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작

'미니멀리즘(minimalism) 수필’ - ‘관천저(貫穿底)’ 잎을 보다가

윤근택 2017. 8. 25. 07:52

                                     ‘관천저(貫穿底)’ 잎을 보다가

 

 

 

                                                                                 

 

                                                                                                  윤근택(수필가)

 

                                                                                    (yoongt57@hanmail.net                                                 

 

어떤 사람이나 사물이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품성, 즉 천성(天性)은 아니 바뀐다고 하였다. , ‘호박에 줄을 긋는다 하여 수박 아니 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지난날 대학시절에 전공필수과목으로 익힌 수목학(樹木學)’ 교재를, 30여 년도 훨씬 지난 지금에 이르러 다시 펼칠 일이 생겼다. 사실 수목학은 식별(識別)이 주축을 이룬 학문 분야다. 수목들 가운데 겉보기에는 서로 유사하나, 구별되는 점을 파고들어가는... . 식별의 기초에 해당하는 것들은 퍽이나 많았다. 잎의 끄트머리, 잎 차례[葉序], 잎의 가장자리, 잎의 표면 등등. 사실 밤을 꼬박 새워도 그 용어와 짝지워 어떤 나뭇잎이, 어떤 풀잎이 그 대표적인 사례인지 익히기 어렵다.

 

오늘 내 손에 들린 어느 덩굴식물의 잎. 이 잎은 마치 꽂이에 곶감을 꿴 듯한, ‘돔배기를 산적(筭炙, 算炙)한 듯한 꼴이다. 이는 잎바닥[葉底]에 의한 분류사항으로, 학술적으로는 관천저(貫穿底,통과형잎바닥,perpoliate,)’에 해당한다. 이밖에도 엽저에는,예저(銳底,예리한잎바닥,acute),순저(楯底,방패모양잎바닥 peltate),심장저(心臟底, 심장형잎바닥,cordate),평저(平底,편평한잎바닥 truncate), 이저(耳底,귀모양잎바닥,auriculate) 등이 더 있다.

 

, 이 정도면 내 이야기의 멍석은 다 깔아둔 셈이다. 배움에도 끝이 없어, 이처럼 되찾아보고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외우고 하면 살맛이 더해진다. 모르긴 하여도, 탐구하는 이한테는 치매도 쉬이 찾아들지 못하리. 모름지기, 작가는 호기심어린 눈으로 사물을 바라볼 때에만 신비스러움을 맛보게 된다. 그냥 하찮은 존재로 여겨 지나쳐버리면, 모두 허탕이겠지만... .

 

나는, 수필작가인 나는, ‘관천저꼴의 잎사귀 한 장을 온 가슴으로 들여다보며,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의 섭리를 또다시 생각하게 된다. 제 아무리 그 궤에서, 질서에서, 대물림에서 벗어나려 해도, 자신의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유전형질대로 조상들의 모습 그대로 살아갈 따름이라는 거. 이는 숙명이긴 하지만, 그 자체가 남들과 구별되는 아름다움이라는 거. 남들과 확연히 식별되는... . 다들 너무 자주 쓰는 말이라 신선도가 떨어지기는 하지만, ‘주어진 대로 살아가는 게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 하고서... .

 

참말로, 관천저 즉 통과형 잎바닥으로 태어난 이 잎은 영원히 그 모습 그대로 살아갈 것이며, 세세손손 대물림으로 관천저의 후손을 낳을 것이다.

 

이젠 이 글을 굳이 길게 끌고 갈 생각도 없다. 이미 지난밤에 몇 몇 애독자들께 예고해드린 바 있는데, 이런 유형의 글이야말로 미니멀리즘(minimalism)의 수필아닐까 싶다. 미니멀리즘이란, ‘(재료의) 최소화를 꾀한 작품을 일컬으며, 미술 분야에서는, ‘도널드 저드(Donald Judd)’ 등이 시도했다. 음악 분야에서는 필립 글래스(Philip Glass)’란 작곡가가 행한다. 나는 그의 작품 가운데 피아노 연습곡(에튀드) 9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 곡을 네덜란드로, 생후 2년 만에 입양된 한국 태생 하피스트, ‘라비니아 마이어(Lavinia Meijer )’의 하프연주로 듣기 시작했다.

 

요컨대, 그냥 온 가슴으로 느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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