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수련(76)
문장수련(76)
윤요셉(수필가/문장치료사)
이번 호에는 어느 재미 수필가가 부쳐온 글을 텍스트로 삼는다.
우선, 그분 글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도록 하자.
1. 원문)
아들이 보낸 답장
이00
오래된 서류를 정리하다가 소중히 간직한 편지 한 통이 눈에 띄었다. 내가 보낸 편지에 아들이 보낸 답신이다. 개인 컴퓨터도 전자 메일도 없던 때라 또박또박 타자기로 찍은 짧은 글이다.
아들은 대학을 졸업하여 샌디에이고에서 혼자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고, 딸은 친구와 룸메이트 하며 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학기 초에 등록금을 준비해 달라는 딸의 연락을 받았다. 나의 경제적 여건으로 충분히 등록금과 생활비를 보내 줄 수 있었다. 하지만 형제간의 우애를 깊게 하고, 자신만을 생각하지 않고 가족 전체를 배려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은 장남으로 엄마의 각별한 보호 아래 자라서,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고 여동생에게 별로 관심이 없는 것으로 나는 여겨 왔다. 그래서 아들에게, “아빠 형편이 여의치 않으니, 이번에는, 동생 등록금을 네가 한 번 도와주면 어떻겠니?” 하고 부탁했고, 아들은 그러겠다고 스스럼없이 답했다.
얼마가 지난 후 딸이 하소연했다. 오빠가 여유가 없어서 도와줄 수 없다고 연락이 왔단다. 타고 다니던 은색 닛산 스포츠카를 빨간색으로 다시 페인트 하느라고 여유가 없다는 것이 딸의 설명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나도 모르게 화가 눈 사태처럼 밀려왔다. 속에서 불이 치밀어 오르는 것 같았다. 전화로는 무슨 일을 저지를 것만 같아 화도 삭일 겸 아들에게 편지를 썼다. 가능한 한 화난 내색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며, 가족의 우애와 사랑, 서로 도와야 하는 현실, 앞으로의 삶의 길에 대하여 한자 한자 타자기로 찍었다. ‘똑딱. 똑딱.’ 치밀어 오르는 화를 설득과 참여와 사랑으로 바꾸어 나갔다. 성내거나 화를 불러오지 않도록 조심조심 문장을 다듬어갔다. 저희가 사용하는 영어에 익숙지 않은 나의 짧은 영어 실력이라, 얼마만큼이나 가슴으로 전달되는 문장이었는지는 의문이다. 그리고 이 답장을 받은 것이다.
의례적인, ‘사랑하는 아빠〔Dearest dad〕’로 시작하는 글이지만, 나에게는 아들로부터 받는 첫 편지인지라, ‘진정으로 사랑하는 아빠’라는 영어 원문의 글 뜻 그대로 느껴졌다. 내가 한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삶의 가치로 여긴다고 마음 문을 열었다. ‘동생을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가족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는 구절은 나의 가슴을 벅차게 만들었다. 자기의 생활이 빠듯한 가계부에 의해 지출되고 있으므로, 한 번에 목돈은 어렵지만 매달 얼마가 필요한지 미리 알려만 주면, 자신의 예산에 반영하여 조금은 도와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가끔은 자기가 책임을 회피하고, 엄마나 아빠나 동생을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는 몰라도 자기 속마음은 그렇지 않으며, 다만 표현을 못 하고 있을 뿐이란다. 밸런타인데이에 엄마에게 꽃을 보내지 못하여, 스파 선물권을 보냈다면서, 가족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 달라며 글을 맺었다.
뿌듯하지만 허전한 가슴으로 편지를 덮었다. 왜 이리 허전할까? 머릿속이 온통 하얗게 되는 것 같다. 투덜거림은 없지만 ‘미안하다’는 말이 없다.
“멀쩡한 차. 색깔 바꿀 돈은 있어도 동생 등록금 한 번 보태 줄 마음은 없냐!” “그걸 변명이라고 하냐!”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는 해야 하지 않느냐!”라고 호통을 치고 싶었다.
