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작

줄(2) -중년기

윤근택 2017. 8. 20. 15:46

 

 

                                

                                          (2)

                                             -중년기-

 

 

                                                                                     윤근택(수필가)

                                                                          (yoongt57@hanmail.net)

 

 

참말로, 그것은 줄이었어요. 끄나풀이었어요. 어떤 노인은 돋보기안경을 끼고 흔들의자에 앉아, 지난날을 회상하고 있어요. 쓸쓸하기만 한 전설을요.

 

중년기

 

대략 일생을 이렇게 구획한다는 거 아녜요. 초년은 0~29, 청년은 20대 전후, 중년은 30~49, 장년은 50~69, 말년은 70세 이상.

 

노인은 중년기에도 숫제 바람돌이였어요. 가족을 떠나 이곳, 저곳 오지(奧地)로 자원(自願)해서 전근을 가곤 하였어요. 핑계가 제법 되었어요.

이번엔 승진하여 경북 영양으로 발령났기에... .”

사실 도망다닌 거였어요. 그 도망은 번거로운 도시생활로부터 도망이기도 하였지만, 보다는 어느 여류 수필가와 밀애(密愛) 끝에 입고 입힌 상처를 다스릴 길 없어 집을 떠난 거였어요. 맨 처음은 상실의 아픔을 달랠 길 없어, 연인과 팽팽하게 맞잡고 당기거니 밀거니 하던 끄나풀을 잔인하리만치 놓아버리고 그렇게 떠났어요. 그 첫 번째 오지에서, 누가 버려놓은 농가(農家)에서 솥걸고 군불지피며 정확히 2년을 견뎠어요. ,여름,가을,겨울,,여름,가을,겨울. 그렇게 맞은 여덟 계절과 24개월. 계절의 순환은 화투장48장에 그려진 그림 그대로였어요.

그 노인은, 그때 자신의 생활모습이 화투장에 투영되었어요. 실제로, 화투장 48장에 나타난, 유일한 인물우산 쓴 영감 은 실존인물이었다는 거 아녜요. 일본의 선사(禪師)였는데, 그는 득도에 실패하자, 하산하는 길이었어요. 우산을 쓰고 개울가에 이르자, 개구리가 폴짝폴짝 뛰어오르고 있었어요. 그 개구리는 풀잎에 맺힌 이슬을 따먹기 위해 거듭거듭 뛰어올랐어요. 선사가 그제야 깨달음을 얻었어요.

저 미물(微物)도 저처럼 실패에 굴하지 않거든,하물며 인간이 내가... .’

그 선사는 도로 산으로 올라갔고, 온갖 꽃과 새들의 유혹에도 굴하지 않고 드디어 득도를 했대요.

후일, 이 글에서 소개하는 어떤 노인은 그 이야기를 묶어 화투 시리즈를 적었고, 화투가 든 수필집 <이슬아지>를 펴낸 적도 있었어요.

노인은 당시 그 선사와 달리, 득도를 하지 못하고, 그 질긴 인연의 줄도 완전히 놓지 못한 채 또다시 길을 떠났어요. 물편 영덕으로 가게 되었고, 거기서 또 다른 여성과 인연의 줄을 잡고 그야말로 불꽃 튀기는 사랑에 빠지고 말았어요.

고통을 감내코자 또 다시 고통을 택하고만, 어리석기 그지없는 중년의 남정네였어요. 참말로, 멀리 두고온 가족들은 안전에도 없었어요. 그 남정네의 양 눈에는 허공에 나부끼던 거미줄이, ‘유화(柳花) 솜실이 들어가 앞을 온통 흐렸던 거였어요.

, 안타까웠던 일이여! 가족은 물론이려니와 당사자 등 많은 이들한테 남겼던 상처여!’

지금 그 노인은 돋보기안경을 끼고 흔들의자에 앉아, 지난날을 회상하고 있어요. 쓸쓸하기만 한 전설이여요. 노인은 돋보기안경을 벗고, 손수건으로 눈가에 맺힌 물기를 훔쳐내고 있어요.

하지만, 하지만 ... 구질구질했든, 천했든, 육욕적(肉慾的)이었든 사랑은 사랑이었어요. 작은 상처를 달래기 위해 또 다른 상처를 만들어낸 인연의 줄이었어요.

노인은 빛바랜 자신의 두 번째 수필집 <이슬아지>를 다시 펼쳐보고 있어요. 미친 사람처럼, 신들린 사람처럼 하룻밤 사이에 한 편 두 편씩 마구 적어대어 고작 석 달 만에 써서 만든 책이어요. 중첩된 실연의 아픔 감내키 어려워 그렇듯 글을 적었다네요.

잠시 노인은 지긋이 눈을 감고 생각해요.

그 누군가를, 그 무엇을 지독스레 사랑하지 않고서는 한 줄의 글도 제대로 쓸 수는 없어. 그건 진실이야! 그런 점에서 요즘 젊은 것들이 적은 수필은 수필도 아니야! 한낱 감정의 부유물(浮遊物) 혹은 뜨물에 지나지 않은 것들을 글이라고 적어대니 말이야!’

노인은 후진 수필가들과 수필작가지망생들한테 강권하네요.

프란츠 리스트가 지은 사랑의 꿈노랫말처럼 목숨 붙어 있는 한 사랑하라. 설령, 불행이 따르더라도 더 늙기 전에 사랑하라.’

문득, 노인은 젊은 날 그리도 소주 안주로 즐기던 마른 오징어를 잘근잘근 씹었으면 싶어 한다. 하지만 하지만, 어금니마저 다 빠져 달아났으니... .

노인은 가을햇살 아래 여태 흔들의자에 몸을 의지한 채 그 질기기만 하였던 인연의 줄생각에 잠겨 있다.

 

 

작가의 말)

이 글은 곧 (3)’으로 이어질 겁니다.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 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한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 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