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작

줄(1)- 회갑무렵

윤근택 2017. 8. 20. 12:13

 

 

                                      (1)

                          -회갑 무렵-

 

 

윤근택(수필가)

(yoongt57@hanmail.net)

 

 

참말로 그것은 줄이었어요. 끄나풀이었어요. 어떤 노인은 돋보기안경을 끼고 흔들의자에 앉아, 지난날을 회상하고 있어요. 쓸쓸하기만 한 전설을요.

 

회갑 무렵

 

노인이 회갑 무렵이었을 적에 때늦게 사랑이 찾아들었어요. 상대는 얼굴도 한 번 본 적 없는 70대 여인이었어요. 30여 년 수필가로 지내며 창작활동에 혼을 불사지르던 노인. 어느날 그 노인한테 e메일이 한 통 들어 왔어요. 저기 춘향의 고장에 살며 7학년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할머니였어요. 기왕에 이 세상에 왔으니, 회고록 내지 유언이라도 적어 책으로 엮어, 후손들한테 남기고 가고프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어요. 그 노인을 글 스승으로 삼겠다는 간곡한 부탁과 함께요.

그 노인은 재치롭고 용기있는 그 할머니의 자세에 감동하였어요. 그래서 노인은 자신이 갈고 닦은 글 솜씨를 맘껏 발휘하였어요. 밤마다 돋보기를 끼고, 컴퓨터 앞에 앉아 날이 새는 줄도 몰라 했어요. 그 할머니가 e메일로 보내오는 습작수필을 읽고 고치고 다듬어 되부쳐주곤 했어요. 그러는 동안 둘은 서로 행복해 했어요. 아울러, 둘은 전설 같은 사신(私信)도 주거니받거니 했어요. 참말로, 그것은 먼 뒷날 적게 될 전설이었어요. 그 노인한테 그 할머니는 화답(和答)을 너무 멋지게 하곤 했어요. 본디 빼어난 예술가적 기질이 많았던 노인. 그 노인은 그렇게 주고받은 둘만의 사신마저도 수필작품으로 녹여 써버리곤 했어요. 뿐더러, 그렇게 적은 글들을 인터넷매체에도 서슴잖고 올리곤 했어요. 나아가, 글 제자인 그 할머니의 글에도 완죤빠져들어 현실세계인지 가상세계인지 몰라 하며 사랑고백도 서슴지 않았어요.

그러기를 39일째 되던 날, 노인은 그 할머니로부터 작별의 e메일 한 통을 받고 말았어요. 곁을 떠나겠으니, 조용히 놓아달라는 내용이었어요.

노인은 무척 슬퍼했어요. 그날 그때까지 살아오면서 노인은 얼마나 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경험했겠어요? 특히나 노인은 남달리 바람기도 많은 예술가였으니까요. 그러함에도 헤어짐은 새로운 아픔이었어요.

할머니는 노인과 줄다리기를 하다가, 팽팽하게 잡고 있던 그 줄을 에라 모르겠다하며 예기치 않았던 일순간에 놓아버린 거였어요.

엉덩방아를 찧고 만 노인은, 멍해져 제법 오래도록 괴로워했어요.

참말로, 그것은 줄이었어요. ‘인연의 줄이었어요.

노인은 참말로 바보였어요. 학창시절 그리도 잘 익혔던 뉴턴의 작용 반작용의 법칙 (作用反作用-法則)’을 잊어버리고 행한 일들이니까요.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던 말, ‘밀당(밀고 당기고)’의 지혜도 없었으니까요. 노인은 참말로 바보였어요. 그걸 잊어버렸으니까요. 노인은 젊은 날 민물낚시와 바다낚시를 그렇게도 잘 했으면서도요. 그때는 대어(大魚)일수록 낚싯대를, 아니 낚싯줄을 조심조심 다루어야 된다는 걸 너무도 잘 실천했으면서도요. 아니면, 헤밍웨이의 바다와 노인에 나오는 노인처럼 했어야 했어요. 소설 속 그 노인은 무려 사흘씩이나 낚싯줄인 동아줄을 잡고 있느라 손과 팔에 쥐가 다 났다지 않아요?

노인은 여태 흔들의자에 앉아 있어요. 노인은 돋보기안경을 벗고, 손수건으로 눈가의 물기를 닦고 있어요. 그리고는 다시 자신이 예전에 적었던 수필작품전설(2)’의 한 단락을 한숨지으며 읽어요.

< ‘시내에 나섰다가 우체통이 보이기에, 막걸리를 우체통에 넣었어요.’는 아름답고도 문학적인 표현이었어요. 그 술로 인해 님으로부터 버림받았으니, 이 무슨 아이러니에요?

먼 훗날, 꽤나 시간이 흐르면, 님과 저는 그 짧았던 시간의 만남을, 또 어느 삶의 모롱이에서 이웃들한테, 겨우내 양지쪽에서, 합죽이가 되어서, 한숨쉬며 이야기할 것 같네요. 그게 바로 전설이에요. 그래서 이 수필가는 미리 무척 슬퍼하는 거에요.

무슨 소리? 그때 어느 70대 할머니가 60대였던 나를, 얼굴도 모르는 나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슬퍼서 도망쳤다구!”

아니지요. 그때 70대였던 할머니가 이웃들한테 한숨지으며 얘기했죠.

, 모르는 소리 하지말게나. 어느 개구쟁이 60대 수필가 나부랭이가 당시 70대였던 이 할망구한테 사랑한다느니 뽀뽀하고 싶다느니 하면서 연애편지를 자꾸 적어 오길래, ‘,뜨거!’ 하며 절교를 선언했다구! 다들 알기나 해? 그때만 해도 나는 꽤 잘나갔다고!”>

노인은 여태 흔들의자에 쓸쓸히 앉아 있어요. 내내 그 팽팽했던 인연의 줄을 생각하고 있어요.

 

 

작가의 말)

이 글은 곧 (2)’로 이어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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