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농부, 감을 다 따다
윤 농부, 감을 다 따다
윤요셉(수필가/문장치료사/수필평론가)
농부들 사이에는,‘한 해 농사는 된서리가 내리면 비로소 끝난다.’, ‘가을걷이는 콩 타작을 마치면 모두 끝난다.’등의 말이 통한다. 나한테는 ‘감 따기’가 끝나야 한 해 농사가 거의 끝나는 셈이다. 10월 초부터 시작된 감 따기는 11월 15일인 어제서야 마감할 수 있었다. 본디 감나무 그루 수도 많지만, 벼농사·고추농사·들깨농사 등도 두루 하는 데다가 격일제로 어느 직장 경비실에 근무하는 터라, 감 수확에 연일(連日) ‘발씬’매달릴 수가 없어서 그리 된 것이다. 하여간, 어제 감 수확을 끝냈다. 줄잡아 2000kg 되는 생감. 앞으로 1월말까지 쉬엄쉬엄 반자동기계로 깎아 감말랭이를 만들 일만 남겨 두었다. 그리고 차일피일 미뤄 뒀던, 내 고운 이들한테 ‘홍시 만들어 부치기’도 차례차례 하면 된다.
무슨 심사일까? 나목(裸木)이 된 감나무를 쳐다보자니, ‘시원섭섭하다’는 생각이 들 게 뭐람? 해서, 앞으로 한 동안 이웃들이 손이 달려서, 혹은 품이 아니 나와서 수확을 포기한 감나무에서 감을 따 보탤 요량이다. 왜 “(손에 흙) 묻힌 김에... .”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오늘 낮에는 짬을 내어, 과일 담는 플라스틱 컨테이너(상자)도 30개씩이나 더 사둔 상태다. 그것들이 30kg들이 컨테이너이니, 도대체 앞으로 얼마만치의 남의 감을 더 따겠다는 의지냐? 실은, 내가 이처럼 의욕을 갖는 것은 물욕(物慾) 때문만은 아니다. 내 말로써는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 일찍이 김영랑 시인이 ‘작품 45’라 제목을 붙여 발표한 ‘모란이 피기까지는’이 지금의 내 마음 대변하는 것 같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5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참말로, 가지를 쳐다볼 때면, 언제 저 감들을 다 딸꼬 안달을 부리기도 했건만, ‘감을 다 따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인 걸! 남의 집 감나무의 감마저도 더 따겠다는 지금의 내 심정을, 내 신실한 독자님들께서 진실로 짐작하실까. 감을 다 따고 나면, 이 농부도 한 해 더 늙어간다는 아쉬움도 있다는 것을. 그러한 내 심정을 대변하는 시는 한 편 더 있다. 바로 서정주 시인의 ‘행진곡’ 혹은 ‘罷場(파장)’이란 시가 그것이다.
‘잔치는 끝났더라/마지막 앉아서 국밥들을 마시고/빠알간 불 사루고//재를 남기고 포장을 걷으면 저무는 하늘/일어서서 주인에게 인사를 하자// 결국은 조금 醉해가지고/ 우리 모두 돌아가는 사람들// 모가지여/모가지여/모가지여/모가지여//멀리 서 있는 바닷물에선/亂打하여 떨어지는 나의 鐘소리//’
사실 내 아슴프레 한 기억으로는, 그분의 위 시는 그분 시가 나오기 전에 이미 중국 어느 유명한 문인(文人)이 적은 글과 퍽이나 닮아(?) 있지만, 그걸 문제 삼고 싶지는 않다. 다만, 감을 다 따고 난 지금의 내 가슴이 나목이 된 감나무들 못지않게 허전하고 허탈할 따름이다. 실연(失戀)을 한 이는 그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속히 새 사람을 구한다지 않던가. 내 젊은 날 경험상으로도 그건 확실하다. 한번 방화(放火)를 저지른 이는 거듭거듭 불을 낸다고도 하였다. 나는 그 병을 ‘피닉스 증후군(phoenix-syndrome)’이라고 일컫는다는 것도 알고 지낸다. 하여간, 서정주 시인이 노래한 대로, 내 마음 ‘잔치는 끝났을 뿐만 아니라 국밥까지 식은’ 형국이다. 해서, 그 무엇으로라도 채워야 한다. 어서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는 겨울이 되었으면 차라리 낫겠다. 그러면 해마다 그랬듯, 오직 추위를 견딜 생각만 하게 될 테니까.
