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내지 변신(3)
변화 내지 변신(3)
윤근택(수필가)
‘간이 커야 널 장사를 한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널’은 시신을 넣는 ‘관(棺)’, ‘장사’는 ‘장의사(葬儀師)’를 각각 이른다. 그 말이 현재 나한테 딱 맞아떨어진다. 지금 나야말로 간이 커도 대단히 큰 사람임에 틀림없다.
오늘도 아침 일곱 시 반 무렵, 내가 사는 경산의 어느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승용차를 몰고, 경산의 인접 도시인 대구직할시 반야월, 용계, 율하... 대구공항, 불로동, 지묘동 등을 거쳐 40여분 팔공산 초입의 어느 아파트 ‘전기실’로 달려오고 있었다. 이 얼마나 무모한 짓이냐? 이 얼마나 돈키호테 식이냐? ‘전기’의 ‘전’ 자(字)도 제대로 모르는 이가 이 아파트의 ‘전기주임’으로 재취업했다니 말이 되느냐고?
여기서 잠시, 내 신실한 애독자님들의 이해를 돕고자 그 동안 있었던 사정을 겅중겅중 보고해야겠다. 나는 사반세기 동안 당시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 나가던 통신회사, 아니 유일한 통신회사에서 사무직 과장으로 지내다가 명예퇴직 했다. 그러기 전에는 통신과 거의 관련없는 농과대학 임학과를 졸업했다. 그래도 거기까지는 억지로 꿰맞추자면, 당시 전주(電柱)를 콘크리트가 아닌 이깔나무(낙엽송)로 만들곤 했으니... . 그랬던 내가 명예퇴직 이후 돈이 궁해지자 막노동, 농사, 아파트 경비 등을 몇 해 동안 번갈아 하며 영혼과 몸을 혹사시켰다. 그런데 그런데...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 회장 등의 ‘슈퍼 갑질’에 못 견뎌 팔자를 확 뜯어고쳐(?) 버렸다. 아파트 경비가 아닌 아파트 전기실 전기주임으로 변신한 것이다. 물론, 단 한 차례 신분세탁을 하였다. ‘전화국 기술과장 역임. 전력실 및 선로 현장 근무했음’이라고. 구체적인 내용은 이 연작수필, ‘변화 내지 변신(2)’에 이미 소개한 바 있으니, 인터넷 검색창에다 ‘변화 내지 변신(2)’으로 쳐보시기 바란다.
2017년 1월 1일부터 적용되는 ‘최저임금제’는 지난 해 시급 ‘6,030원’에서 무려(?) 440원씩이나 오른 ‘6,470원’. 그러함에도 째째군사(?)인 직전의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에서는 월 180개(180여 만 원) 정도에서 급여를 더 올려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경력을, 찰진 고무줄인양 꽤나 늘여 이력서를 적었다. 그리고는 구랍(舊臘)에 여남은 군데 아파트 당국에다 이력서를 제출했다. 이메일 접수, 방문 접수, 우편 접수 등. 오라는 데는 없었다. 그러던 차에 어느 용역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자기네 본사로 일단 면접을 보러 오라는 게 아닌가.
면접 때에 1차 면접관은 마구 숨 가쁘게(?) 물어 왔다.
“출퇴근 거리도 멀 텐데 괜찮겠어요? 젊은 전기과장 밑에서 일할 수 있겠습니까? 교통비도 만만찮을 텐데요? ”
이에, 씩씩하게 맞춤형으로(?) 응답했다.
그런데 최종면접관한테는 단단히 걸리고 말았다. 참말로 그런 낭패가 없었다. 한마디로, 들통이 나고 말았다. ‘상무’라는 직책을 가진 분이었다.
“윤 선생님, 그때 K회사에 근무할 적에 함께 근무했던 이들 이름 생각나는 대로 말해보세요. ... 어디어디 근무하셨어요? ”
나는 마구마구 둘러대야만 했다. 그는 내가 대는 퇴직사우의 이름을 웬일로 좔좔 꿰고 있었다. 그들 개개인의 사정도 깨알같이 알고 있었다. 그는 지난 날 부서를 달리했을 뿐 퇴직사우였던 것이다. 그는 전기에 관한 한 내 지난 직장의 카리스마였다는 것을.
