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작

302통의 육필 연서를 보관하는 할머니

윤근택 2017. 8. 27. 05:18

 

      

              302통의 육필 연서를 보관하는 할머니

                                                                                                                    윤근택(수필가)

            (yoongt57@hanmail.net)                                                  

나는 애독자님들께 종종 내 젊은 날 연서를 많이 썼음을 고백한 적이 있다. 또한, 최근에는 시리즈의 수필을 6편씩이나 써서, 그 글들을 통해 참으로 많이 연서를 적었음을 고백하기도 하였다.

요컨대, 나는 어린 시절부터 연서를 적어왔고, 그 분량이 1톤 정도는 될 테고, 그 대상도 수십 명의 여성들이었다는 거. 그 덕분에 수필작가로서 30여 년째 행세하고 있다.

아울러, 나보다 젊은 수필가이거나 수필가 지망생이거나 하는 분들께 강권하다시피 하기도 한다.

수필은, 잘 쓰인 편짓글입니다. 나는 아직도 자신이 수필작품을 쓰고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아직도 못다 쓴 연애편지를, 변형된 연애편지를 쓰고 있다고 믿게 됩니다.”

그렇게 많이 적은 연애편지의 행방은?’ 하고서 누군가가 묻게 되면, 그저 아쉽고 안타까울 따름이다. 어떤 분은 결혼한 이후에도 내 육필 연서를 소중히 간직해오다가, 남편으로부터 의심을 받는 등으로 불살라버렸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그것도 본인 입으로가 아닌, 그녀의 친정 모친이며 내 장모님이 될 뻔했던 분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여성은 내 편지를 받는 족족 휴지통에 쑤셔 넣었다는 후문(後聞)을 전해 왔다. 그 여성은 탄식조로 말한 적이 있다.

니가 이렇게 훌륭한 수필작가가 될 줄 꿈엔들 알았겠니?”

그런데 그런데... 며칠 전 임의로운 자리에서 아내의 친구분들을 포함한 나의 지인들한테, 막걸리잔을 기울이며 고백하기에 이르렀다.

, ‘댓잎편지의 주인공인 당신은 나의 연애편지를 여태 간직하고 계시오?”

그랬더니, 아내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몇 몇 내용을 환기시켜 주었다. 아니 까발렸다. 부끄럽게시리. 물론 아내는, 와이셔츠통 등에 남몰래 나의 연서를 고이 간직하고 있노라고 넌지시 알려주었다. 다시 나한테 보여줄 수는 없으되, 그렇게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다시 좌중에 대고, 나보다 세 살씩이나 많은 지금 아내와 결정적으로 결혼하게 된 사연을 처음으로 털어놓게 되었다. 둘 사이에 위기와 갈등이 생길 무렵, 나이 서른 하나였던 아가씨는 색다른 편지를 한 통 부쳐 왔다. 어머니가 어디 취직시험 합격통지서인 줄 알고, 눈길에, 산속을 헤매며, 내가 은둔했을 법한 어느 농가에 찾아와서 전해준 그 편지.

야야, 얼른 뜯어보려므나. 무슨 반가운 기별이겠지 싶어서, 에미가 부러 뜯지 않고 들고 왔다.”

참말로, 맹랑했다. 그 숱한 글 다 두고 댓잎 한 장만 달랑 셀로판테이프로 백지에 붙인 편지. 나는 그 편지의 속뜻을 알아보고자 몇몇 날 머리를 쥐어짜냈다. 참말로, 온갖 상상을 다하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은 그녀와 같은 지붕 아래 살기로 마음을 굳히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쓴 수필, ‘댓잎편지는 중앙지 어느 일간신문의 신춘문예 당선후보작이었다. 사실 아내는 결혼한 지 33년째 접어들었으나, 여태 그 댓잎편지에 숨긴 뜻을 속 시원히 나한테 말한 적은 없다. 어쨌든, 아내한테 쓴 나의 연서는 무사하다니... .

이번에는 나의 그 많던 연서 가운데 특별히 간직된 편지에 관한 소개다. 오늘 낮 나는 몇몇 애독자님들께 e메일을 통해, 아래와 같은 내용을 보고드린(?) 바 있다.

 

보낸사람: "yoongt57" <yoongt57@hanmail.net>

받는사람:??