문득, 나의 대학생활 시절이 떠올랐다. 가정교사를 하며 집안의 도움 없이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던 때다.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에 아버지께서, 내가 대학 1학년일 때, 39살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어머니께서 혼자서 어린 동생 넷을 ‘속초’에서 돌보아야 했다. 입학 장학생으로, 등록금 면제 혜택으로 시작할 수 있었던 대학 생활이었지만, 처음부터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등록금은 장학금으로, 먹고 자는 것은 입주 가정교사로 해결했으나, 적은 용돈으로 그 외의 모든 삶을 살아야 했다. 학기마다 장학생이 안 되면 학업을 계속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당시는, 나 혼자 살아남기도 버거운 생활이었다. 학업을 중지하고 동생들 뒷바라지를 먼저 해야 할지 갈림길에 섰다. 나를 희생하여 새로운 씨앗을 키우느냐, 아니면 내가 먼저 커서 버팀목이 되어야 하느냐? 칼날 위에 서서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야 했다. 주위에는 동생이나 가족의 삶을 위하여, 서독 광부로 월남 기술자로 죽음을 무릅쓰고 떠나는 현실인데, 나만을 위해 계속 공부를 해야 하는지 마음잡기 어려웠다. 부모 없이 동생을 돌보느라 학업을 중단했던 고향 선배가 복학하지 못하고 있는 초라한 현실을 보며, 지금 중단하면 영영 학업을 계속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어떻게 하든 졸업하여 약사가 되면, 집안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나를 떠밀었다. 공부에 대한 욕심이 몸의 희생을 이겼다. 더 큰 것을 위하여 작은 것을 희생해야 한다는 허상의 개념이 내 욕심에 손을 들어 주었다. 동생을 돌보는 어머니가 계시다는 이유 하나로, 집안을 나 몰라라 하고 홀로서기로 결심했다. 졸업할 때까지 동생들을 한 푼도 도와주지 못했다. 그 후, 자신의 삶을 우선으로 했던 나의 이기심이 계속 나를 괴롭혀 왔다. 그때의 죄책감 때문에, 지금 나 자신에게 이렇게 화를 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부끄러운 생각이 가슴을 쳤다.
그래서 이었는지, 부모의 고생과 뒷바라지를 가슴에 세기고,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거나, 부모가 원하는 길을 가야 한다고 아이들을 다그치지 않았다. ‘자신의 삶은 자신이 알아서 살아가야 하고, 자신이 갈 길은 자신이 선택하고 책임져야 한다.’고 가르쳐온 나의 탓일까? 나 자신을 뒤 돌아보게 한다.
‘그래! 나는 너를 믿는다. 너 또한 너의 방식으로 살아가면서 너 나름대로 겪어 보아라. 진정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기다려주마.’ 하며 중얼거려본다. 적어도 가족을 생각하며 사랑한다는 아들의 마음만이라도 읽어서 가슴이 조금은 따스하다.
조금이나마 남은 사랑인 양, 금방이라도 흩어져서 없어져 버릴 것 같아, 고이 싸서 다시 넣었다. 언젠가는 다시 돌려줄 생각이다. 처자식을 거느리고, 마누라 눈치 보며 살면서도, 초심을 간직하고 있는지 자신에게 늘 물어보며 살라고.
‘이 편지 때문에 아빠는 행복했다.’라고 몇 자 적어서….
