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작

'감자' 야기기

윤근택 2017. 5. 9. 08:15

                                             감자이야기

 

                                                                                                                             

                                                                                                윤근택(수필가)

 

        1시간여 승용차를 몰아 직장과 내 농장의 농막을 격일제로 오가는 나. 승용차 시동을 걸면, 거의 자동으로 F.M.방송이 흐른다. 그 가운데에서도 박지현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출발 FM과 함께, 클래식 마니아인 나를 매료시키는 프로그램이다. 박지현 아나운서는 새로운 코너를 진행하고 있는데, 바로 ‘결정적인 순간'이 그것이다. 오늘 아침에는 그 코너에서 원전(元典)을 알 수 없으나, 감자의 역사를 들려주었는데, 내가 그 내용을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경제 대국 일본이 감자 파동을 겪고 있다. 흉작으로 인하여 국민 간식으로 부르는 감자 칩 생산을 중단한 것. 농민단체가 수입을 반대해 감자 부족 사태는 당분간 지속할 전망. ··옥수수 다음으로 많이 생산하는 감자. 미국과 유럽에서 주식으로 이용된다. 기후와 토질이 나빠도 잘 자라고 다양한 영양소와 필수 아미노산을 함유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지구온난화 등 기상이변에 대비하여 '안보 식량'으로 재배한다. 유엔은 2008'국제 감자해'로 지정했다. 개발도상국한테 식량으로서 감자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자는 취지에서다. 한편,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감자를 우주식량으로 개발한 상태다.

        그런데 그런데... . 감자는 원산지 구 페루 잉카제국에서 1565년 무렵, 당시 그 제국을 소수의 병력으로 무너뜨린 에스파냐 침입자 피사로가 요상하게 꽃을 피운 감자를 화초로 가꿀 요량으로 빼앗아갔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그 감자가 유럽에 처음 소개됐을 때는 애물단지였다. 먹으면 지옥으로 떨어지고 난치병에 걸린다는 유언비어 때문이었다. 해서, 유럽에서 잦은 흉년으로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해도 기피 대상이었다. 러시아와 독일, 프랑스는 황제까지 나서 재배를 권장했으나 성과가 미미했다.

        감자 보급에 가장 앞장선 인물은 독일 프리드리히 2(1712~1786). 마침 독일이 농지가 부족하고 악천후가 잦아 식량난이 거의 매년 되풀이됐다. 흉년에는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이웃 마을을 약탈하는 사례도 잦았다. 후일 '감자 대왕' 이란 별명까지 얻게 된 프리드리히 2. 그는 감자가 배고픔을 해결할 것으로 확신하고 힘으로 밀어붙인다. 그는 1744년 농민들이 군인 감시 속에서 감자를 심도록 강요한다. 운반과 재배, 보급 등은 군대가 맡았다. 이후 감자는 왕위 계승권을 놓고 오스트리아와 벌인 전쟁에서 승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감자를 전투식량으로 삼아 7년간 장기전을 펼쳐 이긴 것. 이때부터 그를 '감자 대왕'이라고 부르게 된다. 지금도 그가 살던 궁전에는 관광객들이 감자를 올려놓고 참배한다는 거 아닌가.

       러시아 농촌도 독일의 농촌과 비슷한 상황이 발생한다. 감자 저항이 심각했다. 끼닛거리가 없어 굶어 죽을지언정 감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심지어, 누구라도 감자를 먹고 나면 신성 모독으로 지옥에 떨어진다는 미신도 생겨났다. 타락한 악마 딸 무덤에서 감자가 처음 생겼다는 이야기도 나돌았다. 가짜뉴스를 퍼뜨린 이들은 구교도 지도자들. 그들은 러시아 제국을 세운 표트르(1682~1725) 대제의 근대화 정책에 반대해 허위사실을 그처럼 퍼뜨렸다. 그는 서구문명을 견학하려고 유럽을 순방했을 때 감자를 들여왔다. 농민들 설득이 어렵다고 판단한 표트르는 극약 처방까지 쓴다. 농민 목에 칼을 들이대 죽이겠다고 위협해 감자를 억지로 먹게 하였다. 그런데도 성과가 미미하자 후일 예카테리나 2세는 당근과 채찍을 병행한다. 1840년 전국에 포고령을 내려, 모든 공유지에 감자 종자 전용 농지를 만들게 했다. 한편, 감자 저장과 요리 방법을 적은 전단도 배포했다. 감자를 길러 풍작을 거둔 농민한테는 포상한다고 약속했다. 뼛속까지 뿌리내린 미신 탓에 백약이 무효. 우랄이나 볼가 강 일대에서는 농민 폭동까지 일어났다.

