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작

고르디우스의 매듭

윤근택 2014. 4. 15. 08:39

고르디우스의 매듭(Gordian knot)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이번엔 부끄러운 고백부터 하고 이야기의 매듭을 풀어가도록 하자. 불과 몇 해 전, 나는 현상금 700만원에 눈이 어두워, 급조한 필명(筆名)으로 무려 10편 가량의 미발표작을 투고한 적 있다. 사실 언젠가 사용처 확인절차도 없고 영수증 징구도 없는 문예창작기금을, 그것도 거금 500만원씩이나 정부로부터 받은 바도 있어, 또다시 행운을 거머쥘지도 모르겠다 여기며 그렇게 하였다. 그 상금으로 미뤄뒀던 수필집을 내고 싶었다. 사실 기성작가든 아마투어든 상관 않겠다고 공고가 되어 있긴 하였다. 그래도 그렇지! 문단경력만 해도 사반 세기에 이른 내가 그렇듯 짜고치는 고스톱판에(?), 식견 내지 안목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심사위원들한테다 글을 내보인 게 옳은 일이었더냐고? 물론 보기 좋게 낙선을 했다. 그 낙선작 가운데는  아버지의 매듭도 요즘 인터넷에 유포되고 있다. 나는 현상문예 낙선작(6)이란 부제(副題)까지 버젓이 붙여서 그렇게 하였다.

 오늘밤, 문득 그 작품이 다시 떠오를 게 뭐람? 나는 그 글 어느 문장에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란 어휘를 쓴 적 있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그리스 신화는 언제고 재밌다. 더 보탤 것도 더 뺄 것도 없이 인터넷 두산백과에서 아래와 같이 그대로 베껴온다.

고르디오스(Gordias). 고르디우스(Gordius)라고도 한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농사일을 하였는데, 독수리 한 마리가 그의 쟁기 자루에 앉아 하루 종일 떠나지 않은 일이 있었다. 기이한 일이라 생각하던 중 티르메소스라는 마을에 가게 되었는데, 이 마을 사람들은 모두 예언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고르디아스가 마을 사람들에게 자신이 겪은 일을 이야기하자, 우물에서 물을 긷던 처녀가 그 독수리를 제우스 신전에 제물로 바치라고 하였다. 고르디아스는 이 처녀와 결혼하여 미다스를 낳았다고도 하고, 땅을 상징하는 여신 키벨레와 결혼하였다고도 한다.

당시 프리지아는 내란이 거듭되어 혼란을 겪고 있었다. 제사장이 신에게 해결책을 묻자, 이륜마차를 타고 오는 첫번째 사람이 나라를 구하고 왕이 될 것이라는 신탁이 내려졌다. 당시 프리지아에는 이륜마차가 드물어 의아하게 생각하던 중 고르디아스가 이륜마차를 타고 나타나자 왕으로 추대되었다. 왕이 된 고르디아스는 프리지아의 수도가 된 고르디온을 세웠다.

왕이 된 기념으로 신전에 마차를 묶어 두었는데, 매듭이 매우 복잡하게 꼬여 있었다. 뒤에 이 매듭을 푸는 사람이 아시아의 지배자가 될 것이라는 신탁이 전해져 많은 사람이 풀려고 시도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 알렉산드로스대왕이 원정길에 이곳에 들러 매듭을 풀려다가 실패하자 칼로 잘라 버렸다. 신탁대로 알렉산드로스대왕은 아시아의 지배자가 되었으나, 칼에 잘린 매듭이 여러 조각으로 나뉜 것처럼 그가 정복한 땅도 4개 지역으로 나뉘었다. 여기에서 ‘고르디아스의 매듭’은 아무리 애를 써도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의미하거나 알렉산드로스대왕이 칼로 매듭을 잘라 버린 것처럼 대담한 행동으로 복잡한 문제를 해결한다는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한편 프리지아에서는 대대로 왕을 고르디아스 또는 미다스로 불렀기 때문에 특정한 개인을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이상은 두산백과에서 그대로 옮겨옴.)

 

