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쾌했던 날
통쾌했던 날
윤근택(수필가/문장치료사/수필평론가)
허세욱 님의 <재를 넘는 무명치마>는 짧은 수필이다. 모자(母子)의 정을 그린 작품이다. 늙은 모친은 공양미를 이고, 젊은 아들이 뒤따르는 장면이 퍽 인상적이다. 오버랩 되는 장면이 있다.
84년 8월, 기분이 엿 같은 날이 있었다. 식구들은 첫물 고추를 따러 간다며 신새벽부터 요란을 떨었다. 한낮의 뙤약볕을 피하자면 서둘러야 한다면서. 빈들빈들 노는 꼴을 더는 보이기 싫어, 마지못해 따라나서기로 했다. 취직 영어책을 놓고 검정 고무신, 작업복, 모자 등 모조리 형님의 것으로 복장을 갖추었다. 같은 해 2월에 대학을 졸업하고, 졸지에 놈팡이가 된 나. 주인의 눈치나 슬슬 보는 머슴꼴이었다.
아버지, 어머니, 형님, 형수님, 어린 조카는 고추 고랑에 접어들어 두 줄씩 잡았다. 이미 저만치 빨간 고추를 잘도 따 나가고 있었다. 하나같이 숙련공이었다. 나는 외줄을 잡아 따 나가는데도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어디 고추는 아무나 따는가. 숙련된 조교, 아버지는 시범을 보여주었다. 그런데도 가지가 찢어지거나 풋고추가 덩달아 떨어지곤 했다.
‘특산물인 고추를 따 팔아서…….’
속이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어느새 땡볕은 등줄기를 마구 후려 갈겨댔다. 내가 생각해도 한심한 노릇이다. 내 농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따로 새경을 줄 것 같지도 않고. 그래도 반찬도 없는 어설픈 밥을, 그것도 눈칫밥을 얻어먹으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도대체 흥이 나지 않았다. 허리는 왜 그리 아프던지. 자주자주 허리를 폈다. 그때마다 고개는 집 쪽 오솔길로 돌아가곤 했다. 자꾸자꾸 혼자 욕을 해댔다.
‘에라, 빌어먹을. 한심한 새끼.’
기다리고 기다리던 점심때가 되었다. 형님은 집채 만한 고추 포대를 덜렁 지고, 형수는 큼지막한 고추 포대를 덜렁 이고 미리 집으로 갔다.
'쓰발, 재수 옴 붙은 날이다.'
아버지 지게에 문제가 생겼다. 내가 아무리 막되어 먹었더라도, 칠순 노인이 지게를 지도록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오기를 부리며 지겟작대기로 버티며 지게를 지고 일어서려 했다. 뒤뚱하는 순간, 고추 포대는 밭둑을 타고 ‘둥둥둥’ 굴러 내려가 남의 콩밭을 망쳐버린 것이다. 낭패였다. 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이 핀잔을 주었다.
“쯔쯔, 농산들 제대로 할까?”
노인은 속이 뻗쳐 지게를 빼앗아 졌다. 그리고는 논둑길을 헤치고 돔방돔방 잘도 걷고 있었다. 나는 서너 발자국 뒤쳐져 지겟작대기를 질질 끌며 걸었다. 가슴이 썩을 대로 썩어 거름이 되어버린 어머니. 나직하게 다독여 주었다.
“야야, 니가 참아래이. 멀찌감치 떨어져 걸어래이. 느그 어른 성정(性情) 잘 알잖아.”
기분이 개떡 같았다.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이건 아니었어. 내 인생의 각본은 이렇지 않았어.’
노인은 이따금씩 용을 쓰는지 ‘으흠! 으흠! 으흠!’ 했다. 나는 분풀이 할 데가 없어 5척 단신의 노인을 바싹 뒤따랐다.
지게에 폭 파묻혀버린 노인. 짧은 지게 목발, 땀에 절은 잠방이, 깡마르고 새까만 다리, 해진 검정 고무신. 내가 볼 수 있는 건 그런 것뿐이었다. 나는 시한폭탄의 피해 반경 안에 있었다. 아니, 사정거리 안에 있었다. 노인이 홧김에 지겟작대기를 휘두르면, 차라리 맞아 죽고 싶었다.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쓰발 영감탱이, 불쌍도 하지. 자식새끼 열 남매 낳아, 그래도 쓸 만하다고 한 놈을 4년제 대학에 보냈거늘…….’
앞에 지게를 지고 가는 머슴(?)은 연신 ‘으흠! 으흠! 으흠!’ 했다. 마침 들에 사람들이 없었기 망정이지, 늙은 애비는 짐을 지고 젊은 새끼는 뒤따르고…….
1km쯤 그렇게 걸었을까? 지게의 움직임으로 보아, 앞의 노인이 쉴 모양이었다. 쉼터에 지게를 괴는가 싶더니, 노인과 짐이 휙 나자빠졌다.
‘쓰발 영감탱이, 자기도 별 수 없으면서…….’
이 세상에 태어나 그처럼 통쾌한 순간은 없었다. 그처럼 행복한 순간은 없었다. 나는 노인한테 나직하게 말했다.
“아버지, 포대에 고추를 꼭꼭 채우지 않아서, 이 짐은 처음부터 문제가 있었어요. 이제 제가 질 게요.”
노인은 순순히 지게를 건네주었다. 짐을 졌더니 땀이 홍수처럼 쏟아졌다. 무겁다고 내색할 수도 없었다.
거기에서 1km쯤 악을 쓰고 걸었더니 가까스로 집에 당도할 수가 있었다. 마당에 지게를 괴었다. 펄떡펄떡 뛰어놀던 중학생 질녀가 산적같이 생긴 나에게 뚱딴지같은 말을 했다.
“삼촌, 참 서울 막내고모한테서 전화 왔었어요. 무슨 시험인지는 모르지만, 합격했대요. 아침에 삼촌이 전화로 살짝 알려준 수험번호가 신문에 있더래요.”
녀석의 대꾸에 기가 막혔다. 저만치 달아나는 녀석에게 지겟작대기를 마구 휘둘러대며 발악했다.
“이 눔의 가시나야, 집을 누가 훔쳐 가나? 그런 일이 있었으면 밭으로 달려 왔어야지. 그랬으면…….”
땀, 눈물, 콧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툇마루에 걸터앉아, 머쓱한지 여전히 ‘으흠! 으흠! 으흠!’ 했다. 형님은 면도의 날을 갈아주었다. 형수는 내가 빌려 신을 형님의 운동화에 끈을 묶고 있었다. 면접 보러 갈 차비를 도와준 것이다. 어머니는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이 녀석아, 그동안 많이 힘들었제? 숱하게 시험 치러 돌아다니고 산골 외딴집에 숨고……. 이젠 다 잊어버리거라. 니한테 앞으로 좋은 날만 있었으면 좋겠다.”
기분 드럽게 괜찮은 날이었다.
<바람소리> 99년 3월호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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