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음악 이야기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14)

윤근택 2014. 4. 15. 08:54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14)

 

-브람스의 눈물-

 

                                      윤요셉(수필가/수필평론가)  

 

    이제 내 나이 쉰 여덟. 문득,이 깊은 밤내가 여태 왜 이토록 무지(無知)하게만, 무식(無識)하게만 살아왔을까?’하고서 탄식한다. 마침 오늘이 설날이고, 별로 아는 것도 없는데, 이룩해 둔 것도 없는데, 나이만 한 살 덜렁 더 먹어버렸기에 하는 탄식이다. 대체, 어떠한 일이 나한테 있었기에 하는 말이냐고? 이미 나를 아는 독자님들께서는,명색이 작가라는 이가 이날까지 끝까지 읽은 책은 달랑 한 권,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이며, 그것도 성인(成人)이 된 이후에나 읽었음을 알고 지내신다. 내 입으로 이미 여러 차례 까발렸기에 이 점 너무도 잘 아실 것이다. 이 사실도 무척 안타까운 일이지만, 위대한 예술가들의 숨은 이야기조차도 제대로 모르고 지내왔다는 게 더욱 한심하다.

    그믐날인 어제 오후, 아내는 나를 달래었다.

당신만이라도 고향 다녀오세요.어울려 즐겁게 지냄으로써 생활 리듬 되찾으세요.”

그러면서,아내는 함께 가지 못하는 가정사정을 대신에 손위 형제들에게 전해드리라고 간곡히 부탁하며 선물꾸러미를 승용차에 실어주었다. 나는 홀로 승용차를 몰아 그렇게 고향으로 가고 있었다. 평소와는 달리, 성모님께 묵주기도를 바쳐야 함에도, ‘F.M.’을 내내 듣고 있었다. 때마침 클래식이 흘러나왔다. 현악이 참으로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귀에 익은 듯도 한 그 음악. 그 음악이 끝나자, 진행자가 소개해주었다.

 여러분께서 조금 전 들으신 음악은 브람스의 현악 6중주곡 1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제2악장을 무척 좋아해 왔지요. 피아노곡으로 들어도 언제나 좋은 곡이더라구요.”

   나는 그 곡명을 잊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썼다.

   지금은 다시금 나의 산골 외딴 농막. 노트북 컴퓨터 앞에서 자세를 가다듬는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하여 이 댁 저 댁에서 차례(茶禮)를 모시고, 음복주를 마시고, ‘종계취(宗系聚)’를 마치고, 고스톱을 치고, 술을 마시고, 술을 깨우려 잠시 눈을 붙이고벌떡 일어나 나서겠다고 하였다. 다들 하룻밤 더 지내고 가라고 한사코 말려댔다. 하지만, 나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내 농막보다 편한 곳은 이 세상 그 어느 곳에도 없으니. 자정 무렵 농막에 홀로이 도착하였더니, 강아지 녀석들은 그렇게 반가이 맞아줄 수가 없었다.

어쨌든, 지금 나는 앉은뱅이책상맡에 앉아있다. 친절하기 그지없는 다음(DAUM)’은 어느 네티즌이 올려둔 브람스의 현악6중주곡 1번 제2악장을 통해 음악을 들려준다.  다시 들어도 아름다운 선율이다. 슬픔이 잔잔히 배어나는 스트링(string). 그 음악을 듣는 한편, 관련되는 정보사항을 차례차례 검색해 나가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을 또다시 찔끔 흘리고 만다.

브람스한테도 그렇듯 슬프디 슬픈 사연이 있었다니! 그러면 그렇지, 아무나 예술가가 되며, ‘나 모두 예술품이 되는 것은 아니지!’

 후세사람들은 그 곡의 제2악장에다 브람스의 눈물이란 부제(副題)를 붙여두었음을 오늘에야 알게 되었다. 이 또한 얼마나 무식한 소치(所致)냐고?

 살펴본즉,내용은 이러하다.

