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작

사발이여, 사발이여

윤근택 2017. 7. 16. 07:45

사발(沙鉢)이여, 사발이여

윤근택(수필가/문장치료사/수필평론가)

 

나는 격일제로 약사발을(?) 이마빡에 잘도 갖다붙이곤 한다. 농막에서, 쉴참에 농주(農酒)인 막걸리를 밥 삼아 잘도 들이키는 걸 이렇게 말한다.

참말로, 그것은 사발이었다. 우리와 너무도 친숙한 그릇. 하기야 나는 아주 옛날 옛적 멋모르던 시절에 두 번째 수필집이라며 <이슬아지>란 책을 펴낸 적 있다. 거기 실린 글들 가운데에는 사발가란 글도 있었던 거 같다. 이 글은 꼭히 그 글의 리바이벌곡도 아니다. 나는 어떤 내용을 그 글에 담았는지도 정확히 모르니까. 사실 그밖에도 내가 적은 수필작품의 내용이나 제목도 다 기억해내지 못한다. 30여년 글을 써오면서 1000여 편씩이나 싸질러냈으니 ... .

각설(却說)하고. 내가 오늘 그 약사발로 인하여 또다시 떠올리는 사발-’의 낱말들은 주로 이런 것들이다. 사발묻이, 사발머리, 사발통문(沙鉢通門),사발농사(沙鉢農事),사발지석(沙鉢誌石) . 그 낱말들 풀이 정도나 하고 말 일이다.

사발묻이.

우리 형제들은 어릴 적에 마을 앞 냇가로 자주 나가곤 하였다. 냇가로 가기에 앞서 여러 준비물을 챙겨야 했다.집 찬장에 놓인 사발을 거의 모조리 꺼냈다. 구더기 꾸물대는 묵은 된장과 등겨도 퍼서 담았다. 해진 아버지의 옥양목 바지도 챙겼다. 드디어 냇가에 당도한 우리 형제들. 우리는 저마다 사발에다 된장과 등겨를 버무려 일정량씩 넣었다. 그러고는 옥양목 천을 씌웠다. 그 옥양목천 중앙이자 사발의 중앙인 곳에다 어림잡아 엄지손가락 굵기의 구멍을 뚫고... 물바닥에 사발을 묻었다. 그러면 작업 완료. 그렇게 해서 온갖 물고기를, 그야말로 일방타진한 게 바로 사발묻이’.

  사발머리.

  일명 바가지 머리라고도 하는 사발머리. 머리에 사발을 덮고, 그 사발 밖으로 삐쳐나온 머리카락만 쑹쑹 자른 머리를 일컫는다. 그 유명했던 1990년 작 MBC 드라마 행복한 여자에 나왔던 호식이(문용민 분)가 언제고 그 머리를 하고 있었다. 해서, 그때부터 사발머리는 호식이 머리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다.

사발통문.

내가 작가이기는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모든 글을 나의 문장으로 다 채우지는 않는다. ‘다음네이버박사를 가까이 두었으며, 나보다 훨씬 똑똑한데 뭣 하려고...

   이번엔 다음박사가 전한다.

   일반인에게 알리는 호소문이나 격문을 쓰고 나서, 주모자가 드러나지 않게 사발 모양으로 둥글게 돌려가며 적은 통문.’

   대개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글을 통문이라고 하는데, 조선시대 고종 때 널리 쓰였고 특히 동학농민군들이 썼던 통문이 유명하다. 196812월 전라북도 정읍군 고부면 송준섭의 집 마루 밑에서 족보와 함께 사발통문이 발견되었다. 이 통문은 1893(고종 30) 11월 전봉준을 비롯한 동학의 우두머리 20여 명이 함께 둥그렇게 서명한 것으로, 고부성의 점령, 조병갑의 처형, 무기고의 점령, 탐관오리의 처단 등이 적혀 있다. 임오군란 뒤, 조정에서는 사발통문을 돌리면 역모로 보아 처벌했다.’

   내가 위와 같이 베껴다 붙이자, 아래와 같은 경고를 하고 있다. 아무튼, 양해를 구한다. 아니, 경고를 하거나 말거나다.

   ‘[Daum백과] 사발통문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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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발농사.

  이는 스님들이 행하는 탁발(托鉢)과 깊은 관련이 있다. 아니, 탁발의 다른 말로 여겨도 된다.

   탁발은, 걸식으로 번역하며 지발·봉발이라고도 했다. 중국에서는 송나라 때부터 탁발로 통했다. 탁발은 인도에서 일반화되어 있던 수행자의 풍습이 불교에 도입된 것인데, 중국·한국의 불교에서, 특히 선종에서는 수행의 일환으로도 간주된다. 본래의 취지는 수행자의 간소한 생활을 표방하는 동시에 아집과 아만을 버리게 하며, 속인에게는 보시하는 공덕을 쌓게 하는 데 있다.‘

 [Daum백과] 탁발 다음백과, Daum에서 따옴.

   요컨대, 농사는 한 이랑도 짓지 않고서, 남이 농사지어 만든 밥을 사발 하나만 달랑 들고 돌아니며 얻어먹는 걸 사발농사라 한다. 요즘도 그러한 뜻을 지닌 말을 종종 쓴다. “숟가락 하나만 더 놓으면 될 일.”이란 말이 그것이다.

   사발지석.

지석(誌石)은 지석이되, 사발로 된 지석을 일컫는다. 참 지석은, ‘죽은 사람의 이름, 생몰(生歿) 연월일, 행적, 무덤의 좌향(坐向) 등을 적어 무덤 앞에 묻는 돌을 일컫는다. 사발을 돌 대신에 어떻게 지석으로 썼겠냐고? 고인이 살아생전 받아먹던 사발 안에다 이번에는 밥 대신, 술 대신 먹글씨를 적었다는 거 아닌가. 그리하고서는 지워질세라 밀랍으로 코팅하여, 천 년 만 년 지워지지 않게 만들어 고인의 무덤 앞에 묻었단다.

   다시 내 이야기는 격일제로 약사발을 이마빡에 붙여대는 나한테로 돌아온다.

   올해 회갑을 맞았으니, 이제는 나도 말할 수 있다. 인생, 그거 별 거 아니더라. 사발로 시작해서 사발로 끝나는 거 아닌가. 사발묻이를 하다가, 사발머리를 하다가, 더러는 사발농사로 약사발을 들이키다가, 때로는 탄식하며 사발통문을 맘속으로나마 적어대다가, 끝내는 사발지석 하나 남기고 가는 것. 그 안에 몇 줄의 기록만 먹글씨로 남기고 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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