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작

오입쟁이떡

윤근택 2015. 11. 28. 20:14

 

 

 

                                                오입쟁이떡  

 

 

                                                                          윤요셉(수필가/문장치료사/수필평론가)

 

나는 격일제로 어느 연수원 경비실에 근무한다. 오늘 이른 아침, 구내식당 영양사가 경비실 앞에서 승용차를 세우더니, 백설기 곧 흰무리를 한 박스 내려 주었다. 일주일 전쯤 그녀는 결혼을 했고, 우리는 소속은 다르나 일제히 부조(扶助)를 했는데, 답례품으로 그처럼 뜨끈뜨끈한 이바지떡을 가져온 것이다. 참말로, 그것을 이바지떡이라고 한다. 새신랑측에서 처가쪽으로 보내는 떡을 이바지떡이라고 하고, 새댁측에서 시댁쪽으로 보내는 떡 등을 이바지 음식이라고 하였다.

다들 아시다시피, ‘이바지는 기여·공헌·도움 되게 함·향응 등의 뜻을 두루 지닌다. 이바지잔치하다라는 뜻을 가진 옛말 이받다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옛날에는 혼례를 치르고 난 후에 신랑과 신부를 맞이하는 양가에서 큰상을 차리고 이를 사돈댁에 보내는 풍습을 상수라 하였는데, 요즘은 혼례음식으로 이바지 음식을 주는 것으로 변하였다고도 한다. 신혼 때에 쓰이는 이바지 음식은 이바디·봉송(封送상수·차반·신행음식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바지떡을 다시 생각하자니, 남자들 사이에 쓰는 저속한 말 (치다)’을 아니 떠올릴 수가 없다. 남녀간의 성교(性交) 또는 성적(性的) 대상자인 여성 자체를 일컫는 이 말. 심지어 어떤 이들은 호텔이나 모텔을 떡집또는 떡공장이라고 불러대기까지 한다. 대개 안반(案盤) 또는 병안(餠案)에다 찐 떡덩이 또는 떡밥을 얹어 안으로 안으로 손으로 우겨넣는 이는 아낙네이고, 그 떡덩이를 공이나 떡메로 찰지게 내려치는 이는 남정네다. 그처럼 떡을 쳐나가는 일이 마치 자신들의 방사(房事) 같아서 그러한 말이 생겨난 듯싶다. 물론, ‘누워서 떡먹기란 말도 체위상(體位上) 여성 상위(上位)를 일컫는 말일 테고. 사실 이 누워서 떡먹기에 관한 이러한 본인의 추리는, 이미 다른 수필작품에도 적은 바 있다. 그런가 하면, 이바지떡과 관련된 또 다른 말도 있다. 권세를 누리는 이들한테 뇌물을 바치는 일을 두고,“떡값 어쩌고 저쩌고... .”한다. 도대체 배가 얼마나 크면 그처럼 거액(巨額)의 떡값을 주거니받거니 하는 것인지? 실은, 그 떡값은 오입자금(?)을 일컫는 말인 듯싶다. 아니면, ‘이바지의 여러 뜻 가운데 향응을 일컫는 말인 듯도 싶고.