독자 여러분께서도 이제 고르디우스의 매듭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을 것이며,알렉산더대왕이 어떻게 그러한 난제를 풀었는지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다들 아시다시피, 알렉산더대왕은 당시 나이가 고작 30대 초반에 불과하였다. 용기와 지혜가 놀랍지 아니한가. 그의 대왕다운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 신화이기도 하다. 사실 내가 알고 지내는 매듭법만 해도 꽤 많다. 그러한 내용은 위에서 언뜻 소개한 아버지의 매듭이란 수필에 다 적혀 있으니, 참고해주시면 되겠다. , 인터넷에서 찾아 읽으시면 제법 흥미로울 거란 뜻이다. 매듭짓기는, 요 다음에 어떻게 풀까를 염두에 둔 다음 행하는 게 상례(常例). 풀기에 가장 용이한,대표적인 매듭법은 아마도 풀매듭일 것이다. 어휘 자체가 지닌 -‘, 요다음에 풀겠다는 의지가 담긴 말이다. 사실 위 신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고르디우스의 매듭마저도 끝내는 풀 수 있는 매듭이다. 다만, 오래 걸리고 수고로울 따름이다. 풀매듭 가운데도 남정네들을 가장 설레게 하는 매듭은, 아마도 첫날밤 새색시의 옷고름일 테지. 정복자 알렉산더대왕은 그러한 여성의 옷고름조차도 성급하게시리 고르디우스의 매듭마냥 여겨 단칼로 베려고 했을까? 그 행위는 철저히 라르기시모(largissimo)로 연주해야 하는 것이건만… . 나의 기발표작(旣發表作)이며 여러분으로부터 명작(名作)이란 평가도 받은 적 있는 댕기풀이도 결코 풀 수 없는 고르디우스매듭은 아니었다. 새댁의 댕기를 올올 풀어 서서히 내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었으니까.          

기왕지사 매듭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또 다른 매듭에 관해서도 살펴볼까 싶다. 사라진 제국 잉카와 아즈텍의 사람들은 매듭문자[結繩文字]를 썼다고 전해온다. 그들은 새끼에 요상한 매듭을 지음으로써 서로 의사를 주고받았다는 게 아닌가. 그러나 그 매듭문자를 만들고 해독하는 이들은 일부 상위 계층에 불과했다고 한다. 게다가 에스파냐 정복자들이 문자해독 능력을 지닌 이들부터 죽임으로 말미암아 그 두 제국의 역사는 문자로 남아 있는 게 전혀 없다니 아쉽기 그지 없다. 그것이 또 다른 분서갱유(焚書坑儒)에 해당한다. 그에 비해 우리의 위대한 세종대왕께서는 한글까지 창제하시어 나 같은 작가들이 후세까지 문자를 남기게도 하셨으니 높이 떠받을만하다.

 또 빠뜨릴 수 없는 매듭이 있다. 바로 결초보은(結草報恩)의 고사다. 사실 중국고사도 그리스 신화 못지않게 흥미롭다. 거의 사실에 근거한 거라서 더욱 실감나기도 한다. 때는 춘추시대. 진나라 위무는 애첩을 두고 있었다. 그는 늙어 병이 들자, 아들 를 불러 유언을 남겼다.  자신이 죽거든 작은 어머니인 애첩을 다른 곳으로 개가(改嫁)시키라고. 그러나 정신이 더욱 혼미해지자 유언을 번복한다. 그녀를 순장(殉葬)해달라고. ‘는 아버지가 죽자, 작은 어머니를 다른 데로 시집 보낸다. 정신이 그래도 덜 혼미할 때에 아버지가 한 유언이 옳을 거라 여겨서 그리 하였다. 얼마 아니 있어 나라에 전쟁이 일어난다. ‘는 전장에 나간다. 적군의 우두머리가 말을 타고 달려가다가 어느 곳에서 넘어지게 된다. 그 곳에는 수크렁이란 풀의 매듭이 있었다. ‘는 적장을 사로잡았다. 그날 밤 는 꿈을 꾸었다. 노인이 나타나 말했다.

고마우이, 젊은이. 나는 젊은이가 개가시켜준 그 여인의 애비라오. 너무너무 고마워서 내가 그렇게 풀매듭을 해두었던 게오.”

 사실 매듭짓기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중요한 고비마다 적절히 행해야 하는 행위다. 고르디우스매듭만이 매듭이 아니라는 거. 우리네 조상들은 매듭을 풀되, 단칼에 베는 형태가 아니었다. 긴 밤 올올 풀어가는 지혜를 보여주었다. 이제금 수필작가로 돌아와 곰곰 생각해보니, 글을 쓰되 매듭을 제대로 지어야 함을 새삼 알겠다. 그 매듭이란 것은, ‘단락의 다른 이름일 거라고도 생각하게 된다. , ‘결말의 다른 이름일 거라고도 여겨진다. 결말을 짓되, 너무 주제를 드러내지 말고 독자들이 자기의 상상을 한껏 보탤 수 있는, 즉 여운을 남기는 게 좋겠다는 … .

작가의 말)

  본인이 이미 적어 인터넷상에 발표한 아버지의 매듭과 종이매체에 발표한 댕기풀이를 곁들여 읽으시면 좋을 것 같다. ‘네이버에서 윤근택의 아버지의 매듭또는 아버지의 매듭을 입력한 후 엔터키를 치면 나올 것이다. 그리고 네이버다음이든 윤근택의 댕기풀이  또는 댕기풀이로 치면 관련 작품이 나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