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구설수
어떤 구설수(口舌數)
윤근택(수필가/문장치료사/수필평론가)
아파트 경비를 서게 된 지 달포. 나는 끝내 사고를 치고 말았다. 아무래도 뒷맛이 영 개운치가 않더니... . 내 담당구역을 한 바퀴 돌면서 파지(破紙) 수거며 담배꽁초 줍기며 음식물쓰레기통 주변 쓸기며 온갖 허드렛일을 하고 통합관리소에 돌아와 장갑과 마스크와 경비모자를 벗자, 여성 관리소장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불렀다.
“윤 주사님, 여기 소파 의자에 앉아보세요.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내가 연로한 선배 경비들한테 슬쩍 흘린 말이 귀에 흘러들어갔는가 여겼다. 사실 나는 그분들께, 그분들 권유에 따라 급여와 근로조건이 이곳보다 월등히 나은 신축 아파트 현장 경비원으로 예약이 되어 있노라고 단 한 차례 귀띔을 한 적 있다. 사실 그것조차도 말을 잘 못 참는 내 오랜 악습(惡習)에서 비롯되었지만... .
소장은 말문을 열었다. 주량(酒量)이 얼마나 되느냐부터 시작된 그의 질문. 대체, 무얼 말하려는지 처음엔 어리둥절했으나, 드디어 그가 나를 불러 앉힌 이유가 밝혀졌다. 참말로, 뒷맛이 영 개운치 않던 그 일 때문이었다. 사건 내지 사고는 언제고 아주 엉뚱하고 사소한 데서 출발하는 법이다. 일전, 정월대보름 이튿날 입주자대표이자 나보다 다섯 살 더 많은 분이자 애주가인 분이 껀수(?)를 빠뜨리지 않고 잡았다. 그분은 귀밝이술을 마셔야 한다며, 근무자인 우리들 경비를 포함해서 소장, 경리, 기계실 직원, 여성 미화요원 모두를 불러모아 파티를 열어주었다. 처음엔 나도 소주만은 사양했으나, 종이커피잔 가득 따라주는 술을 흔쾌히 받아 마셨다. 그분은 한 잔 더 하라며 다시 종이컵 가득 따라주었다. 초저녁 근무를 맡은 나는 이내 양치를 하였다. 택배를 찾으러 올 입주자들을 염두에 두었기에 그리 하였다. 밤 아홉 시 무렵 택배를 찾으러 오는 입주민들 수효가 잦아들었다. 그 무렵 어느 사십대 부인이 관리사무소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아저씨, 택배 찾으러 온 게 아니고요, 혹시 큰 종이 박스 몇 개 없는가 하고서요. 우리 아이한테 택배를 여러 개 부쳐주어야 하는데... .”
내 스텝(?)은 그 순간부터 꼬이고 말았다.
“ 어머, 이 아파트엔 이쁜 분들만 사시는가 봐요. 사모님, 하지만 빈 종이박스는 없습니다. 대신, 파지창고에는 저희들이 실어다 모아둔 종이박스가 숱하게 있으니, 제가 몇 개 갖다 드릴까요? ”
그러자 그는 굳이 그럴 것까지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혼잣말 하듯 하였다.
‘요 앞 ‘신0 슈퍼’에 가 보아야겠다.’
내가 다시 생각해보아도, 내 다음 행동과 내 다음 말이 몹시 꼬였다.
“저도 마침 그 슈퍼에 갈 참이었어요. 곧 후번 근무자와 교대를 하고 잘 텐데, 하루의 피로를 풀기 위해서라도 막걸리 한 병을 사 마셔야 하거든요.”
이 경비실 겸 관리사무실과 불과 10미터 안팎의 거리에 있는 그 슈퍼마켓. 관리사무실 전등이며 가로등이며 대낮처럼 밝고, 관리사무실은 팔각의 유리창이 있어 무단출입자 등을 금세 볼 수 있는 사정이다. 사실 나는 몰래몰래 밤마다 막걸리 한 병씩 사와서 남 몰래 계란을 3~4개씩 삶아 그걸 안주삼아 마시고 잠을 청해왔다. 해서, 지남철(指南鐵)처럼 그렇게 딸려갔을 뿐이다. 그 부인은 꽤 불안해했다. 잰걸음이었다. 경비실 비워도 되느냐고 책망하기도 하였다.