2.부분부분 본인이 손댄 자국)
아들이 보낸 답장
이00
①오래된 서류를 정리하다가 소중히 간직한(☞‘소중히 간직한’은 ‘오래된 서류’와 분위기상 맞지 않는 듯하니 빼심이?)편지 한 통이 눈에 띄었다.(※이처럼 자연스런 도입이 맘에 든다.) 내가 ②보낸 편지에 아들이 ③보낸 답신이다.(※동일 문장에 동일어 반복을 피하심이? ☞내가 보낸 편지에 대한 아들의 답신이다. ※사실 이처럼 진술해나가면, 독자들로 하여금 흥미를 돋우지 못한다. ☞‘②보낸 편지에 아들이 ③보낸 답신이다.’를 아예 빼어버리고, 이렇게 풀어감이 나을 것 같다. ☞‘아들녀석이 육필로 ‘Dearest dad’로 시작된 편지다. 다시 읽어 내려가다니, 그때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단락 바꾸고) 당시 나는 화가 치밀 대로 치밀었다. 전화상으로 녀석한테 말하자니, 거친 말이 마구 쏟아질 것 같아 꾸역꾸역 참으며 말 대신 편지글로 적어나가야만 했다. 지금 내가 다시 읽어보는 녀석의 편지를 통해, 당시 녀석한테 어떠한 내용을 담아 편지를 부쳤는지를 쉽게 꿰맞출 수가 있다. 내용은 주로 이러했던 거 같다. ※이 윤쌤은, 이야기 전개 순서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글맛이 사뭇 달라짐을 이야기하고 있다.) 개인 컴퓨터도 전자 메일도 없던 때라 또박또박 타자기로 찍은 짧은 글이다.
아들은 대학을 졸업하여 샌디에이고에서 혼자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고, 딸은 친구와 룸메이트 하며 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학기 초에 등록금을 준비해 달라는 딸의 연락을 받았다. 나의 경제적 여건으로 충분히 등록금과 생활비를 보내 줄 수 있었다. 하지만 형제간의 우애를 깊게 하고, 자신만을 생각하지 않고 가족 전체를 배려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래 단락에 들어 있는 ④ “아빠 형편이 여의치 않으니, 이번에는, 동생 등록금을 네가 한 번 도와주면 어떻겠니?”가 이 단락에 있었으면 좋겠다. 즉,아들의 답신 내용을 간추려 본 단락에 적으라는 뜻임. ※문장 간, 단락 간 결합력에 관한 문제임. 동시에 독자들로 하여금 간결함을 느끼게 만들어, 긴장감을 주어야 한다는 뜻임. 대신, 이런저런 아들의 변명 등은 ‘사실 녀석은 이런저런 핑계로 자기 여동생 학비를 보태주지 못했다.’로 부연의 단락을 따로 지으면 될 듯.)
아들은 장남으로 엄마의 각별한 보호 아래 자라서,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고 여동생에게 별로 관심이 없는 것으로 나는 여겨 왔다. 그래서 아들에게, ④ “아빠 형편이 여의치 않으니, 이번에는, 동생 등록금을 네가 한 번 도와주면 어떻겠니?” 하고 부탁했고, 아들은 그러겠다고 스스럼없이 답했다.
얼마가 지난 후 딸이 하소연했다. 오빠가 여유가 없어서 도와줄 수 없다고 연락이 왔단다.⑤ (☞왔더란다.)타고 다니던 은색 닛산 스포츠카를 빨간색으로 다시 페인트 하느라고 여유가 없다는 것이 딸의 설명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나도 모르게 화가 눈 사태처럼 (☞눈사태처럼)밀려왔다. 속에서 불이 치밀어 오르는 것 같았다. 전화로는 무슨 일을 저지를 것만 같아 화도 삭일 겸 아들에게 편지를 썼다. 가능한 한 화난 내색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며, 가족의 우애와 사랑, 서로 도와야 하는 현실, 앞으로의 삶의 길에 대하여 한자 한자 타자기로 찍었다. ‘똑딱. 똑딱.’ 치밀어 오르는 화를 설득과 참여와 사랑으로 바꾸어 나갔다. 성내거나 화를 불러오지 않도록 조심조심 문장을 다듬어갔다. 저희가 사용하는 영어에 익숙지 않은 나의 짧은 영어 실력이라, 얼마만큼이나 가슴으로 전달되는 문장이었는지는 의문이다. 그리고(☞그랬더니, 녀석이 바로 지금 내가 말하는 이 답장을 받은(☞부쳐 온) 것이다.
