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어링(bearing)'에 관해서
‘베어링(bearing)'에 관해
윤근택(수필가)
우리 일상생활에 없어서는 아니 될 부품 가운데에는 나사, 못, 고무패킹 외에도 ‘베어링’이 있다. 내가 걸맞지 않게(?), 그것도 비교적 늦은 나이에, 이 아파트 ‘전기·영선(營繕)’ 업무를 수행하다가 보니, 온갖 난제를 겪게 된다. 이번에는 107동 ‘제 3 자동문’을 드나드는 입주자 한 분으로부터 민원을 접수받았다. 나는 공구가방을 메고서, 그야말로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1544에 바로 가’를 또다시 행했다. 현장에 가본즉, 민원인 신고대로 자동문에서 ‘삑삑' 소리가 났다. 감각적으로, 도르래에 문제가 발생했음을 알 수 있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베어링에 주유(注油)한 그리스(grease)가 겨우내 굳기름으로 굳어져 생긴 일이다. 물론, 이런저런 궁리 끝에 문제는 해결했으나... .
지금은 다시금 한밤, 전기실 책상맡. 제재로 낚아챈 ‘베어링’ 이야기에 앞서, 잠시 그리스에 관한 이야기부터 펼치고자 한다. 자료를 살펴본즉, 그리스에 관해 이렇게 적혀 있다.
<운동 중에는 액체 상태를 나타내고, 정지하면 유동성을 상실하여 반고체가 되는 것이 특징이다. 용도와 성분 및 성질에 따라 여러 가지 제품이 있는데, 대부분 이 액체의 광유계(鑛油系) 윤활유에 금속비누와 소량의 물을 가하여 콜로이드(colloid) 상태로 혼합하여 제조한 것으로, 버터 모양으로 되어 있다. 기계의 운동에 의하여 마찰 변형을 받거나 온도가 상승하면 속에 있는 기름이 겉으로 배어 나오는 작용이 일어난다. 베어링에 대한 회전축의 하중이 큰 마찰 부분, 급유하기 어려운 부분 등에 사용한다. > 이상 [네이버 지식백과] 그리스 [grease] (두산백과)에서 베껴옴.
그리고 독자님들께 덤으로 알려드릴 게 있다. ‘Grease somebody's palm.’이란 말이 있더라는 거. 문자 대로 풀이하면, ‘~에게 기름을 치다.’인데, 곧 ‘~에게 뇌물을 쓰다.’이란 뜻이었다. 사실 우리도 유사한 표현을 자주 하곤 한다.
자, 이제 미뤄뒀던 베어링 이야기로 접어든다. 다들 너무도 잘 아실 테지만, 베어링은 회전하고 있는 기계의 축(軸)을 일정한 위치에 고정시키고 축의 자중과 축에 걸리는 하중을 지지하면서 축을 회전시키는 역할을 하는 기계요소를 일컫는다. ‘축받이(軸받이)’라고도 부른다. 베어링과 접촉하고 있는 축 부분을 저널(journal)이라고 하며, 그 접촉상태에 따라 미끄럼베어링(sliding bearing)과 구름베어링(rolling bearing)의 두 종류로 분류한다.
그런데 ‘베어링’이든, ‘축받이’이든 순수한 우리말은 아니다. 문득, 그 기계요소에 적합한 순우리말을 무엇으로 정하면 좋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곰돌이’가 어떨까? 왜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되었냐고? ‘bearing’이 어차피 ‘bear’와 ‘-ing’가 합쳐진 말일 테니, 이렇게 생각할밖에. 이따가 영어 ‘bear’의 다른 뜻도 밝히겠지만, 우선 ‘곰[熊]’이란 뜻을 지닌 명사이다. 실제로, 기계요소로서 베어링은 ‘곰이 재주를 넘듯 하는 재주’를 부리지 않는가. ‘뱅그르르’ 돌아가는 베어링. 해서, 앞으로는 ‘곰돌이’라고 고쳐 불러도 좋으리.
그 특별한 기계요소를 인류 최초로 고안해낸 이가 누구인지 모른다. 또, 어떤 이가 ‘bearing'이라고 최초로 명명했는지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 어휘가 지닌 여러 가지 뜻을 그 기계요소에 모두 녹여 부은 듯하다. 참다(견디다)· (책임을) 떠맡다· (아이를) 낳다· (열매를) 맺다 등등의 뜻을 더 지니고 있다.
이 밤 기계요소로서 베어링은, 또 다른 생각을 겹쳐지게 한다. 바로 우주의 질서가 거기 깃들여져 있다는 것을. 도대체 어떤 질서? 모든 천체 즉 별들은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쉬지 않고 하게 되는데, 그 활동이 겉보기에는 무질서롭고 혼돈스러운 듯하다. 즉, ‘카오스(chaos)’다. 그러나 하나의 거대한 질서를 지닌다. 곧 ‘질서로운 일체로서의 우주’를 일컫는 ‘코스모스(kosmos)’다. 일찍이 학창시절에 익힌 원자도 마찬가지다. 원자핵을 중심으로 전자가 그 주위를 질서롭게 돈다고 배웠다. 참말로, 베어링의 운동도 자전과 공전이라는 우주의 원리를 그대로 따른 것이니, 놀랍기 그지없다. 다시 말하거니와, 베어링은 우주의 모습을 그대로 베낀 기계요소다. 가령, 아주 작은 쇠구슬의 집합체로 구성된 베어링이라면, 개개의 쇠구슬은 자전을 하고, 그것들은 축(軸)을 중심으로 공전한다는 것을.
이즈음에서, 내 이야기를 끝냄이 옳겠다. 더 지나치면, 내가 아주 돌(회전할) 판이니! 하지만, 그래도 이 한마디만 더 보태기로 하자.
우주에도 대기 혹은 진공이라는 윤활유가 필요하듯, 베어링에도 늘 적정한 양과 적절한 점도(粘度)의 윤활유가 필요하다. 그리고 어느 철학자의 말도 패러디 한다.
“그래도 베어링은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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