내 기억을 더듬노라면, 감을 다 딴 후 겪게 되는 이‘어찌 할 바를 모름’과 같은 증세를 여러 차례 겪었다. 내 손위 형제자매들은 무려 여덟 분이고 내 아래는 남동생 하나. 그러니 본인 결혼식을 포함해 잔치를 무려 열 번을 경험했다. 거기다가 양친의 수연(壽宴)과 장례식까지 합치면, 남들보다 퍽 많은 큰일을 경험한 셈이다. 그때마다 북적대던 하객(賀客)들과 문상객(問喪客)에 치여 정신없이 바쁘다가도, 막상 다들 떠나고 뒷정리를 할 적마다 느꼈던 그 ‘맥 빠짐’. 어찌 설명할 수가 없다. 그러한 상태를 현대에 이르러서는 ‘패닉(panic)'이라고 한다. 나뿐만 아니라 집안이 모두 그러한 순간에 울곤 하였다.
그 ‘맥 빠짐 증세’를 내 농장이 아닌, 직장에서도 겪는 게 사실이다. 나는 격일제로 이곳 경산에 소재한 ‘중소기업대구경북연수원’경비실에 근무하고 있다. 명색이 교육기관이다 보니, 드나드는 이들이 참으로 많다. 그때그대마다 바뀌는 얼굴들, 그때그때마다 바뀌는 승용차 번호판들. 시도 때도 없이 왔다가 또 시도 때도 없이 떠나가는 이들. 그들을 맞고 배웅하고 나면, 지난 날 겪었던 그 큰일 치른 다음의 기분과 거의 비슷하기만 하다. 특히, 지난 한 해 동안은 사감실에서 근무하였는데, 미화요원들인 부인들을 도와 각 호실 정리정돈도 하였다. 방 열쇠를 내어주고 받고 하는 과정에서, 다들 떠나고 난 뒤에 매번 맛보았던 그 허전함 내지 허탈함은 아주 대단했다.
어차피 우리네 삶은 이러한‘순환(循環)’이라는 궤(軌)에서 벗어날 수 없는가 보다. 해가 뜨고 해가 지고, 만나고 헤어지고, 봄이 오고 가을이 오고... 그러니 하나의 믿음은 끝까지 버리지 말아야겠다. 실은, 그 믿음이란 게 대단한 것도 아니다. 내년 이른 여름 또다시 감꽃은 필 것이며, 또다시 감이 달릴 것이고, 또다시 이맘때면 감을 딸 거라는 믿음. 그러면 따라서 나도 더 늙어갈 거라는 쓸쓸한 믿음. 나아가서, ‘감’이란 과일은 ‘감(going)’과 너무도 통하는 과일이라는 거. 땡감도 가고, 영감도 가고, 홍시도 가고... . 감이란 과일은 본디 그러하지 않던가. 그래서일까, 어른들은 감에 비유해서 말하곤 하였다. “올 적에는 순서 있으나, 갈 적엔 그 순서가 없다.”고. 참말로 감은 오줄없다. 1차 생리적 낙과(落果)니, 2차 생리적 낙과니 하며 잘도 떨어지곤 하지 않던가.
어쨌든, 나는 마음먹은 대로 남의 집 감도 힘닿는 데까지 딸 것이다. 그것이 운동으로 따지면, 준비운동, 본운동에 이은 정리운동에 해당한다. 나름대로 나는 정리운동을 그렇게 하고자 한다. 내 한 해를, 내 가슴을 추스르기 위해서라도 남의 감도 얼기 전에 기어이 딸 것이다.
* 홍시든, 곶감용 감이든, 생감이든, 감말랭이든 필요하신 독자님들께서는 연락주시는 거 잊지마세요. 제 블로그든, 카페든, 이메일(yoongt57@hanmail.net)이든 이용해주세요. 꼭히 올해가 아니더라도,내년에라도 필요하시면 연락주세요.
* 이 글을 적는 내내 도와준(계속 거듭 흘려놓은) 뉴 에이지 음악 함께 듣기 :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한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