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에 관해
‘수지’에 관해
윤요셉(수필가/문장치료사/수필평론가)
아랫동네 ‘금곡2리’에 소재한 ‘금곡 정미소’ 한(韓) 사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윤 과장(나의 택호임.), 나락 찧어놨으니, 찾아가시게나.”
해서, 이내 승용차를 몰고 가서 20kg들이 쌀 4포대 반을 찾았다. 손수 농사해서 찧은 ‘첫 쌀’이 얼마나 고맙고 자랑스럽던지. 사실 올해 가을에는 오줄없이 장맛비가 내렸다. 400여 평 논바닥에 눕혀둔 볏단을 비가 오기 전에 풋대로 걷어 낟가리를 쌓고, 가빠를 씌웠다 걷었다를 거듭하는 등 꽤나 수고를 하였다. 그런 수고 끝에 찧은 방아이니 흐뭇할밖에. 이번 ‘첫 쌀’은, 가빠 웃기로 삼아, 소수(小數)의 희생을 감수했던 볏단을 따로 모아 탈곡하고, 또 그것들 ‘우케’를 따로 말려 에멜무지로 지레 찧은 쌀이다. 어른들 말씀 하나 그른 게 없다. 그처럼 비늘지어 지붕삼은 볏단. 여러 날 장맛비에 시달린 벼였던 탓에, 어른들 말마따나 싸라기가 많이 생겼지만, 이게 어디냐!
이 ‘첫 쌀’ 네 포대기 하고 가웃 가운데, 한 포대기를 그 누구도 아닌 내 가족 몫으로 맨 먼저 떼어놓았다. 이렇게 하는 걸 지난 날 내 어머니는 ‘수지 뜬다(뗀다)’고 말하곤 하였다. ‘수지’에 관해서는 다음 단락에서 본격적으로 이야기 펼칠 테고... . 그렇게 쌀 한 포대를 온전히 나의 몫으로 젖혀두고, 나머지 쌀로는 탈곡 때 거들어준 이한테 품삯 대신으로, 또 살붙이들한테 맛뵈기로 나누어주었다.
지난날 내 어머니가 종종 쓰던 말, ‘수지 뜨다’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오늘밤에는 기어이 국어사전을 펼쳐 알아내었다. ‘수지’는 순우리말로, ‘알맹이나 물건의 제일 먼저이거나 좋은 것’을 이른다는 것을. 자신이 손수 지은 농산물 가운데서 맨 먼저 일정량을 떠내는 일을 ‘수지 뗀다’고 하면 옳다. 하여간, 내 어머니는 제대로 모국어를 부려 쓴 셈이다. 돌이켜 보니, 수확물 등의 사용우선순위는 따로 정해져 있었다. 게중 튼실한 알곡은 다음 해 다시 뿌릴 씨앗으로 따로 골라 간직했다. 그 다음에는, 천지신명께 조상님께 추수감사제를 올리기 위해 밥이나 떡의 재료로 선발되었다. 그런 연후에 비로소 이녁들의 식량으로 삼았다. 남한테 선물하거나 내다 파는 것은 맨 나중이었다. 사실 대개의 사람들은 그렇게 행하는 행위의 이름은 잘 모르더라도, 그렇게들 행하는 게 상례(常例)다. 고생하여 지은 곡식을 남들한테부터 퍼줄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하여간, 나는 첫 쌀 가운데서 일정량 수지를 뗐다. 수지는 상징성 또한 만만찮다고 봄이 옳다.
수지와 관련해서, 내가 여태 잊지 않고 지내는 동화(童話) 한 편이 있으니... . 살아생전 내 어머니는 ‘옛날이야기’라면서 우리한테 자주 들려주곤 하였다. 우리들, 조무래기를 다 데려가서 모내기를 하든지, 보리밭을 매든지 할 적에 우리가 지루할세라, 이야기를 재탕삼탕으로 들려준 예가 많다. 어머니의 얘기는 늘 이렇게 시작되었다.
“야들아, 이 에미가 옛날 옛적 이야기 하나 해줄 게.”
지금부터는 수지와 관련해서 내 어머니가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재편집(?)하는 것으로 때우겠다.
옛날에 어느 마을에 욕심 많고 거드름 피우기를 좋아하는 영감이 살았다. 영감은 머슴을 여럿 둘만치 부자였다. 그 영감네 대궐 같은 집 바로 곁에는 찢어지게 가난한 젊은 농부 내외가 살았다. 두 댁은 같은 골목길을 사용하고 지냈다. 젊은 농부는 부지런하고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한마디로, 꾀가 조조(曹操]였다. 그 젊은 농부는 고리대금 등으로 골탕 먹이는 노랭이 영감한테 크게 한 방 먹이기 위해 궁리를 하였다.