 1833년 독일에서 태어난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 그는 한낱 이름없는 음악인에 불과했다. 슈만과 그의 아내 클라라는 20세의 브람스를 바이올리니스트 요하임의 소개로 알게 된다. 자기네 집에 2년 여 묵게 도 한다. 한편, 슈만 내외는 그의 빼어난 음악적 재능을 발견하고 이리저리 다리를 놓아준다. 그리하여 브람스는 슈만을 한평생 스승으로 모시게 된다.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이자 미모와 재능을 겸비한 슈만의 아내 클라라. 사실 그녀의 그때 사진은 내가 봐도 반할 만하다. 그녀는 연주회를 통해 브람스의 피아노곡을 연주함으로써 그를 세상에 알리게 된다. 클라라는 브람스보다 14살 연상. 브람스는 스승의 아내 클라라한테 연정(戀情)을 품는다. 그리하여 26세가 되던 해부터 그 이듬해까지 클라라를 사모하는 정을 담은 현악6중주곡을 적게 되고, 2악장을 피아노 3중주곡으로도 편곡하게 된다. 그리고는 그녀가 34돌 생일을 맞는 날 그 곡을 헌정하게 된다. 한편,브람스는 양다리를(?)를 걸친다. 31세가 되던 해 아가테 지볼트라는 아가씨를 사모하여 약혼까지 하게 된다. 그러나 자유를 위해 단념하는 대신, 그녀를 위해 현악 6중주곡 2번을 적게 된다. 그 곡을 후세사람들은 아가테 협주곡이라고 부르게 된다. 요컨대,현악6중주곡 제1번은 클라라를 위해, 2번은 아가테를 위해 적은 곡이다. 고백컨대,수필작가인 나도 이러한 경우가 허다했다. 크게 드러내 말은 아니 했으나,그 많은 수필작품들 가운데는 특정여성이 모델이 된 경우가 많았다. 그것이 지금에 와서 이런저런 휴유증(?)을 많이도 낳았지만… . 어쨌거나, 브람스는 가슴 속에 두 여인을 품고, 실연(失戀)의 상처와 이룰 수 없는 사랑으로 번민하면서 위 두 협주곡을 적은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한 브람스한테 뜻하지 않은 사건이 발생한다. 그의 스승 슈만이,  4개월 여 러시아 연주여행에서 돌아와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 정신병을 앓게 되면서부터다. 슈만은 라인강에 투신자살을 기도하고, 그런 일이 있은  2년 후 죽게 된다. 그때 슈만의 나이는 고작 46세에 불과했다. 슈만은 유가족으로 아내와 자녀 일곱을 두었다. 브람스는 스승의 은혜에 기워 갚고자물심양면으로 애쓴다. 마음 같아서는 스승의 아내 클라라를 아내로 왜 삼고 싶지 않았겠냐만, 둘레의 이목 등을 의식해서인 그리 못했다.

 브람스는 64세에 세상을 뜨기까지 한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20세부터 인연을 맺었던 슈만 내외한테 지근거리(至近距離)에서 무려 44년 동안 음으로 양으로 힘이 되어주었던 사람. 그는 가슴 속에다 한결같이 품고 지낸 스승의 아내 클라라가 77세의 할머니가 되어 죽자, 다음과 같이 탄식하게 된다.

나의 삶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체험이요, 가장 위대한 자산이요, 가장 고귀했던 의미를 상실했다.”

 브람스는 가슴 속으로 그토록 사모한 스승의 아내 클라라가 죽자,그 이듬해 1897년에 세상을 떴다. 그가 이승에서 누린 나이는 64세였다.

 브람스. 그를 두고 어느 음악평론가는 이렇게 요약한다.

 자유롭게, 그러나 고독하게(Frei aber Einsam).’

   또 다시 이 농막 안에는브람스의 눈물, 현악6중주곡 1번 제2악장이 흐르고 있다. 내 살아온 58년을, 이 설날 한밤 중에 돌이켜보자니,내가 참으로 한심스럽게 여겨진다. 브람스처럼 위대한 예술가한테는 명함도 감히 내밀지 못하는 사람이면서도, 예술가입네 하며 특권 아닌 특권을 누리며 온 가족한테 근심걱정거리나 되어 왔던 나. 그리하여 ㅇㅇㅇ 애비,불쌍해서 못 보겠다. 저렇게 삐쩍 말라가지고서….”라는 말로 내 선잠까지 깨워 그렇듯 귀가를 서두르도록 했으니… . 참말로,내 가족들한테 마음의 상처만 깊게 하였을 따름이다. 그런데 비해,‘브람스의 눈물’, 이 곡은 내가 그 동안 즐겨 들어왔던 슈베르트의 현악4중주곡 죽음과 소녀만큼이나 애잔한 곡임을 알겠다. 진실로, 어느 위대한 작곡가의 예술혼이 묻어나는 곡이다. 그 음악뿐만이 아니라 그분의 고귀한 생애까지  존경해 마지 않는다.

 

 

작가의 말)

  작가한테는 설날이라고 하여 예외일 수는 없다. 무슨 이야기이든 쓰지 않으면, 나는 거의 죽은 목숨이다.

 이 글의 본디 제목은 브람스의 눈물이었으나, 최근 적고 있는 연재물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  편입하고  부제로 바꾸었음을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