간 맞추기도 어렵고 손발 맞추기도 어렵고 해서 그리 다짐을 하는 중이다.

농부의 기본자세는 자고 일어나자마자 그날의 일기상황을 국번 없이 ‘131’을 눌러 일기예보를 듣는 일. 일전 나는 토요일, 일요일, 월요일에 걸쳐 가을비가 제법 많이 내린다는 일기예보를 듣게 되었다. 해서, 나름대로 격일제로 근무하는 직장생활을 고려하여, 비번인 목요일 새벽에 퇴근하자마자 400여 평 논에 깔아둔 볏단을 뒤져 가을볕에 쬐어 말려 단도리를 해야겠다고 별렀다. 서둘러 퇴근하여 농막에 도착해서 아침밥을 준비하자니, 어불러 농사를 짓는, 두레로 농사를 짓는 OO’한테서 전화가 따르릉왔다.

윤형, 오늘 바쁘신가?”

사실 개인택시 기사 겸 농사꾼인 자기나 직장인 겸 농사꾼인 나나 가을걷이에 시간 쪼들리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여북 답답했으면 그런 말을 했겠는가. 그는 자신의 논 600여 평에 눕혀둔 나락()을 비 맞히기 전에 함께 걷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자기는, 나와 달리, 짬 내어 볏단을 미리 뒤져두었다고 했다. 순간, 내 속은 타들어 갔으나, 흔쾌히 그러자고 답했다. 그 덕분에 그는 큰 말썽 없이, 비가 오기 전에, 낟가리에 쌓아둔 자기의 벼를 나 아닌 또 다른 이의 도움으로 탈곡을 끝냈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내 논의 벼는 어떻게 되었냐고? 그가 자기 논에서 자기 벼를 탈곡하는 동안, 나는 그 사실도 모르고, 바쁜 걸음을 쳐야만 했다. 새벽에 직장에 출근하자마자 보고라인을 통해 사정을 이야기하고 월차휴가를 얻었다. 그리고는 단골로 드나드는 시내 철물점으로 달려갔다. 농막에도 여러 개의 가빠(kappa, capa)가 있음에도, 추가로 몇 장을 더 사서 황급히 논으로 달려가야만 했다. 점심밥도 거른 채 진종일풋 볏단을 날라다 낟가리를 세 채나 지었다. 그리고는 가빠로 덮었다. 무려 8장의 가파가 쓰였다. 그러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내리 사흘간 장대비가 온 다음, 그 가빠를 걷어치우고 다시 볏단을 온 논에다 펴 널더라도 도리가 없다고 여기며 그리 하였다. 나의 신실한 애독자들 가운데 농촌 출신이 아닌 분들은 이해하기 힘든 사항이다. 다 지은 벼농사이지만, 막판에 비를 홀딱 젖게 하면 큰 낭패다. 특히 베 눕혀둔 벼는 비 맞으면 낭패를 맞게 된다. 싹이 나거나, 후일 찧으면 싸라기가 되거나 한다. 실은, 나와 그 객지친구 OO’만 협력관계에 있는 것은 아니다. 내 고등학교 선배이자 지난 직장의 선배인 OO’도 같은 그룹(?)에 들어있는데, 그는 숫제개념상실(?)’인 양반이라 더는 어찌 할 재간이 없다. 사람 호인(好人)인 것과는 전혀 별개사항이다. 나는 평소 입이 닳도록, “형님, 농사일은 우선순위가 있어요. 이럴 때에는 이런 것부터 조치해야 합니다. 실기(失機)하면 절대 아니 됩니다.”했지만, 여태 제대로 실천하는 구석이 없었다. 나도 지쳐서 더 이상 말을 아니 하는 편이다. ‘OO’300여 평 남의 논을 임차하여 벼농사를 짓건만, 위기관리를 않은 채 내팽개쳐 두어 이 논나리 비(장대비를 우리 쪽에서는 이렇게 부른다.)’에 볏단이 논에 둥둥 떠다닐 것만 같다.

어쨌든, 나의 벼농사는 그리 되었다. 일단, 큰 뒤탈은 없을 걸로 여겨지나, 떠오르는 조상들의 말씀이 한, 둘 아니다. 그 가운데에는 이웃처녀 믿다가 장가 못 든다.”도 있다. “내 손이 내 딸이다.”도 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어ᄇᆞᆯ러서 하지 마라.”말도 있다. “모내기철에는 송장 손도 그립다.”도 있다. 아니 지었으면 아니 지었지, 앞으로어ᄇᆞᆯ러서 농사를 할 생각은 전혀 없다.

대신, 어ᄇᆞᆯ러 더ᄇᆞᆯ러 하면 퍽이나 효과를 거두는 일도 있긴 하였다. 요즘 흔히 쓰는 말로 시너지(sinergy)에 해당하는 그 행사. 바로 내 어릴 적 손위 누이들이 하던 모두미(모듬)’가 그것이었다. 밤이 유난히 길던 겨울밤, 내 누부야를 포함한 누부야들은 커다란 그릇을 들고 이 집 저 집 순회하였다. 그들은 저마다 자기네 찬장 등에서 이런 저런 요릿감을 모아 와서 어느 한 집에서 그것들을 두루두루 모아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었다. 그렇게 하는 것을 모두미라고 불렀다. 그 음식의 시너지 효과를 우리들 어린 동생들도 한껏 누렸다. 그러한 점에서라도, 활어횟집에 가거들랑, ‘광어회도다리회’니 주문치 말고 ‘(잡어) 모듬회를 주문함이 낫다는 것을. 어디 어ᄇᆞᆯ러 더ᄇᆞᆯ러의 시너지가모두미모듬회에만 그칠까? 사실은 내남없이 속한 사회는 '어ᄇᆞᆯ러 더ᄇᆞᆯ러가 요체라는 점을 절대 지나칠 수 없다. 각자의 또렷한 개성들이 한데 뭉쳐 다채로운 향기를 뿜어대는 게 가장 이상적(理想的)이다.

끝으로, 내 이야기 비약컨대, 그러한 점에서라도, 지금 우리 사회에 온통 혼란을 야기시킨 국사교과서 국정화는 전체주의적 발상이라는 거. 그렇다면, 최초로 그러한 획일적 사고(思考)를 지니고 밀어붙이기 한 위인을, 역사는 도대체 어떤 인간으로 기록할까 자못 걱정스럽기까지 하는 걸. 불쌍하게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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