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근택 2017. 6. 25. 12:35

 

수필로 쓰는 수필론

- 앙금론(-)-

 

윤근택(수필가/문장치료사/수필평론가)

 

술상맡에 둘러앉으면, 저마다 막걸리병만은 자신이 흔들겠다고 우겨댄다. 다들 아시다시피, PET병에 든 막걸리는 가스로 인해 넘치기에, 자신만의 노하우라면서 그리하게 된다. 어떤 이는 막걸리통 마개를 살짝 연 후 양손으로 병을 움켜잡음으로써 가스를 빼낸다. 사실 잘 살펴보면, 막걸리통의 주둥이에는 네 가닥의 가스배출홈 내지 가스배출선이 나 있기에, 그리해도 된다. , 어떤 이는 뇌진탕을 시킨다면서 숟가락으로 병뚜껑을 톡톡 침으로써 가스를 잠재우기도 한다. 늘 막걸리를 농주(農酒)삼아 밥삼아 마셔대는 이 농부 수필가는 어떻게 하냐고? 나의 방식은 아주 간단하다. 아예 병뚜껑을 완전히 열어 팽개친 다음, 병목을 잡고 마치 곤봉체조를 하듯 뱅글뱅글 허공에 돌림으로써 가스 배출은 물론이고, ‘교반(攪拌;agitation)’까지 겸하게 된다. 막상 흔듦또는 젓기를 두고교반이라고 말해놓고 보니, 다소 현학적인 듯하다. 그러나 임학도(林學徒)였으며 농부인 나는 농약 살포와 관련해서 교반이란 말에 더 익숙하다. 교반은, ‘ 물리적 또는 화학적 성질이 다른 2종 이상의 물질을 외부적인 기계 에너지를 사용하여 균일한 혼합상태로 만드는 일을 일컫는다. 특히 주로석회유황합제인 농약은 잘 교반하여 살포하여야만 한다. 분무기에는 아예 교반기(攪拌機)’를 달아둔 예도 있다.

내가 정작 이 글을 통해 하고픈 말은 다른 데 있다. 다들 너무도 잘 아는 사항이지만, 막걸리는 현탁액(懸濁液;suspension)’이다. 우유와 마찬가지로 콜로이드 상태이다. 더 쉽게 말해, 막걸리는 앙금즉 침전물이 있다. 그러니 흔들어 마셔야 온전히 마시는 것이다. 그런데 내 농장이 소재한 골짝마을 노인들 몇 분이 막걸리 마시는 습관은 나와 다르다. 그분들은 막걸리의 앙금이 마치 고름 같다면서 웃물 곧 청주(淸酒)만 조심스레 따라 마시고 나머지는 병째로 버리곤 한다. 참으로 괴이한 일이다. 사실은 그 막걸리의 앙금이 진땡이이며, 거기 녹아 있는 아미노산 등으로 하여 항암작용까지 한다는데... . 아무튼, 막걸리는 앙금이 진짜배기이다. 그러니 오히려 웃물을 버리고 그 뻑뻑한 앙금만 먹어도 제대로 영양섭취가 된다.

, 나의 이야기는 어느새 앙금에까지 닿았다. 앙금은 내가 즐겨 마시는 막걸리에만 있는 게 아니다. 어린 날 우물가에 마을 아지매들이 집집이 내어 놓았던 항아리에도 그러한 게 들어있었다. 여름날 하지감자썩은 것을 따로 모아 그렇게 담아 내어놓았다. 들며나며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그 항아리에 부어대지 않던가. 가을철엔 도토리를 갈아서 또 그렇게들 하였다. 감자는 썩었어도 녹말을 내어 놓고, 도토리는 갈았어도 녹말을 내어 놓았다. 그것들의 부유물(浮游物)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아지매들은 꽤나 오랜 기간, 우려내고 우려내고를 거듭하여 썩은 감자의 고약한 냄새, 도토리의 떫은 타닌을 제거코자 하였다. 그처럼 지난(至難)한 과정을 거친 다음, ‘가는 체[細篩]’로 밭쳐낸 결정체가 바로 앙금이었다는 사실.

앙금의 사전적 정의는 이러하다.‘ 녹말 따위의 아주 잘고 부드러운 가루가 물에 가라앉아 생긴 켜.’앙금은, ‘마음속에 남아있는 개운치 않은 감정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전자(前者)에만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이어가고자 한다.

나는 가끔씩 남의 수필작품을 문장치료(文章治療)’하게 되는데, 대부분의 글들은 앙금이 보이지 않았다는 거 아닌가. 위에서 이미 소개했지만, 내 마을 몇몇 노인들이 마셔대던 막걸리 같은 글들이 의외로 많더라는 거. 그런 글들을 대할 적이면, 어린 날 내 어머니가 자주 하던 말씀도 겹쳐지곤 한다.

내가 아이는 내다버리고 태()만 주워다 키운 것 같애. 야가(얘가) 이렇게 몸이 부실할 수가?”

요컨대, 수필작품은 앙금이 있어야 한다. 침전물이 보여야 한다. 부유물은 그야말로 영양가 없는 맹물에 불과하다. 우려내고 우려내고를 거듭한 다음, 마지막에 가서야 비로소 가라앉는 침전물. 하얗디하얗거나 붉디붉거나 하는 결정체. 바로 그것이 수필작품에서 말하는 주제이겠거니!

끝으로, 당부하노니, 제발 거듭거듭 우려내고 그 연후에 붓을 잡기를. 그렇잖으면 아예 내가 막걸리통을 흔들어대듯 철저히 교반하여 소주제(小主題)로 만들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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