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16)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16)
- 민요,민요풍 곡-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다들 너무도 잘 아는 이야기를, 시쳇말로 ‘당연한 걸 태연하게’ 들려주어야겠다. 동일한 곡임에도 부르는 이에 따라, 연주하는 이에 따라, 연주악기에 따라 듣는 이의 감흥은 사뭇 달라진다. 마치 똑 같은 산나물임에도 조물조물 무치는 손길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지듯이. 이쯤 해두고, 이번에는 민요와 민요풍의 곡들에 관해 몇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1. 아리랑
작가 미상인 우리의 구전 민요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의 소절을 미루어 짐작컨대, 여성이 남성을 향해 애절한 사랑을 노래한 민요임에 틀림없다.이 민요가 전세계인들한테, 명곡으로 심금을 울려주게 된 계기가 있었다는 사실. 바로 ‘폴 모리아(Paul Mauriat, 프랑스, 1925~2006)의 공로다. 그는 악단을 이끌고 아시아 연주 여행을 오게 되었다. 그는 1975년 내한하여 우리의 아리랑을 듣고 매료된다. 그는 귀국 후 1976년 아리랑을 편곡하여 ‘Eastern love song’이란 곡명으로 발표하게 된다. 그 연주곡은 전 유럽을 강타하게 되었다. 특히,한국전에 참가했던 장병들의 심금을 울려주기에 충분했다. 뒤늦게 한국 음악계에서 그 제목을 정정토록 요청하게 되었고, 당해 레코드사 등에서 당초 곡명을 ‘Arirang’으로 바꾸게 되었다는 일화도 있다. 폴 모리아의 모리아의 ‘Arirang’을 듣고 있노라면, 색다른 감흥을 불러 일으킨다. 아무튼, 그의 공로는 대단하다. 우리의 민요를 세계명곡 반열에 오르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세계만방에 알리기까지 하였으니… . 참고적으로, 그는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도’도 편곡하여 연주하였다. 그는 작고하였다. 그가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문화훈장을 받았다는 기사를 읽어본 적이 없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정부 관계자들이 앞장서서 그를 기려야 할 줄로 안다. 그것이 양식 있는 이들의 태도다.
2. 엘 콘도 파사(El condor pasa)
이 곡에 관해서는 본인의 또 다른 작품, ‘쿠스코’의 일부를 아래와 같이자기표절(?)하여 소개하겠다.
잉카의 원주민들 사이에 구전되어 오던 곡이다. 1,897년 그룹 ‘로스 잉카스(Los Incas)’가 117세 잉카 노인한테서 이 곡을 채록하고 레코딩하게 된다. 그 때부터 잉카음악의 한 장르로 월드뮤직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이다. ‘엘 코도르 파사’를 한번 들어보자.
‘콘도르야 콘도르야 나를 안데스로 데려다주렴/안데스의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는 콘도르야/나를 안데스로 데려다주렴 콘도르야/내 고향으로 돌아가 내 잉카 형제들과/그곳에서 살고 싶단다/그게 지금 내가 제일 원하는 거란다/콘도르야 콘도르야/형제들아 날 쿠스코의 중앙광장에서 기다려 주렴/그래서 우리가 다시 만날 때/마추픽추도 와이나픽추도 같이 오르게. //’
‘호세 가브리엘 콘도르 칸티’는 스스로 ‘투팍 아마루 2세’라고 칭한다. 1,533년 에스파냐 정복자 피사로한테 나라를 잃자, 그는 반군을 이끌고 끝까지 저항하게 된다. 반군은 71년간 저항했다고 한다. 아직도 잉카인들은 영웅이 죽으면 콘도르가 부활한다고 믿고 있다. ‘엘 콘도르 파사’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순국용사 투팍 아마루 2세의 전설이다. 잉카음악이 대체로 그러하지만, 구슬프고 애절하고 우울하고 ... 통한이 묻어난다.
이 곡은 여러 버전으로 우리들 심금을 그때그때마다 새롭게 울려준다.
3. 검은 눈동자( Dark eyes)
러시아의 대표적 민요의 하나다. 위 두 민요와 달리, 작자가 분명히 존재하는 민요다. 만들어진 과정을 살펴보면, 꽤나 흥미롭다. ‘에프게니 파블로비치 그료빈카’라는 우크라이나 사람이, 약혼녀를 위해 적은 가사다. ‘러시아 문학신문’에다 발표한 적도 있다. ‘프로리안 헤르만’이란 작곡가는 그 시(詩)를 읽게 되었고, 그도 역시 자신의 신부를 위해 그 노랫말에다 곡을 붙이고 발표하게 된다. 그때가 1884년 3월 7일이다. ‘검은 눈동자’는, 집시여인의 매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아래의 노랫말 대로 매력에 취한 한 남성의 고뇌와 격정이 담겨 있다.
