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근택 2015. 12. 5. 00:24

 

 

                               

                                                   32-4=28

           

 

 

                                                                     윤요셉(수필가/문장치료사/수필평론가)

 

참말로,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치과전문의는 환자인 나한테 태연하게 말했다.

다 되었습니다. 부분 마취를 했는데, 전혀 아프지 않았지요?”

순간, 나는 전혀 감각도 없었는데, 허탈감 내지는 상실감을 맛보게 되었고, 의사선생님한테 따라가다시피 하며 어린애처럼 보채었다.

선생님, 줄잡아 50년 저와 함께 했던 건데요... . 저는 이제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어버렸군요.”

혀끝으로 그 말썽스럽던 자리를 더듬어 보았더니, 거즈[gauze] 뭉치로 메워졌음을 감지하게 되었다.

나는 수납창구 간호사한테 다가가 치료비 아니, 내 이빨 값 6,000원을 받는 대신, 도리어 지불하는 한편, 처방전을 건네받고 있었다. 그러면서 아쉬워, 간호사한테도 질문을 하게 되었다.

간호사님, 영구치(永久齒)인 제 두 번째 어금니[2 大臼齒]’는 대략 언제쯤 생겼던 거에요? ”

그러자, 간호사는 만 6세경에 젖니 어금니 뒤쪽에 나기 시작했을 거라고 알려 주었다. 또다시 나는 섭섭해서 한마디 하게 되었다.

간호사님, 이빨이 빠진다는 것은 이젠 다 늙어빠졌다는 증거지요? 괜히 슬퍼요. 그러니 뽑은 제 이빨 종이에 싸서라도 돌려줄 수 없을까요?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서요.”

그러자, 마침 수납업무를 도우러 나온 또 다른 간호사가 상냥하게, 가지런하고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응수했다.

선생님, 앞으로 여문 음식 더는 먹지 말라는 신호일 따름이니 너무 맘 아파하지 마세요. 그리고요 이빨 돌려드릴 수는 없지요. 팔을 끊어낸 환자가 자기 팔을 도로 달라고 할 수 없듯이요. 적출물(摘出物) 무단반출은 법으로 규제하고 있으니까요. ”

다시 말하거니와, 줄잡아 50년 나와 함께 했던 왼쪽 아래 두 번째 어금니는 그렇게 해서 어느 쓰레기통에 잔인하게 헌신짝처럼 버려졌을 것이다. 오복(五福) 가운데 하나라는 이빨. 그 가운데에서 하나를 더는 어쩔 수 없어 뽑을 수밖에 없었으니... .

50여 년 동안 음식물을, 특히 내가 소주안주로 즐겨해 왔던 마른오징어 등을 잘도 찧어주었던 어금니들. 해서, 1일 소구치(小臼齒2 소구치·1 대구치·2 대구치 등으로 부른다는 것을. 여기서 말하는 ‘--’절구또는 찧다를 뜻한다지 않던가. 아무튼, 절구에 해당하는 이빨 하나를 도리 없이 떠나보내야만 했다.

돌이켜본다. 내가 풍치(風齒)를 앓기 시작한 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는다. 수개월 전, 잇몸이 퉁퉁 부어 피고름이 맺혔기에 그곳을 이쑤시개로 손수 찌른 후 혀끝으로 지질러 눌러 그것들을 빼낸 후 주저앉혔다. 그래도 영 신통치 않아 미련부리다가 치과에 들렀다. 엑스레이 촬영 결과, 왼쪽· 오른쪽· 아래· 위 가릴 것 없이 어금니라고 생겨먹은 어금니들 모두의 뿌리 부위는 시커멓기만 하였다. 끽연과 음주가 악영향을 끼쳤다고 했다. 의사선생님은 지시봉으로 모니터의 그 부위를 가리키며, 부기(浮氣)가 가라앉으면 곧바로 발치(拔齒)함이 좋겠다고 권고를 해왔다. 천만의 말씀! 애지중지해왔던 내 이빨들을 함부로 뽑을 수는 없다고 벼르고 참아왔다. 대신, 인사돌이야 옥수수 속대궁 삶은 물이야 좋다는 약으로 다스려 왔다. 그랬더니, 불행 중 다행으로 여타 어금니는 여태 다시 말썽을 부리지 않는다. 대신, 오늘 떠나보낸 그 이빨은 내내 말썽을 부려 왔다. 도저히 더는 함께 할 수 없노라고 여겨, 마지못해 그 녀석을 떠나보내기로 용단을 내렸던 것이다.

앓던 이를 뺀 듯 시원하다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이 맞기는 맞는 거 같다. 하더라도, 시원섭섭한 게 사실이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자기 주인인 나를 위해, 나의 식생활을 위해 봉사해왔던 녀석. 그 한 녀석이 떠남으로써 녀석의 동기(同氣)들인 나머지 이빨들이 갈라 맡아야 할 저작(詛嚼;씹기;chewing)의 부담도 생각 아니 할 수가 없다. 순망치한(脣亡齒寒) , ‘입술이 없으면 이빨이 시리다는 말도 있지만, 사실 나는 이빨과 관련해서 그보다 더 중요한 체험을 한 바 있다. 일찍이 치과에 들렀더니, 의사선생님과 간호사들이 앵무새처럼 말한 적 있다.

