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내지 변신(1)
변화 내지 변신(1)
-나는 꺽지 32.5센티미터짜리를 낚았다-
윤요셉(수필가/문장치료사/수필평론가)
둘레에 맞선을 그야말로 골백번 보고도, 고르고 고르느라 아직도 배필을 찾지 못하고, ‘넘고 처진’이들도 있다. 나는 그들의 성향 내지 태도를 내 나이 육십이 되도록 여태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최근 들어, 나는 어느 직장에서 경비원으로, 1년씩 계약을 하고 고작 한 차례 더 재계약 후 잘린 일이 있다. 흔히 ‘갑(甲)’이라고 하는 이가 사흘돌이로 여차하면 자르겠다는 그 드러운(?)‘갑질’을 겪기도 하였다. 이에 오기(傲氣)가 상해, 실직 후 12일 만에 어느 아파트 경비로 재취업할 수 있었다. 오히려 급여가 월 130만원에서 150만원으로 올랐으니, 100만원대 급여에서 20만원인상이면 대단한 것이다. 결코,‘안주(安住)만이, 그것 하나만이 답이 아님’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살아생전 내 어머니는 우리한테 곧잘 말하곤 하였다.
“이 녀석들아, 애달프면 못 올라가는 나무가 없단다!”
사실 나는 그 12일간 온갖 인터넷 구직·구인 사이트를 검색하였고, 이력서를 제출했고, 자기소개서를 등록하는 등 분주했다. 컴퓨터에 능한, 숙녀인 작은딸아이가 결국은 이 직장을 구해줬는데... . 부랴부랴 재취업하고 나니, 더 조건 좋은 일자리가 널려 있더라는 거. 해서, 기회를 보아가며 더 조건 좋은 경비 자리로 미련 없이 옮겨 갈 것이다.
나는 다시 안정을 찾아 이 글을, 아파트 경비실에서, 자정부터 새벽 다섯 시까지 근무하면서 적게 될 텐데, 어우러지는 몇 가지 추억이 있다.
제 1화) 나는 꺽지 32.5센티미터짜리를 낚았다
당시 나는 경북에서도 오지(奧地)인 영양의 전화국에 영업과장으로 승진발령되었다. 그곳은 내 고향 청송과 인접한 곳으로, ‘청양초’ 고추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독자들께 덤으로 알려드리겠다. ‘땡초’라고도 불리는 ‘청양초’는 ‘청송’의 ‘청-’과 ‘영양’의 ‘-양’이 합쳐진 말이다.
그때 나와 같은 날 ‘시설과장’으로 발령된 ‘의성군 춘양면’ 출신 ‘박 00’ 과장. 그는 연령적으로 나보다 열 살가량 아래였지만, 둘 다 학부 출신인데다가 전입동기인데다가 시골출신인데다가... 사원아파트 이웃인데다가 주말임에도 가족들한테 아니 가고 엉뚱한 짓 하는 것조차도 같았다. 둘은 곧잘 산에 가서 더덕을 캐거나 개울에 가서 꺽지를 낚거나 하였다.
내 이야기는 꺽지낚시에 집중된다. 박 과장은 개울도 끼지 않은 시골에서 자랐다는데, 어디에서 언제 배웠는지 ‘루어(lure)낚시’를 제법 잘 하는 것 같았다. ‘lure’란 ‘유혹하다’, ‘꾀다’, ‘미끼’ 등을 두루 뜻하지만, 물고기가 삼킬 수 없는‘모조먹이를 바늘에 꿴 낚시’를 일컫는다. 꺽지나 쏘가리는 포식 어종으로, 자기가 미리 차지한 바위 밑을, “내 영역이니 함부로 기웃대면 다 잡아먹을 거야!”하는 습성을 지녔다. 낚시꾼들은 그 습성을 역으로 이용해서 루어낚시를 하게 된다.
그런데 박과장은 매번 ‘일월면’에 자리한 ‘곡강(曲江)’에 간다고 하였다. 나도 채비를 갖추고 그를 따랐다. 나는 그가 일러주는 대로 릴(reel) 감기, ‘낚시 날림’ 등을 익혀 나갔다. 점차 경험해본즉, 꺽지는 주거침입자인 루어낚시를 공격하기 위해, 내가 서 있는 곳까지 끝까지 달려와서 바로 몇 발자국 앞에서 물곤 하였다. 그리고 내가 가급적이면 큰 바위를 목표지점으로 삼되, 물 위에 드러난 그 바위에다 납덩이가 달린 그 모조낚시를 ‘타닥!’ 소리가 나도록 때려, 사르르 당겨 물속에 잠기게 하면 꺽지의 공격(?) 왕성해지곤 하였다.
마침 그 해에는 가뭄이 대단히 심했다. 여울물은 거의 말랐으며 소(沼)에만 물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어느 정도 기술을 터득한 나는, 박과장이야 어찌 하든 말든, 소에 옮겨 갔다. 아무래도 굵은 고기들은 물이 그나마도 고여 있는 그곳에 모여들었을 거라고 여기며. 나는 위에서 소개했듯, 커다란 바위에다 마치 돌멩이를 던지듯 루어낚시를 던졌다. ‘타닥!’ 소리가 난다 싶을 적에 리드미컬하게 릴을 감고 있었다. 그러자 낚시가 어디에 걸린 듯 좀처럼 당겨 나오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또 낚시줄 터졌는가 보다!”하며 당기자, 검은 물체가 낚시에 딸려 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물 잔뜩 담긴 비닐봉지 같기도 하였다. 묵직한 그 물체를 차츰차츰 당겨 내자, 이번엔 괴물스런 10센티미터가량의 동그라미가 수면에 나타났다. 한마디로, 기절초풍할 일이었다. 떡 벌린 꺽지의 입 크기가 그 정도였다.
물밖으로 끄집어내니, 그것이 꺽지였다. 참말로, 나 혼자보기에는 너무도 아쉬운 장면. 크게 고함쳤다.
“박과장님, 얼른 이리 와 보세요. 대형!대형!월척!”
그 꺽지는 재어본즉 32.5센티미터였다. 인터넷 등을 통해 살펴본 바 꺽지가 월척으로 자라는 예는 거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날 이후 박과장은 자주자주 내가 하던 말을 곧이곧대로 듣곤 하였다.
“ 변화를 두려워하는 이는 월척 꺽지를 결코 낚지 못해요.”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루어낚시의 손맛을 죄다 잃어버렸고, 심드렁해져 더 이상은 꺽지를 잡으러 가지 않았다. 대신, 박과장은 그날 이후 내가 개척한 그 어장(漁場)에 수시로 혼자 가서, 루어낚시를 했다. 그는 루어낚시로 꺽지 말고도 메기도 낚아오곤 하였다. 그 메기들은 팔뚝만한 것들도 수두룩했다. 해질 무렵 놀랍게도 메기가 그렇게 물더라고 나한테 자랑하기까지 하였다.
(다음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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