       프랑스도 위 두 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자 프랑스 정부는 심리전으로 감자를 보급한다. 사실 프랑스에서는 감자가 18세기까지 돼지 먹이로 쓰였다. 한센병이나 성병을 일으킨다는 소문 때문에. 심지어 의회는 감자를 심으면 벌금을 물리도록 포고령까지 내렸다. 이러한 악조건에서도 감자 보급에 몸 던진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농학자 파르망티에마리 앙투아네트왕비였다. 먼저 감자요리를 20가지 이상 만들어 왕실 연회장에 내놓는다. 굶어 죽어도 감자는 외면하는 국민 의식을 바꿔보려는 시도였다. 앙투아네트는 감자 꽃으로 머리를 장식해 무도회에 참석하기도 한다. 왕비 옷이나 장식품은 귀족 부인들을 거쳐 금세 유행이 된다는 계산에서다. 궁궐 정원에 감자를 심어 경비병을 세우기도 했다. 귀중한 식량이라는 인상을 주려는 조치였다. 심리전은 주효했다. 일부 농민이 정원에 잠입해 감자를 훔쳐다가 키우는 등 감자 거부 심리가 크게 개선됐다. 위에서 소개한 농학자 파르망티에는 오늘날 다양한 프랑스 감자요리 이름에 붙어 있다. 그가 감자 전도사로서 공로를 인정하여 기린 것이다.

       영국에서도 감자는 장기간 푸대접을 받았다. 기피 사유는 유럽 대륙과 달랐다. 감자는 음식재료 가운데 가장 천한 것으로 간주했다. 하늘을 나는 조류가 최고, 걸어 다니는 동물은 중간, 땅속 식물은 최하로 차별한 탓이다. 당시 영국은 아일랜드인을 겨냥해, "돼지 식량 감자나 먹는 국민이다."고 비하하기도 했다. 공장주들이 감자를 노동자 음식으로 쓰려다가 역풍을 맞기도 했다. 그러다가 영국이 프랑스와 전쟁을 치르면서 상황은 돌변한다. 곡물 가격이 치솟자 영양분 많고 저렴한 감자를 찾는 사람이 늘어난 것이다.

       아일랜드는 유럽에서 가장 먼저 식용작물로 받아들인 나라다. 황무지에서도 쉽게 자란 덕에 빈곤을 해결한 국민 주식이 됐다. 그러나 1845년에는 재앙을 부른다. 6년간 마름병이 번져 굵어죽는 이들이 속출하게 된다. 800만 명가량이던 인구는 약 200만 명 줄어든다. 100만 명은 굶어 죽고 100만 명은 미국 등지로 이주했다. 미국 최연소 정상에 오른 케네디 대통령 조상도 이때 신대륙으로 건너갔다.

       감자 번식에 성공한 유럽 국가는 예외 없이 인구가 늘고 시장이 활기를 띠었다. 무수한 목숨을 앗아간 괴혈병도 사라졌다. 괴혈병을 일으키는 비타민C 결핍 증세가 감자로 해소된 덕분이다. 1260년 유럽 십자군이 우수한 전투력을 앞세우고도 패한 데는 괴혈병 영향이 크다. 수많은 군인이 잇몸 악취와 출혈성 피부 반점, 다리 부종 등으로 전선에서 이탈했다. 18세기 영국 해군도 괴혈병으로 10만 명 이상 숨졌다. >

        * 이상은 ‘KBS 출발 FM과 함께에서 방송되었던 내용 재편집함.

       지금부터 감자와 관련된 나의 이야기다. 문득, 소년시절을 추억한다. 머슴애인 나는 여자아이처럼 걸레질, 비질 등을 비교적 잘 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학교가 쉬는 날이면 툇마루에 쪼그리고 앉아 감자깎기도 잘 하였다. ‘빼때기라 부르던 모지랑숟가락을 박피기(剝皮器)로 삼아, 자잘한 자주감자를 잘도 깎아댔다. 최근에야 안 사실이지만, 그 자주감자는 일본에서 들여온 남방계 감자였다. 아무튼, 그렇게 감자를 깎아두면, 들일에 뽑혀간(?) 누님들이 집으로 돌아와서 사카린을 넣고 쪄서 점심밥 대용으로, 혹은 새참으로 내어놓곤 했다. 그러다가 한번은 농촌지도소에서 출장 온 농촌지도사한테 들켜(?) 너무나 부끄러운 나머지 감자바가지를 감추었던 새콤한 추억. 그분은 4H 간부였던 내 누님들한테 내 안부를 물을 적마다, “감자를 깎던 그 소년 요즘은?”하곤 했단다. 사실 그때는 자잘한 자주감자도 아까워서, 이따금씩 껍질을 벗기지 않고 그대로 쪄 먹은 일도 잦았다. 그렇게 하는 걸 피감자[감자]’라고 했다. 그러나 감자 특유의 성분으로 인하여 아릿한 맛이었다. 그 성분이 바로 식중독을 일으키는 솔라닌임을 다 큰 후에야 알게 되었다. 대체로, 고향 그 시골마을에는 자주감자가 주를 이뤘다. 그러다가 흰 감자를 집집이 심게 되면서부터 점차 그 자주감자는 사라져 갔는데... . 저장성이 흰 감자에 비해 월등히 좋던 그 감자를 요즘 들어 본 적이 없다.

