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작

'진근히 쑤시면 뱀장어가'

윤근택 2017. 6. 19. 11:42

 

 

                                진근히 쑤시면 뱀장어가

 

 

 

                                                 윤근택(수필가)

 

  이따가 소상히 밝히겠지만, 어젯밤 어떤 어려움을 겪었으며, 이를 기어이 해결했다. 그러자 문득, 어릴 적에 내 양친으로부터 자주 듣던 교훈의 말씀이 떠올랐지 않은가.

 “야들아, ‘진근히쑤시면 뱀장어 나온대이.”

 여기서 말하는 진근히다할 ()’부지런할 ()’이 합쳐진 말 같다. 진력(盡力)으로, 부지런하게 물 속 큰 바윗돌을, 지렛대 등으로 거듭거듭 들썩대면, 그 속에 숨어있던 뱀장어가 나와서 반두 속으로 쑥 들어온다는 뜻이려니!

 그러고 보면,시골 무지렁이였던 내 양친은 내가 만난 그 어느 스승보다도 훌륭한, 내 삶의 스승이었다. 두 분은 굳이 고상한 말씀을 쓰지 않았다. 삶의 철학을 아주 쉽고도 짧은 말씀으로 일러주곤 했다. 그 가운데에는 이런 것도 있다.

 “야들아, 똥도 먼저 나온 놈이 뭉그래진대이(뭉그러진다).”

  이는, 나이가 들어가면 보편적으로 남한테 져주고 너그러워진다는 뜻이다.

  이제 첫 줄에서 말한, 어젯밤의 어떤 난관(難關)’을 나의 신실한 애독자들께 알려드려야겠다. 참말로, 그것은 難關이었다. 말 그대로 ‘(열기 힘든 대문의) 빗장()’이었다. 나의 근무장소이기도 하며 숙소이기도 한 아파트의 전기실. 평소에는 조심하여서, 개목걸이인양 목에 차고 지내는데, 출입문 열쇠를 실내에다 두고 밖에 볼일을 보러 나왔다는 거 아닌가. 나름대로 예비 열쇠를 챙겨 은밀한 장소에 두었건만, 보이지 않았다. 격일제 맞교대자 OO’주임이 어떻게 한 모양이다. 시간은 자정으로 치닫는데, 휴대전화를 걸기도 무엇하고... .

 ‘내가 어느 분들의 자식인데... 참으로 대단했던 그분들의 열 남매 가운데 아홉 번째 아닌가.’

  내가 그 정도의 어려움에 굴할 사람이 결코 아니다. 그 귀중한 가르침, ‘진근히 쑤시면 뱀장어가... .’를 다시 떠올렸던 것이다.

  사실 나는 열쇠박사, 아니 열쇠수집광이다. 나한테는 서랍 가득 온갖 열쇠가 들어있다. 예전에 직장생활 초년생일 적에 선임자(先任者)는 나한테 인수인계를 하며 단단히 일러준 바 있다.

 “윤 대리, 부서의 서무를 담당하다가 보면, 예비 열쇠를 한 꾸러미 가지고 있어야 해요. 간부님들은 본인의 서랍 열쇠 등을 잘도 잃어버리거든요.”

여기서 잠시, 나의 신실한 애독자들께 넌지시 알려 드릴 게 하나 있다. 어른들 말마따나, “조선(한국) 열쇠 별 다른 게 없어!”. 요렇게 조렇게 제법 복잡하게 생겨먹었더라도 구멍만 맞으면 거의 다 들어가고, 들어가기만 하면 거의 다 열리게 되어 있다. 신발의 치수를 일컫는 문수(文數)’에 빗대, ‘그 무엇에도 문수가 따로 없다는 속된 말도 한 번씩 떠올려보시길. 하여간, 내가 일찍부터 열쇠와 자물통의 관계를 너무도 잘 알았기에 ... .

 나는 관리사무소로 돌아와, 내 책상 서랍에 간직하던 열쇠 꾸러미를 서랍째로 들고 가서, 전기실 출입문 앞에 서게 되었다. 그러고는 차례차례 자물통 구멍에 쑤셔 넣어 보고 있었다. 내 양친 말로는 진근히’, 한자어로는 試行錯誤’, 영어로는 ‘trial and error’. 한참을 열쇠를 바꾸어 가며 꽂고 돌리고를 하다보니까 딱 하나가 맞아떨어져 빗장이, ‘難關철커덕열렸지 뭐냐! 그 순간의 희열을 감히 누가 상상하리오. 겉보기에는 전혀 궁합이 맞지 않을 듯 하던 열쇠가 일을 해냈다.

사실 일반 열쇠로도 아니 열리면, ‘22번 철사를 접어서, 혹은 철사 클립(clip)’을 펴서 자물통을 열어본 적도 많다. 그러면 직장 상사들이 열쇠박사라고 칭찬한 예도 많았다. 실제로, 일전에는 전자자물통 배터리가 나가서 문을 못 따 쩔쩔매는 아파트 입주민의 현관문을 열어주어, 톡톡히 사례를 받은 바도 있다.

  자, 다시금 이야기하지만, 나의 양친은 진근히 쑤셔대기를 일러주었다. 내 살아온 60여 년을 되돌아보자니, 대체로 답이 나올 때까지 공구(攻究)해 왔던 것 같다.

사실 이번에 내가 행한 시행착오는 약과(藥果)에 불과하다. 예전에 아주 예전에 30대 초반이었던 어떤 사내는 더 엄청난 일을 해냈다는 거 아닌가. 바로 알렉산더다. 그는 프리지아를 침공하여 고르디우스(Gordius) 신전앞에 다다른다. 그 신전에는 마차가 묶여 있었는데, 매듭이 매우 복잡하게 꼬여 있었다. 뒤에 이 매듭을 푸는 사람이 아시아의 지배자가 될 것이라는 신탁이 전해져 많은 사람이 풀려고 시도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 알렉산더는 이곳에 들러 매듭을 풀려다가 실패하자 칼로 잘라버렸다. 그렇게 해서 생긴 말이고르디아스의 매듭’. 아무리 애를 써도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알렉산더는 대담한 행동으로 복잡한 문제를 단칼에 해결하였지 않은가.

  나는 알렉산더만치 대담한 사람은 결코 아니다. 다만, 무슨 문제가 닥치면 피하지 않고, 해결책이 나올 때까지 이리저리 궁리하곤 한다. 이를테면, 나는 응용력이 비교적 뛰어난 사람이다.

 끝으로, 내가 30여 년 동안 다른 장르의 문학에 기웃거리지 않고 진근히 수필작품만을 적고 있다는 거. 그 또한 내 양친의 교훈 말씀 덕분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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