‘ 검은 눈동자여, 불타는 눈동자여/ 뜨거운 눈동자여, 그리고 아름다운 눈동자여!/ 얼마나 그 눈을 내가 사랑하는지,얼마나 두려워 하는지!/ 분명히 좋은 때에 만난 것은 아니었네!/ 차라리 그대를 몰랐더라면, 이토록 아파하지 않을 것을/ 내 삶을 온전히 살 수 있으련만, 그저 평탄하게/ 그대는 나를 파멸시켜버렸네,검은 눈동자여/ 나의 행복을 영원히 앗아가 버렸네//’
이 노래가 결정적으로 세계적인 명곡이 된 데는 또 다른 이의 공로가 있다. 마치 ‘아리랑’이 ‘폴 모리아’ 덕분에, ‘엘 콘도 파사’가 ‘로스 잉카스’ 덕분에 그리 되었듯. 그가 바로 ‘이바노비치 샬리아핀(Feodor Ivanovich Chaliapin,러시아, 1873~1938)’이다. 그는 러시아의 유명 성악가인데, 혁명 후 서방에 망명하여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그 ‘검은 눈동자’를 마구불러댔다. 그러자 선풍적인 반응이 나타났다. 이후 1987년 이탈리아 영화, ‘검은 눈동자’에 삽입됨으로써 날개를 달게 되었다.
4. 푸른 옷소매의 환상곡 (Green sleeves fantasia)
본디는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의 통속 민요였다. 늘 푸른 옷소매를 지닌 옷을 입고 지내는, 바람기 많은 여인에 대한 노래다. 셰익스피어 오페라에 등장하는 어떤 매력 있는 여인의 닉네임이었다는 말도 있다. 그녀는 수 많은 남정네들한테 신비스럽고 매력 있는 여성으로 일컬어졌다. 한 남정네가 그녀에게 폭 빠져 헤어나지 못해 애타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그러했던 민요가 임자를 제대로 만나게 된다. 그 임자가 바로 영국 대표 국민주의 작곡가 ‘ 본 윌리엄스(Vaughan Williams,영국,1872~1958)’다. 그는 진화론 창시자 다윈의 외증손자로, 대기 만성형 작곡가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민요에 관심을 두어 이런 저런 곡을 채록해나가다가 그 민요를 재발견하게 된다. 그리고는 편곡을 하게 된다. 노랫말을 한번 보자.
‘아아아 내 사랑/그대는 그렇게도 야속하게/나를 버리고 가버리다니/그렇게 오랫동안 그대를 사랑하고/ 그대와의 사귐을 기쁘게 여겼던 나를/그린스리브는 나의 즐거움/그린 슬리브는 나의 기쁨/그린 스리브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 그건 다른 그 누구도 아닌 내 사랑 그린 스리브(반복)//’
이 곡 역시 여러 버전으로 연주되고, 노래되고 있으며 명곡 반열에 올라 있다. 이 곡도 우리의 아리랑과 달리, 남정네가 여성을 향해 사랑을 노래하였다.
5. 스페인 눈동자( Spanish eyes) 이 곡은 엄밀히 말해 민요가 아닌, 민요풍의 노래인데, 제대로 임자만 만나면 민요의 격을 갖게 될성싶은 노래다. ‘알 마르티노(Al Martino,미국,1927~2009)’라는 가수 겸 배우가 1967년에 부른 노래다. 노랫말을 살펴보자.‘푸른 스페인풍의 눈동자/ 당신의 스페인풍 두 눈동자에서/ 눈물 방울이 떨어지네요/ 제발,제발 울지 말아요/ 그저 안녕이란 인사일 뿐/ 영원한 이별 인사는 아니에요/ 곧 당신의 마음이 소유할 수 있는/모든 사랑을 가지고/난 돌아오겠어요/ 제발 “그래요.”하고 말해 주세요/ 당신과 당신의 스페인풍 두 눈동자가 날 기다리고 있겠다고 말해주세요.(간주곡) 푸른 스페인풍의 두 눈동자/ 온 멕시코에서 가장 어여쁜 두 눈(반복)//’
스페인풍의 눈동자라면 집시의 눈동자를 이르며, 그 노랫말에 ‘멕스코’라는 어휘가 들어있는 걸로 보아 그 무대가 멕시코인 셈이다. 그러니 멕시코의 어느 유명한 작곡가가 이 곡을 재편곡하여 자기네 민요로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번 해본다. 물론, 이 곡도 남정네가 여성에게 사랑을 노래한 게 특징이다. 이 노래는 많은 가수들이 즐겨 부른 바 있다. 나는‘엘비스 프레슬리’ 버전을 좋아한다.
자, 이제 이야기 정리를 해보아야겠다. 위 사례에서 보여주듯, 민요나 민요풍의 노래는 동서고금,남녀노소,동방서방 막론하고 다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왜 그럴까? 바로 인류의 ‘보편적인 정서’가 거기 녹아 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남녀간의 사랑 이야기는 언제고 모든 예술의 기본임도 알게 되었다. 수필작가인 나도 사실은 이성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으로 말미암아 글을 끊임없이 적어 왔다는 걸 고백 아니 할 수가 없다. 왜 나한텐들 특별한 눈[目]이 없었겠는가? 나는 갈색 눈을 잊지 못한다. 그녀의 홍채는 갈색이었다. 오래오래 남몰래 그 눈동자를 나만의 것으로 간직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를, 자기가 임자라고 우기는(?) 이한테서 영원히 빼앗거나 양보받을 수가 없었다. 그러했던 그녀를, 그 누구도 아닌 하느님께서 너무도 사랑하신 나머지 일찌감치 두 남자에게서 빼앗아 데려가 버렸다. 그녀는 나한테, ‘여울에서’란 수필과 ‘조팝꽃’이란 수필도 쓰게 했던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 ‘조팝꽃’은 민요의 노랫말도 전혀 될 수 없으리라 여기니 가슴이 시릴 따름이다.
(다음 호 계속)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한국디지털도서관>윤근택>작품/논문>미발표작)’으로 차차 찾아가시어 읽으실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