그는 따로 별실로 불러 전기지식을 꼬치꼬치 물어댔다.
“상무님, 사실은요, 늦은 나이이지만 ‘전기기능사’라도 딸 요량으로 최근엔 기출문제도 풀어보곤 했어요. ‘플레밍의 왼손법칙’은 ‘전동기’, 그의 오른손법칙은 ‘발전기’... 인류 최초로 '유도전동기‘를 개발한 이는 ’패러데이‘... ’Y결선’은 380볼트도 얻고 220볼트로 얻을 수 있음... ”
그랬더니, 그는 나한테 엄청 창피를 주었다.
“윤 선생님, 전기에 관해 아는 게 거의 없군요. ‘플레밍의 오른손법칙’ 등은 초등학생도 다 알아요. 아파트 전기실은 한밤에 혼자 근무해야 하는데, 엘리베이터가 정전으로 갑자기 멈춰서면 어떡할 거에요?”
“상무님, 그러면 얼른 ‘발동발전기’를 터뜨려 비상발전을 해야지요. 인명(人命)과 관련되는 사항은 응급조치를... . 그리고요 제 장점은요, ‘인적 네트워크’를 엄청 중시한다는 거 아닙니까? 위급한 사항이 발생하면, 전문가들한테 즉시 전화를 해서 한밤중이라도 도움을 청하면 되지요. 즉, 수첩에 빼곡히 전화번호를 적어둔다는 말입니다.”
최종 면접관이었던 그분은, 실무자가 따로 연락드릴 테니 나더러 가보라고 했다. 한마디로, 쪽팔려서 나는 승용차를 몰고 그 불운한(?) 장소를 떠나와야만 했다. 그러기를 10여 분. 그런데 웬일? 휴대전화가 ‘빼르르!’ 울었다. 표시창에 낯선 전화번호였다. 받아본즉, 친절하고 다정한 목소리였다.
“저, 최OO 차장인데요, 윤 선생님은 그 사이 어디까지 가셨어요? 저희 사무실로 돌아와 보세요.”
최OO 차장이란 이는 나를 격려해주었다. 사실 아파트 전기주임의 일이라는 게 그 동안 겪어보아서 알겠지만, 그리 어려운 게 아니지 않더냐고 하면서. 아울러, 상무님이 본디 그러한 분이라고 했다. 이 무슨 행운? 나중에 안 일이지만, 상무는 퇴직사우들을 엄청 챙기고 대구,경북 지역 아파트 요소요소마다에 투입하여 그들로 하여금 제2의 인생을 살게 도와준다는 것을. 하여간 나는 인복(人福)이 지지리도 많은 사람이다.
덕분에, 이제 이곳 아파트 전기실에서, 입주민들의 안녕을 새롭게 지킨 지가 12일째(격일제 즉 ‘퐁당퐁당’으로 6일째). 급여는 지난 번 아파트에서보다 월 50여개(50여 만 원) 늘었다. 나만의 독특한 셈법(‘퐁당퐁당’ 하여 15일 근무 + 15일 농사)으로는 지난 번 통신회사 근무 때보다 월 급여가 더 많아졌다. 아니, 실속이 더 나아졌다.
자, 신변잡기 같은 내 이야기 또 정리할 때가 되었다. 내 신실한 애독자님들께서도 제발 나처럼 무모하리만치 도발하시길. 때로는 돈키호테처럼. 여하튼, 사고(思考)의 프레임에 갇힌 이는 결코 발전이 없다는 것을.
나는 출퇴근 때마다 높고 높은 아파트를 보게 된다. 그때마다 희망에 부푼다. 그리고 독백하곤 한다.
‘이 도시에 아파트가 많기도 많아. 새로 짓는 아파트도 있어. 아파트마다 전기실과 경비실이 있거든. 나이에 또 밀리면, 그때 가서는 경비를 서면 돼. 줄잡아 70까지는 벌어먹을 수 있을 거 같애. 아니, 80까지도 일자리는 찾을 수 있을 것 같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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