그가 슈퍼마켓 안주인한테 쓸 만한 빈 종이박스를 달라고 하자, 그 안주인은 마침 그날따라 빈 박스가 없다고 했다. 그러한 둘의 수작(酬酌)을 끝까지 못 들은 척 할 걸 그랬다.
“입주자님, 정히 택배박스 필요하시면, 제가 얼른 파지창고에 가서 몇 개 갖다 드릴 게요.”
그랬더니 그는 개의치 말라고 했다.
한편, 나는 슈퍼마켓 안주인으로부터 내 볼일(?)인 막걸리 한 병을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건네받고 얼른 경비실로 돌아왔다. 물론 근무시간에 마실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교대근무자한테 교대 후 잠을 청하기 위해 마시긴 했지만... .
아무래도 그 일이 내내 개운치가 않았다. 그 입주자는 분명 신입경비아저씨가 일과 중에 술을 사다 퍼 마신다고 인식할 테고, 경비실도 무단으로 비운다고도 생각할 테고... .
그랬던 것이 ... 아니나 다를까 그 일이 있은 지 며칠이 지난 오늘 낮 나는 젊은 여성 소장으로부터 호되게 꾸지람을 들어야만 했다.
성희롱(‘이쁜 분들만’이란 말을 썼다고), 무작정 따라감(내 볼일 보러 갔으나... .), 자리 비움, 과잉친절, 일과 중 음주(오해) 등등.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참말로, 내 기준으로 세상살이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 풍부한 유머감각만으로는 대인관계 유지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그 젊은 부인을 탓할 그 어떤 이유도 없다. 아무리 악의 없고 비단결 같은 말일지라도, 듣는 이에 따라서는 독설(毒舌)일 수도 있다. 그 순간 청자(廳者)의 컨디션 등에 따라서도 천차만별의 반응을 보인다는 것을. 사실 60여년 살아온 내가, 특히 사반세기 동안 고객접점부서에서 근무했던 내가 그걸 모를 턱없건만, 왜 그러한 구설수를 반복해서 겪게 되는지 참으로 알 수가 없다. 내가 생각해 보아도 내가 한심스럽다. 정말로, 남을 탓할 일이 아니다. 모두 다 나의 잘못이다. 그때그때마다 말과 행동의 수위(水位)를 조절하지 못한 나의 잘못이다. 나는, 말이 또 말을 만드는 법이니, 그 부인한테 직접 사과드리거나 해명하기보다는 소장이 맡아서 해주길 간청했다. 소장은 이미 단단히 교육시키겠다느니, 정월대보름 귀밝이술 탓이라느니 당해 입주자 부인을 무마했다고 한다. 이를 계기삼아 이곳 아파트 경비생활을 더 잘 해볼 생각은 없다. 가급적이면 속히 이곳에서 달아날 것이다. 다른 곳인들 별반 다르랴! 내가, 집에서 새는 바가지인 내가 들에 나간들 새지 않겠냐만, 되도록이면 사람들 덜 마주치는 곳이면 좋겠다. 대학강단 등에서 수필창작 강의를 하라면, 그 누구 못지않을 만치 수강생들이 모여들 테지만, 그 또한 헛꿈인 것이고.
본디 우리 열 남매 형제자매들은 유머감각이 뛰어나고, 말 재주도 뛰어나다는 게 둘레의 평들이다. 뿐더러, 친절하고 예의바른 이들로도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러한 점이 싫을 적이 많다. 실로, 유머는 저 드보르작의 註1)<<유머레스크(Humoresque; ‘유머스런’, ‘익살스런’의 뜻을 지닌 곡임.)>>하나만으로도 족한 듯하다.
註1)<<유머레스크(Humoresque>>
체코 출신 드보르작은 미국 뉴욕내셔널 음악원장으로 초빙되어 그곳에서 활동하다가 귀국길에 오른다. 그는 본디 기차여행을 무척 즐겨왔는데, 그날 귀국길에서 레일 위를 구르는 기차바퀴를 보고 영감을 얻어 그 유명하고 경쾌한 <<유머레스크>>란 곡을 적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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