의례적인, ‘사랑하는 아빠〔Dearest dad〕’로 시작하는 글이지만, 나에게는 아들로부터 받는 첫 편지인지라, ‘진정으로 사랑하는 아빠’라는 영어 원문의 글 뜻 그대로 느껴졌다. 내가 한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삶의 가치로 여긴다고 마음 문을 열었다. ‘동생을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가족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는 구절은 나의 가슴을 벅차게 만들었다. 자기의 생활이 빠듯한 가계부에 의해 지출되고 있으므로, 한 번에 목돈은 어렵지만 매달 얼마가 필요한지 미리 알려만 주면, 자신의 예산에 반영하여 조금은 도와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가끔은 자기가 책임을 회피하고, 엄마나 아빠나 동생을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는 몰라도 자기 속마음은 그렇지 않으며, 다만 표현을 못 하고 있을 뿐이란다. 밸런타인데이에 엄마에게 꽃을 보내지 못하여, 스파 선물권을 보냈다면서, 가족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 달라며 글을 맺었다.
뿌듯하지만 허전한 가슴으로 편지를 덮었다. 왜 이리 허전할까? 머릿속이 온통 하얗게 되는 것 같다. 투덜거림은 없지만 ‘미안하다’는 말이 없다.
“멀쩡한 차. 색깔 바꿀 돈은 있어도 동생 등록금 한 번 보태 줄 마음은 없냐⑥!(☞?)” “그걸 변명이라고 하냐!(☞?)”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는 해야 하지 않느냐!(?)”라고 호통을 치고 싶었다.
(※무절제한 직접화법에 관한 문제 : ☞“멀쩡한 차 색깔 바꿀 돈은 있어도 하나뿐인 동생 등록금 한번 보태줄 마음은 없냐? 그리고 그걸 변명이라고 하냐?”
덧붙여,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쯤은 해야 하지 않느냐고 호통을 벼락같이 내리치고 싶었다.
⑦ 문득, (※적정한 어휘인지 여부에 관해 : 글쓴이는 아들한테 전화상으로 바로 위 문장의 내용처럼 호통치고 싶었으나, 대신 편지글로 적었노라고 술회했다. 그러니 시점상(時點上)‘문득’은 어울리지 않는다. ☞ 물론 세대차라는 게 있어, 내 젊은 날과 녀석들이 현재는 다른 터. 하더라도, 문득 내 어려웠던 날이 떠올라 더욱 분통이 터졌다. 해서, 자칫 전화상으로 말하자면, 아래와 같은 말을 마구 녀석한테 푸념처럼 주절주절 쏟아낼 것만 같았다. 참말로,) 나의 대학생활 ⑧시절이 떠올랐다.(☞시절은 아주 엉망이었다. 말이 대학생이지 숫제 알거지나 진배없었다.) 가정교사를 하며 집안의 도움 없이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던 때다.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에 아버지께서, 내가 대학 1학년일 때, 39살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어머니께서 혼자서 어린 동생 넷을 ‘속초’에서 돌보아야 했다. 입학 장학생으로, 등록금 면제 혜택으로 시작할 수 있었던 대학 생활이었지만, 처음부터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등록금은 장학금으로, 먹고 자는 것은 입주 가정교사로 해결했으나, 적은 용돈으로 그 외의 모든 삶을 살아야 했다. 학기마다 장학생이 안 되면 학업을 계속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당시는, 나 혼자 살아남기도 버거운 생활이었다. 학업을 중지하고 동생들 뒷바라지를 먼저 해야 할지 갈림길에 섰다. 나를 희생하여 새로운 씨앗을 키우느냐, 아니면 내가 먼저 커서 버팀목이 되어야 하느냐? 칼날 위에 서서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야 했다. 주위에는 동생이나 가족의 삶을 위하여, 서독 광부로 월남 기술자로 죽음을 무릅쓰고 떠나는 현실인데, 나만을 위해 계속 공부를 해야 하는지 마음잡기 어려웠다. 부모 없이 동생을 돌보느라 학업을 중단했던 고향 선배가 복학하지 못하고 있는 초라한 현실을 보며, 지금 중단하면 영영 학업을 계속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어떻게 하든 졸업하여 약사가 되면, 집안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나를 떠밀었다. 공부에 대한 욕심이 몸의 희생을 이겼다. 더 큰 것을 위하여 작은 것을 희생해야 한다는 허상의 개념이 내 욕심에 손을 들어 주었다. 동생을 돌보는 어머니가 계시다는 이유 하나로, 집안을 나 몰라라 하고 홀로서기로 결심했다. 졸업할 때까지 동생들을 한 푼도 도와주지 못했다. 그 후, 자신의 삶을 우선으로 했던 나의 이기심이 계속 나를 괴롭혀 왔다. 그때의 죄책감 때문에, 지금 나 자신에게 이렇게 화를 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부끄러운 생각이 가슴을 쳤다.
