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6) -영유아기
줄(6)
-영·유아기-
윤근택(수필가)
참말로, 그것은 줄이었어요. 끄나풀이었어요. 어떤 노인은 돋보기안경을 끼고 흔들의자에 앉아, 지난날을 회상하고 있어요. 쓸쓸하기만 한 전설을요.
유아기
꼬맹이는 겨울이면 양지들 벌판에 연날기를 하러 잘도 나가곤 했어요. 가오리연이었어요. 연실을 이렇게 저렇게 하여 꼬드기면, 연은 하늘 높이높이 솟아올라가곤 했어요.
꼬맹이는 그렇게 연을 날리는 동안,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연애편지를 쓰게 되어요. 연실에다 가랑잎을 끼운 거였어요. 분명 꼬맹이는 그걸 편지라고 했어요. 멀리멀리 전봇줄 같은 그 연실을 타고 그 편지가 가오리연한테까지 전해지길 바라곤 했어요. 아니, 미지(未知)의 ‘땡벌산’ 너머까지 자기의 편지가 닿기를 바라곤 했어요. 참말로, 해돋는 땡벌산 그 너머를 동경(憧憬)하곤 했어요. 그곳에는 동해바다가 있다고 했어요.
베틀에 앉은 꼬맹이의 엄마는 늘 타일렀어요.
“근택아, 니가 가오리연을 날리다가 놓쳐버리믄, 저-기 땡벌산 너머에 가서, 동해바다에 닿으면 가오리가 된대이. 그러면 그 가오리가 니 잡아먹으러 온대이.”
하루는 바람이 드셌어요. 꼬맹이는 그만 연실을 놓쳐버렸어요. 달렸어요. 힘껏 달렸어요. 잡힐 듯 잡힐 듯 가오리연은 멀리멀리 달아났어요. 땡벌산까지 날아가고 말았어요.
입술이 파랗게 질려 꼬맹이는 집으로 달려왔어요. 정말 앙앙 울며 집으로 달려 왔어요. 꼬맹이의 엄마는 베틀에서 내려앉아 꼬맹이를 꼭 안아 주었어요.
“그래, 이 에미 품에 꼭꼭 숨거라. 그러면 가오리가 니 잡아먹으러 못 온대이.”
남의 속 타는 줄도 모르고 꼬맹이의 엄마는 행복한 웃음을 지었어요. 엄마만 곁에 있으면, 큰 가오리라도 차마 잡아먹지 못하리라는 약간의 위로가 되었지만요.
노인의 어머니는 본디 이야기꾼이었어요. 당신의 아들딸들한테 그리함으로써 꿈을 심어주었어요.
흔들의자에 앉은 노인은 또다시 근심하게 되어요.
‘내가, 그때 그처럼 가오리연을 날리지 않았던들, 그 연실을 부여잡고 가오리연을 희롱하지 않았던들, 편지를 그렇게 부치지만 않았던들, 후일 천형(天刑)과도 같은, 글짓기를 하는 글쟁이가 아니 되었을 수도 있는데... .’
참말로, 줄이었어요. 연줄이었어요. 연(鳶)이었어요. 연(緣)이었어요. 연(戀)이었어요.
영아기
노인은 지금으로부터 70여 년 전인 1957년에 태어났어요. 가난한 농부 내외의 열 남매 가운데 아홉 번째로, 머슴애로는 네 번째로 태어났어요. 음력 사월 스무사흘이 노인의 생일이여요.
산모는 온몸에 솜털이 송송 돋은 아가가 그렇게 불쌍할 수가 없었다고 해요. 사실은 본인이 제대로 먹지 못해서 그리 된 것이거늘.
아가는 마구 앙앙 울어댔대요.
이 할아버지는, 노쇠한 이 할아버지는, 흔들의자에 몸을 의지한 지금에 이르러서야 깨닫게 되었어요. 280여 일 동안 한 몸체가 되어 있다가 줄이 떨여졌기에 그리 슬피 울었다는 것을요. 정말로, 그건 줄이었어요. 탯줄이었어요. 노인의 어머니는 아가의 자른 탯줄 끄트머리를 명주실로 꼭 묶어주었을 테죠. 노인의 아버지는 싱글벙글하며 왼새끼를 꼬아 큼직큼직한 홍고추를 끼운 다음 고샅에다 자랑스레 줄을 걸었을 테지요. 금줄[禁줄]이었어요.
흔들의자에 앉은 노인은, 길게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생각에 잠겨요.
‘그래, 줄이었어. 내 모든 살아온 날이 줄이었어. 어머니로부터 떨어져 나와 독립된 개체가 될 때에도 줄이었어. 그 놓친 줄로 말미암아 앙앙 울어대더니, 그 놓친 줄과 비슷하게 생겨먹은 줄이라면, 사족을 못 쓰고 한 쪽 끄트머리를 잡으려고 했던가 봐. 그것은 질긴 인연의 끈이었어. 그 숱한 여성들한테서 탯줄과 같은, 모성애를 그리워했으며... 눈물 많은 예술가가 되었던 거였어. ’ 끝.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한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