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작

'시스템(system)'에 관해

윤근택 2017. 2. 14. 07:55

                          ‘시스템(system)’에 관해

 

 

                                                   

                                                                                                                  윤근택(수필가)

 

 

   어제는 단골이발소에 갔다. 늘 그랬듯이,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 이발사의 아내이자 면도사인 여인이 나의 콧털을 특수가위로 막 잘라주려고 하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극구 사양했다. 왜냐고? 내가 믿는 하느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콧털마저도 공연히 만들어 내시지 않았을 거라고 새삼스레 믿었기 때문이다. 이 또한 무슨 이야기냐고? 사실 나는 ‘경운기’며 ‘관리기’며 ‘예초기’며 온갖 농기계의 ‘카브레터(karburator)’ 즉 ‘공기청정기’의 필터((filter)가 막혀 엔진이 꺼져 골탕 먹은 일이 있었기에. 다들 아시다시피, 콧털은 ‘유해물질 차단’, ‘이물질 거르기’ 이외에도 ‘습도·온도 조절’ 기능까지 수행한다. 하느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한테 ‘거름막[체;篩]’으로서 아주 훌륭한 콧털과 ‘기관지 섬모(纖毛)’까지 창조하셨다. 그리하여 ‘재채기’까지 하도록 하셨다. 어쩌면 농기계 등의 ‘에어필터’도 콧털의 기능을 그대로 응용했을지도 모를 일.

   사실 이처럼 내가 더 이상 ‘콧털깎기’를 아니 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전혀 다른 데 있다. 나는 본디 ‘붓쟁이’ 즉 사무직으로 사반세기 지냈다. 그러다가 환갑 나이에 이르러 팔자를 확 뜯어고쳐, ‘펜치쟁이[cutting pliers쟁이]’ 곧 ‘기술자’가 되어 있다. 겁 없이 어느 아파트의 ‘전기주임’이 되어 있다는 뜻이다. 내가 이처럼용기를 낼 수 있었던 이유는, 아니 만용을 부릴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모든 기계가 ‘시스템적(시스템的)’으로 작동된다는 걸 익히 아는 까닭이다. 이 분야에서는 내 직종을 크게 분류해서, ‘감시직(監視職)’이라고 부른다. ‘감시직’이란 어휘가 시사하는 바, 평소 말썽없이 잘 돌아가는 ‘변전시설(變電施設)’과 ‘급수시설(給水施設)’과 ‘소방시설(消防施設)’의 상태를 잘 감시하여 고장을 사전에 예방하면 된다는 뜻이 녹아 있다. 그리고 이상 징후가 보이면, 그 분야의 전문가를 불러 손보면 된다. 기술 분야도 어찌나 세분화, 전문화 되어 있는지, 혀가 내둘릴 지경이다. 하여간, 기계들은 스스로 알아서 참 잘도 돌아간다. 대단히 고맙다. 그야말로 ‘오토매틱(automatic)’이다.

    이 아파트의 급수시설을 그 한 예로 들어보고자 한다. 17층짜리, 730세대에 집집이 수돗물을 보내게 된다. 지하에 설치된 ‘가압펌프’가 360일, 24시간 동안 잠시잠깐도 쉬지 않고 돌아간다. 잠도 없다. 얼마나 과학적이며 얼마나 시스템적인지 모른다. 네덜란드 제품이라는 ‘부스터(booster ;가압펌프)’는 4개가 나란히 설치되어 있다. 이들 부스터는 전문가가 미리 설계하여 부여해둔 임무를 교대로 불평 없이 수행한다. 제1,제2,제3이 주기적으로 교대근무를 하게 되고, 제4는 ‘스탠드 바이(stand-by; 예비; 준비)’ 상태다. 제4는 나머지 셋이 다 퍼져 나자빠질(?) 때 “이제는 내가 알아서 알 게!” 나서게 된다는 거 아닌가.