그래서 이었는지, 부모의 고생과 뒷바라지를 가슴에 세기고,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거나, 부모가 원하는 길을 가야 한다고 아이들을 다그치지 않았다. ‘자신의 삶은 자신이 알아서 살아가야 하고, 자신이 갈 길은 자신이 선택하고 책임져야 한다.’고 가르쳐온 나의 탓일까? 나 자신을 뒤 돌아보게 한다.
‘그래! 나는 너를 믿는다. 너 또한 너의 방식으로 살아가면서 너 나름대로 겪어 보아라. 진정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기다려주마.’ 하며 중얼거려본다. 적어도 가족을 생각하며 사랑한다는 아들의 마음만이라도 읽어서 가슴이 조금은 따스하다.
조금이나마 남은 사랑인 양, 금방이라도 흩어져서 없어져 버릴 것 같아, 고이 싸서 다시 넣었다. 언젠가는 다시 돌려줄 생각이다. 처자식을 거느리고, 마누라 눈치 보며 살면서도, 초심을 간직하고 있는지 자신에게 늘 물어보며 살라고.
‘이 편지 때문에 아빠는 행복했다.’라고 몇 자 적어서….
윤쌤의 총평)
1. 문장은 흠잡을 게 거의 없다.
2. 단, 어떻게 이야기 풀어 가면, 독자들한테 흥미를 한결 더해줄 수 있을까에 관해서는 앞으로 더 고민해 보시기 바란다. 이런 유형의 글은 얼개를 이렇게 갖추어 나가볼 필요가 있다. 사전에 다음과 같이 도해화(圖解化) 하는 습관을 들이면 좋다.
오래된 서류를 정리하다가 편지 한 통을 발견하게 되었다. - 펼쳐보니 ‘Dearest dad’로 시작된 편지 - 아들의 편지다 - 편지를 다시 읽어내려가자니, 그때 우리 부자한테 일어났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참말로, 우리 부자한테는 그러한 일이 있었다. - 그때 내가 내 딸아이이자 녀석의 여동생인 녀석의 대학 학비 사건 - 내 금전적 여건과 상관없이 동기간의 도타운 정을 고려했던 나의 태도 - 아들녀석의 반성 - 내가 녀석한테 다시 띄운 격려의 편지- 지난 날 어려웠던 이 애비의 경험을 녀석한테 넌지시 알려줌으로써 진정하고 건강한 삶의 자세가 어떠한 것인지 독자들한테 메시지 던져줌. 결코 금전만이 만능이 아니라는 교훈을 담고 있음.
특히, 위 주기(朱記)된 부분 관심있게 읽어주세요. 소중하나, 깜박 잊고 있었던 지난 날 부자간의 서신왕래를 환기하는 방식이면 좋겠다는 뜻임.
3. 건필을 빌어마지 않는다.
(다음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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