그 많은 떡 종류 가운데에서 이바지떡외에도 흥미로운 떡이 있으니... .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서는 오입쟁이떡이란 말을 어디 들어나 보셨을까? 오입쟁이떡이란, ‘대추· · 석이(石耳) 등의 채 친 것을 얹어서 부친 차전병을 마름모꼴로 썰어서 설탕, 계핏가루를 뿌려 잰 웃기떡을 이른다. 우리쪽 어른들은 그 떡을 우지지라고 부르곤 하였다. 제사상에 올리는 떡은 떡쟁반에 괴되, 짝수가 아닌 홀수로 한껏 쌓아올린다. 그 떡쟁반 맨 위에 올리는 떡이 바로 오입쟁이떡이다. 그 떡은 집으로 따지면, 지붕에 해당한다. 그러기에 우지지라고 불렀던 것 같다. 우리 쪽에서는 오입쟁이떡에 대추구불이세 개를 얻는 게 상례(常例). ‘대추구불이, 탁구공 크기로 떡을 만든 후 대추가루 위에다 굴려서 대추 조각을 표면에 골고루 묻힌 데에서 비롯된 사투리인 듯하다. 어쨌든, 그 오입쟁이떡은 지붕 또는 모자에 해당하는, 장식용 떡이다. 그러한데 왜 그 떡을 하필이면 오입쟁이떡이라고 부르게 되었을까? 나름대로 몇 가지 상상해 본다. 오입쟁이 남정네는, 외간 여인한테 혼이 팔려 떡쟁반에 괴어둔 시루떡 등도 먹을 사이 없이 그 얇디얇은 떡만 먹고 방문을 박차고 나간 데서 유래되었을까? 아니면, 오입쟁이가 외간 여인을 꼬드기기 위해 얇디얇은 입술로 온갖 달콤한 이야기 다하기에, 그 오입쟁이 입술만치나 얇게 빚은 떡이라는 뜻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바람끼 많은 여인네가 통상 그러하듯, 온갖 현란(眩亂)한 치장을 한 그 떡이 오입쟁이 남자를 꼬드기는 듯해서 생긴 떡 이름일까? 아무튼, 그 많은 떡 이름 가운데에는 오입쟁이떡도 있음을.

이바지떡, 오입쟁이떡 외에도 흥미로운 떡 이름들이 많다. 그러나 모두 생략키로 하고, 어린 날 우리네가 어쩔 수 없이(?) 먹어야했던 장떡을 소개해야겠다. 당시에는 집집이 수세식이 아닌, 이른바 푸세식 화장실이었다. 기껏 해봤자, 땅을 파고 커다란 옹기항아리를 묻은 게 변소였다. 그 옹기항아리 주둥이 위에다 피죽 또는 통나무를 걸치고 그 위에다 양발을 올려놓고 용변을 보곤 했다. 어린 우리는 간혹 발을 헛디뎌 다리까지 쑤욱그 똥통에 빠지곤 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장떡을 만들어 우리더러 얼른 먹으라고 하였다. 그러면 똥독()으로 인한 후환(後患)이 없어진다고 하였다. 호박잎이나 들깨잎을 얼른 따다가 그걸 밀가루반죽에 묻혀 번철(燔鐵)에 올려 구워내던 게 장떡이었다. 똥통에 빠진 후에 장떡을 꼭 먹어야만 하는 이유를 아직도 잘 모른다. 실제로 그 장떡이 해독작용을 하는지, 아니면 사고 재발(再發)을 막는 일종의 비방(秘方)인지 알 길은 없다.

이제 내 이야기 한 걸음 성큼 앞으로 나아간다. 우리 조상들은, 특히 여인네들은 수백, 수천 종류의 떡을 만들어 왔다. 재료와 제조방법도 아주 다양하다. 재료에 따라, 제조방법에 따라 떡의 맛도 수천 갈래다. 수필작가인 나는 떡의 재료와, 떡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떡의 재료는 곧 수필작품의 소재에 해당한다. 그리고 떡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과학적으로 말해, ‘화학적 변화라기보다는 물리적 변화인 셈이다. 그것은 재구성(再構成;restructure)’이라고 말해도 되겠다. 떡의 성분은 본디 떡 재료의 성분에서 크게 변화하지 않음에도 그 맛이 천차만별이라는 거. 수필가는, 훌륭한 수필가는 남들과 똑 같은 재료 즉 소재를 다루어 떡에 해당하는 작품을 만듦에도 그 맛이 남들의 떡에 비해 월등하다는 거. 그 이유는, 그가 재구성을 아주 절묘하게 하기 때문이리라. 내 둘레에는, 그리 많지는 않으나, 맛있는 떡을 빚는 수필가가 더러더러 눈에 띈다. 그들이야말로 이바지를 잘 하는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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