    참말로, 기계는 과학적으로, 시스템적으로 돌아간다. 시스템에 관한 한, 우리 실생활과 아주 밀접한 자동차가 썩 좋은 예에 해당하겠다. 부품의 개수가 무려 25,000여 개 된다지 않던가. 그것들 개개의 부품들이 한 치 오차 없이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고, 또 그 임무가 이웃하는 부품한테 영향을 주어 그 부품으로 하여금 또 다른 고유의 임무를 수행케 하고, 또 그 부품은 자신이 부여받은 임무를 성실히 이행하고... . 그리하여 하나의 공통된 임무인 차량 주행과 차량 속도 변경과 차량 멈춤을 성취한다. 사실 이는 다들 너무도 잘 아는 ‘선순환(善循環)의 과정’이다. 이러한 ‘연동(聯動;連動)’을 바로 ‘시스템’이라고 일컫는데... .

   시스템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필요한 기능을 실현하기 위하여 관련 요소를 어떤 법칙에 따라 조합한 집합체.’, ‘일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질서가 잡힌 요소의 모임.’ , ‘기계와 설비 외에 이들을 운용하는 인간, 기술, 정보 등 형상이 없는 것까지 포함한다.’ 등. 그리고 국어사전은, ‘컴퓨터는 전형적인 하나의 시스템이다.’하고 더 보태고 있다.

   이 시스템에 ‘맞갖는’ 순수한 우리말은 없다. 다만, 유사한 어휘들은 다수 있다. 위에서 이미 소개했던 ‘연동(聯動;連動)’도 그것이다. 이밖에도 ‘유기체(有機體)’, ‘오르가니즘(organism; 특히 지극히 작은 생물체를 뜻하기도 한다. ‘꼰실’로도 번역된다.)‘, ‘메커니즘(mechanism)’, ‘기제(機制)’, ‘기작(機作)’, ‘기전(機轉)’, ‘기구(機構)’ 등등. 하지만, ‘system’이란 외국어가 오랜 기간을 거치는 동안에도 적합하게 번역할 우리말이 없다보니까 외래어로 굳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만치 오묘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는 흔히 이러한 말을 쓴다.

   “이 정부 들어, 국가 시스템이 완전히 붕괴됐어. 전혀 제대로 작동하질 않아.”

   이제 자랑스럽게 말하거니와, 나는 ‘변전시설’을 비롯한 ‘급수시설’, ‘소방시설’이 시스템적으로 아주 잘 돌아가는 덕분에 거저먹기로 돈을 벌고 있다. 심지어, 야간에는 이처럼 아파트 전기실에 앉아 수필나부랭이도 쓸 수 있다. 오로지 그들의 자율적이고 자동적인 활동 덕분이다. 해서, 나는 시스템의 특별 수혜자(受惠者)임에 틀림없다. 세상 모든 만물이 이처럼 시스템적으로 돌아간다는 걸 알았기에 이러한 일자리를 구했다. 자화자찬이지만, 나는 안목(眼目)이 있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잠시 반문해본다. 이렇듯 좋은 뜻을 지닌 시스템이 끝끝내 좋기만 한 걸까 하고서. 하나의 예에 해당하겠으나, 25,000여 개의 부품으로 되어 있다는 자동차의 어느 하나의 부품이 제 기능을 발휘 못하다고 가정해 보자. 가령, 나사 하나가 헐겁게 채워져 있다고 한다면?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발생할 수도 있지 않은가. 내가 시스템을 새삼 중시하는 이유는, 정작 다른 데 있다. 무리 가운데에서 일원(一員)은, 하나의 요소는 그 존재의미가 미미한 듯 여겨지지만, 하나하나가 너무도 소중하다는 것을. 우리가 함께 살아 숨 쉬는 이 사회도 마찬가지 이치다. ‘시스템적 사고(思考)’에 바탕을 둔다면, 개개인이 너무도 소중하다는 것을.

   나는 요행을 바라지만은 않는다. 적어도 다음과 같은 생각은 말아야겠다.

   ‘저 변전시설이, 저 소방시설이 어제도 괜찮았고, 엊그제도 괜찮았으니, 오늘밤도 정상적으로 가동되겠지!’

   참말로, 긴장의 끈을 놓쳐서는 아니 되겠다. 그리고 앞으로는 이발소에 가더라도 ‘코털깎기’만은 더 이상 하지 않을 요량이다. 그 쓰임새를 새삼스레 깨달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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