그는 어느 날 밤 툇마루에 앉아, 앞산 마루턱을 바라보게 된다. 거기서 뭔가 반짝이는 걸 보게 된다. 그것이 분명 옥(玉)일 거라 생각하며, 다음 날 그곳에서 귀한 보석을 기어이 주워오게 된다. 그리고는 시치미를 뚝 떼고, 들며나며 자기 집 사립문 앞에다 돌무더기를 하나 쌓아가고 있었다. 그 돌무더기 자리는 이웃 영감이 사랑방문을 열면 너무도 눈에 잘 띄는 곳.
한편, 노랭이 영감은 그 괴이한 이웃 젊은이가 별로 쓸모도 없을 듯한 돌무더기를 집채 크기만 할 때까지 쌓아올리는 이유를 몰라 했다. 그리하여 몇 차례 비웃기라도 하듯 말을 하였다.
“여보시게. 그깟 돌무더기 뭣 하러 자꾸자꾸 쌓아올려? 내가 아무리 보아도 달리 쓰일 데도 없는 것 같은데... .”
젊은 농부는 그런 말을 들을 적마다 가볍게 대꾸를 하곤 하였다.
“영감님, 혹시라도 앞으로 쓰일 데가 있을까 싶어서요.”
젊은 농부는 이젠 어느 정도 돌무더기가 되었다 싶어, 돌 쌓기를 멈추고 그 돌무더기 맨 꼭대기에다 미리 주워온 자그마한 보석을 슬쩍 올려 두게 된다. 그 다음은 어떤 일이 발생했을까? 욕심 많은 이웃집 영감이 탐심(貪心)을 품게 되었다. 밤이면 번쩍대는 젊은이네 돌무더기. 하필이면 영감님 눈에 가장 잘 띄는 곳에 보석 무더기가 있었으니... .
영감은 내심, ‘ 저 바보천치 같은 젊은이! 자기가 주워다 모은 돌들이 모두 보석인 줄도 모르는 것 같애.’하며 기회를 노리게 되었다. 그래서 어느 날 뜻밖의 제의를 하게 된다.
“이 보시게. 자네가 보시다시피 저기 내 담장이 허물어져 있다네. 마침 일손도 없고 해서 부탁하네만, 자네 돌무더기를 좀 썼으면 하이.”
그러자 젊은 농부는 짐짓 못이기는 체 하고 흥정 조건을 되묻게 되었다. 한층 군침이 돈 영감은 쌀 서른 석을 돌 값으로 주겠다고 덜렁 제의를 하게 되었다. 이에 젊은 농부는 쾌히 승낙하게 되었다. 원만히 계약은 성사되었다.
물물교환을 하면서, 영감이 쌀가마니에서 한 됫박을 푸면서 말했다.
“이 쌀 한 됫박은 ‘수지를 떼는’ 걸세 ! 한 해 내가 고생스럽게 농사지었던 것이니... .”
이에 질세라, 젊은 농부는 그 높이 쌓아올린 돌무더기 꼭대기에서 올려놨던 보석 한 개를 집어 들어 자기 쌈지에 넣으면서 응수했다.
“어르신, 저도 어르신처럼 이렇게 수지를 하나 떼는 겁니다.”
내 어머니의 수지에 관한 옛날이야기는 이렇게 끝났지만... .
이제금 다시 그 이야기 떠올려보자니, 교훈적인 요소가 많이 도사리고 있는 거 같다. 그 가운데에서도 농부인 나한테 무척 유익한 정보가 하나 있다. ‘농부는 죽어도 씨앗을 베고 죽는다.’는 격언과 맞물려져 있다. 곧, 햇곡이 생기면, 다음 해 농사를 지을 걸 생각해서 아주 충실한 것들을 골라 수지를 떼 놓아야 한다는 거. 그것이 바로 농심(農心)이 아닐까 하고서. 하기야, 볍씨로 떡을 만들어 먹을 얌체는 세상 어디에도 없겠지만... . 아울러, 전장(戰場)에 나가 실탄이 떨어지더라도 마지막 실탄은 하나 남겨두라고 하는 말이 있다. 그 실탄은 자살용 실탄이라고 하였다. 그 또한 수지 떼는 일과 비슷한, 상징적 의미이기도 하다.
끝으로,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서도 이참에 자신의 수지는 무엇이었으면 좋을 것인지 한번쯤 생각해보시길... .
* 이 글에서는 우리가 자주 사용치 않는 어휘들이 더러 눈에 띌 것이다.
- 나락 : 벼
- '첫쌀' :본인이 지어낸 어휘임. 작은따옴표의 쓰임에 관해 음미하시길.
- 풋대 : 채 덜 말린 볏단을 일컬음.
- 웃기 : 지붕
- 비늘 : 볏짚 등으로 지붕을 이되, 고기의 비늘꼴로 만들어 빗물이 잘 타고 내리도록 함.
- 우케 : 방아찧기 전에 멍석 등에 말리는 벼나 보리를 일컬음.
- 에멜무지로 : 되면 좋고 아니 되어도 괜찮게 여기며.
- 가웃 : 도량형에서 절반을 나타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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