“사춘기인 18세 전후에 자라나기 시작한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사랑니는 별로 쓰임이 없어요. 칫솔도 닿지 않는가 하면, 뒤늦게 난 터라 온갖 치아질환을 일으킬 따름이에요.”

나는 그분들 말만 곧이곧대로 듣고, 아래 좌우 두개의 사랑니와 위 좌측 사랑니를 차례로 시간 사이를 두고 빼낸 적 있다. 그러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 일이 잘못되었음을 느끼게 되었다. 빼곡했던 이빨 사이가 차츰 성기게 되더라는 거. 특히 한쪽 버팀목이 사라진 두 번째 어금니 [2 大臼齒]’한테 짐을 떠맡기게 되더라는 거. 내가 오늘 떠나보낸 아래 왼쪽 두 번째 어금니의 발병도 사랑니 부재(不在)와 전혀 무관치 않을 거란 생각을 해보게 된다. 아무튼, 내가 믿는 하느님께서는 우리한테 공연한 걸 절대로 내어주시지 않았을 텐데... . 해서, 그 많은 치과의사들이 수시로 권고함에도 우측 상단 사랑니만은 여태 뽑지 않고 지낸다.

내가 32-4=28’을 제목으로 삼은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대개 성인의 이빨은 사랑니 4개를 포함해서 32개다. 나도 본디는 32개의 튼튼한 이빨을 지니고 있었다. 그랬는데 위에서 밝힌 대로 3개의 사랑니를 깊이 생각지 않은 채 치과의사들 말만 믿고 진즉에 뽑아버렸다. 그러다가 오늘 1개를 더 빼게(-) 되었으니... . , 이 글을 쓰기에 앞서 자료를 챙기다가 알게 된 흥미로운 사실을 이 단락에 보태어야겠다. 인류의 조상이었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나 오랑우탄이나 침팬지의 이빨은 현대인 성인들의 이빨 개수 32개보다 많았고, 많다고 한다. 진화할수록 이빨 개수가 줄어든다고 한다. 해서, 앞으로 인류는 성인이 되어도 28개 정도의 이빨을 지니지 않을까 주장하는 이도 있다. 그는 아예 사랑니 4개가 나지 않을 거라고 주장한다. 이빨 개수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현재의 인간으로 진화해 오는 과정에서 줄어든 이유는, 음식이 한결 부드러워졌고, 머리 굵기가 커졌고, 말을 하게 됨으로써 그에 따라 하악골(下顎骨) 곧 턱이 차츰 뒤로 들어가게 되어 이빨이 들어찰 공간이 좁아졌기 때문이란다. 그러니 인위적으로나마 현재 28개 이빨만을 가진 나는 꽤나 진화한 인간? 이는 괜히 위안 삼으려고 하는 우스갯소리다.

사실 오늘 치과의원에 다녀온 이는 나만이 아니다. 내 작은딸이 자기 엄마와 함께 나와는 또 다른 치과에 다녀왔다는 소식을, 아내한테서 전화가 와서 알게 되었다. 사정상 나는 가족과 떨어져 살기에 두 딸아이의 근황(近況)도 잘 모르는 편인데, 서른 안팎의 아가씨인 녀석은 이빨 하나를 발치하고 임프란트(implant)를 시작했다는 거 아닌가. 공교롭게도 같은 날, 애비는 이빨 하나를 뽑고, 녀석은 인공이빨 하나를 심고 있었던 셈이다. 자세히 살펴본 바, 인공이빨 이식술을 일컫는 ‘implant’‘im-(‘안으로-’)’‘plant(‘심기’)의 합성어임을. 사실 치아문제로 따지자면, 부모 된 처지에서 작은딸애보다도 큰딸애한테 더 미안하게 생각한다. 우리 내외는 그 녀석이 중학생이 될 때까지도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지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녀석은 어금니 등 여러 개의 치아가 돋아나지 않는, 이를테면 기형의 이빨을 지닌 채 자라났던 것이다. 그때 얼마나 가슴 미어지던지. 그길로, 녀석은 꽤나 긴 세월 동안 현대 의학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모르긴 하여도 녀석의 이빨 전체 개수는 인공치아를 포함하더라도 32개에 못 미칠 것이다. 그때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비쩍 말라 고통스럽게 지내던 큰딸애의 말이 다시금 가슴 아프게 할 줄이야!

녀석은 애비와 에미를 향해 번갈아 손가락질 하며, 해쓱 웃으며 원망 아닌 원망을 한 적이 있다.

이 불량공장! 딸년을 이처럼 불량제품으로 만들어 내다니!”

다시 말하거니와, 이빨은 오복 가운데 하나라는데, 두 딸애들한테 튼실한 치아를 지닌 아이들로 태어나게 하지 못한 점 새삼 미안하게 생각한다. 내가 양친으로부터 물려받은 그 귀중한 이빨 한 개를 끝내 지키지 못한 불찰(不察)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것이 세월이며 늙어감이라고 하더라도 슬픈 것은 마찬가지다. 그것을 영구치(永久齒)라고는 하나, 결코 영구치가 아닌 찰나치(刹那齒)’라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아쉽기 그지없다. 서로 이웃하던, 내 남은 이빨 28개들마저 앞으로 시나브로 빠져 달아날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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