날짜: 2017826일 토요일, 203403+0900

제목: 302통의 육필 연서를 보관중인 할머니(재전송)

<2)

 

마침 그분한테서 다음과 같은 내용의 e메일이 들어왔네요.

 

<이건 보통 일이 아니에요. 난 이 속에서 많은 이야기를 엿보았고, 그 이야기들을 구슬삼아 꿰어서 세상 둘도 없는 좋은 작품을 빚어야 하니까요.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 연도별로 분류하는 일만 해도 지치네요~~>

 

그런데 안타까워요. 그분은 그 젊은 날 제가 줄기차게 충고하고, 권유하고, 달래고 했건만, 문학소녀였던 분이 제 뜻을 따르지 않았거든요. 훌륭한 여류수필가가 두 번, 세 번 되고도 남았을 터인데... .

 

1)

 

--------- 원본 메일 ---------

 

보낸사람: "yoongt57" <yoongt57@hanmail.net>

받는사람:??

날짜: 2017826일 토요일, 193201+0900

제목: 기쁜 것인지, 슬픈 것인지

모르겠어요. 참말로, 오래간만에, 그것도 아내한테 그분의 전화번호를 알아서 전화를 드려 보았어요.

대뜸 말씀하시데요.

윤 작가, 나한테 302통의 윤 작가 젊은 날 편지가 있어요. 육필로 쓴 편지들 말이에요. 요즘은 이 편지들을 연도별로 분류하고 있어요. 이것들을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에요. 여기 우리 젊은 날 이야기가 다 들어 있는데... . 나야 답장을 일 년에 한 차례 정도밖에, 그것도 연하장으로 부쳤을 따름이지만... .”

 

저보다 다섯 살 많은 여인. 그분도 따지고 보면 제 은인이지요. 하지만, 제 아내가 그분을 진작에 언니로 삼고 말았어요. 둘이서 더 친하더군요. 세월이, 청춘이 우리들 곁으로 그렇게 흘러가버렸다는... .

정작 그분은 그 편짓글들을, 돋보기안경을 끼고 틈틈이 읽고 있대요.

사실 저는 복 받은 남자인데... . >

 

글쎄, 그 많은 편지를, 최종적으로 쓴 게 지금으로부터 20여 년은 족히 될 그 편지를 고스란히 나한테 돌려줄는지는 알 길 없다. 소유권으로 따지면야, 당연히 그분의 것이니... .

대신, 그분께서 그 글들을 읽으면서 본인의 젊은 날을 추억하고, 다소 늦어졌기는 했으되, 당시 내 요청대로 수필쓰기를 시작한다면, 그것으로 일단 만족해 할 것이다. 고스란히 되돌려 받지는 못할지라도, 몽땅 복사를 한 후, 그 복사본을 가감없이 책으로 묶는 방법도 있을 터이고... .

사실 우리 수필계의 괴짜인 내가 또다시 색다른 묘안을 아니 찾을 턱이 없다. 예전에, 아주 예전에, 철없던 젊은 시절에, 나는 첫 수필집 <독도로 가는 길>을 재판으로 내면서, 초판의 책을 원고로 삼아 온갖 육필 교정부호가 든 채로, 시쳇말로 '돼지꼬리 땡땡'인 채로 재판을 찍은 바 있었으니까. 그것만 하여도 우리네 출판사(出版史)에 전무후무한 일이었을 테니... . 이번엔들 그 육필 연서를 색달리 책으로 묶지 말라는 법이 있냐고?

나는 또다시 광고를 내어야 할 판이다.

수필작가 윤근택의 육필 연서 가지신 분, 되돌려 주시면 후사하겠음.’

그러나 안타깝게도 위 ‘302통의 할머니외에는 쉬이 나타나지 않을 듯하다. 대신, e메일 주고받기를 한 분들 가운데는 더러 나의 글을 간직한 분들이 있을 수도.

끝으로, 소중한 자료를 소중하게 간직한 ‘302통의 할머니한테 감사드리며 글 줄이려 한다. 이 말과 함께.

어느 예술가와 그가 빚은 예술작품을 도덕적 잣대로 재어서는 아니 되어요. 가치로운 걸 가치롭게 여기는 그 눈 너무 존경스러워요. 사랑스러워요. 제 은인이신 것은 두말할 나위 없고요.”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