       명색이 농학도(農學徒)였던 나는, 그 자주감자에 관해 위와 같은 추억거리만 있는 게 아니다. 농업분야에 혁혁한 공을 세웠던 육종학자 우장춘(禹長春, 18981959) 선생. 그분은 일본에서 들여온 감자가 더뎅이병등으로 피해를 입자, 서늘한 강원도 고랭지에 재배하게 되면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정부와 농민들에게 권하게 된다. 해서, 그때부터 병충해를 해결하게 되었다는 거 아닌가. 사실 감자는 퇴화(退化)가 심한 작물이라, 씨감자를 거듭해서 심게 되면 작황(作況)이 나빠진다. 그러기에 해마다 고랭지에서 생산되는 씨감자를 사다 심어야 한다. 해서, 씨감자값이 비싸서 웬만한 면적을 재배해서는 수지가 맞지 않는다. 아내도 이 사실을 너무도 잘 알기에, 내가 하지감자(夏至-)’를 심는 걸 한사코 말려댔다. 자연히 내 농장에는 감자가 사라졌다. 해마다 하지를 전후해서 감자 알을 캐던 재미도 사라졌다.

       감자에 관해서 내가 요즘도 헷갈리는 게 하나 있다. 감자가 변한 줄기이고 고구마가 변한 뿌리인지, 감자가 변한 뿌리이고 고구마가 변한 줄기인지 헷갈린다는 말이다. 사실 중학교 입학시험(당시는 중학교도 뺑뺑이가 아닌 입학시험제였다.)을 앞두고 자연이란 과목의 모의고사를 볼 적이면 늘 그 문제가 나왔던 기억. 이는 마치 칡[]과 등나무[]를 함께 심으면 서로 엉켜 둘 다 말라죽는다는 데서 비롯된 갈등(葛藤)’만치나 헷갈린다. 칡과 등나무는 각각 ‘(줄기)왼감기‘(줄기) 오른감기의 습성을 지녔는데, 왼감기가 칡인지 등나무인지, 오른감기가 칡인지 등나무인지 그때그때마다 잊어버린다는 거 아닌가. , []이 왼쪽에 달린 놈이 광어인지 도다리인지, 눈이 오른쪽에 달린 놈이 도다리인지 광어인지 헷갈리듯이. 이처럼 비슷한 사물 둘의 식별요령을 아주 명쾌하게 가르쳐준 이가 있으니... .

       아동문학가 고() 권태응(權泰應) 선생이다. 그분은 일본 강점기에 저항시를 적게 되는데, 바로 <감자꽃>이그것이다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파보나 마나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보나 마나 하얀 감자

 

       그 동시를 구구이 풀이할 것도 없다. ‘왜놈의 씨는 왜놈이 될 것이요, 회색분자는 회색분자요, 백의민족은 백의민족이다.’로 요약하면 마뜩하다.

       나더러 감자에 관한 추억 한 두레박을 더 길어 올리라면, 옛 마을 우물가에 집집이 내어놓았던 항아리. 생김새도 다양했던 그 항아리마다에는 썩은 감자가 잔뜩잔뜩 담겨 있었다. 부인들은 감자를 삭인다고 하였다. 들며 나며 그 항아리에 두레박으로 길어 올린 물을 붓곤 하였다. 참으로 신기한 일. 고약한 내음이 코를 찔러댔으나, 우려내고 우려내고를 거듭하여 말린 후 방아에 찧어 햇볕에 내다 말리곤 했다. 그리고는 가는[] []로 체질하면 보얀 가루가 되었다. 그처럼 지난한 공정을 거쳐 얻게 된 가루가 전분 즉 녹말가루였다. 감자의 사촌격인 고구마는 썩으면 버려졌지만, 감자는 그처럼 썩어서까지도 우리네 먹을거리가 되었다. 감자송편으로 변신하기까지 하였으니... .

       위 내용을 다시 환기하자면, 감자는 우리네 인류의 4대 식용작물 가운데 하나다. 구황작물(救荒作物)이다. 자주 꽃을 피우는 자주감자는 자주감자대로, 하얀 꽃을 피우는 흰 감자는 흰 감자대로 예쁘기 한량없다. 에스파냐의 피사로는 잉카제국을 침략하여 꽃을 보고자 감자를 약탈해 갔으나, 그의 감자 약탈 덕분에 온 인류는 기근에서 해방되었으니 아이러니다. 마찬가지로, 에스파냐의 에르난 코르테스는 구 멕시코인 마야에서 황금의 보옥(寶玉)인 옥수수를 약탈해 갔으나, 그의 옥수수 약탈 덕분에 온 인류는 3대 식용작물로 옥수수를 꼽고 있다.그 덕분에 기근에서 해방되었으니, 이 또한 아이러니다.

       끝으로, 색깔도 아주 다양하게, 기능성 작물로 거듭거듭 감자를 육종해 낸 육종학자들한테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리며 글을 맺는다. ‘뜨거운 감자!’라는 말이 있는데, 감자야말로 내 가슴을 뜨겁게 하는 감자!’일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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