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미술 이야기

농부 수필가가 쓰는 미술 이야기(5)

윤근택 2014. 4. 15. 09:03

농부 수필가가 쓰는 미술 이야기(5)                     

 

- 미국식 당간지주(幢竿支柱)를 세운 작가-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우리말에 목소리 큰 놈이 장땡이다.하는 말이 있다. 미리 말하건대, 그는 미국식 당간지주를 세워(?) 놓고서 큰 소리를 뻥뻥 쳤다. 내가 이 연재물을 적는 동안, 한 차례 이미 언급했지만, 미국이란 나라는 거의 급조된 나라이며 문화적으로도 미개한 나라이다. 다만, 달러 화폐로 세계만방에 큰소리를 뻥뻥 치는 나라이다. 미술평론가라고 하는 족속들도 마치 짜고 치는 고스톱을 즐기는 듯하다. 그러니 미술작품에 관한 올바른 비평도 오히려 미술평론을 전공하지 않은 이의 몫으로 돌려주어야 할는지도 모르겠다. 이 무슨 해괴한 논리냐고? 어떤 비평가가 어느 작가의 그림 따위를 크게 추켜주면, 다른 이들은 그 길로 그런가 여기며 맹종하고 맹신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미술분야와 동떨어진 이가 색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되면, 의외로 답을 명쾌히 얻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서론이 제법 장황하였다. 우선 당간지주부터 소개함이 옳을 듯하다. 불화(佛畵)를 그린 기() , ()을 내걸기 위해 사찰 앞에 세웠던 긴 장대를 일컫는다. , 사찰이라는 신성한 영역을 표시하기 위해서 세우기도 하였다. 목제·· 금동제·철제 등으로 되어 있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당간지주는 거의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부석사 당간지주(보물 제255), 숙수사지당간지주(보물 제59), 금산사당간지주(보물 제28) 등이 잇다. 그리고 제작년도까지 정확히 기록된 것으로는 872(선덕여왕 10)이라고 명기된 증초사지당간지주가 있다. 이미 위에서 이야기하였지만, 종교적이고 신비스런  유물임에 틀림없다. 선사시대의 솟대종교적이고 신비스런 유물이다.

인도에도 우리의 당간지주에 해당하는 세계문화유산이 하나 있다. 바로 꾸뜹 미나르(Qutub Minar). 뉴델리 남쪽 교외 15킬로미터 떨어진 평야에 높이 72.5미터로 서 있는 철제탑이다. 수천 년 역사에도 불구하고 녹슬지 않은 이유가, 순도 99% 이상의 철제를 주물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세간에 알려져 있다. 노예왕조 술탄인 굽타우딘 아이바그가 힌두교도에 대항하여 승리한 기념으로 세운 것인데, 놀랍게도 힌두교의 양식을 띤 기부(基部)에다 이슬람 양식의 탑으로 융합해서 세웠다지 않은가. 물론 이 승전탑도 종교적이고 신비스런 유물인 셈이다.

 , 위 두 단락의 내용만으로도 미국식 당간지주를 그린 작가의 코를 납작하게 하는 근거가 된다고 보는데 . 그가 바로 바넷 뉴먼(Barnet Newman,미국, 1905~1970)이다. 그는 추상주의와 표현주의를 버무린 이로 알려져 있다. 어떤 이들은 그를 색면추상화가로 부르기도 한다. 그는 커다란 캔버스에다 모노크롬 회화,즉 단색(單色)으로 그린 그림을 선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단색의 띠를 맨 위 끝에서 맨 아래 끝까지 세로로 숫제 확 찢어버린 듯 그려댄 게 특징이다. 그는 스스로 그러한 화법(畵法)지퍼(zips)라고 명명하였다. 그리 해 놓고서 종교적 분위기이며 신비주의적이다.고 자평을 하고 타평을 얻어내었다. 위 두 단락의 내용과 견주어 보면, 한마디로 웃기는 짬뽕 아니냐고? 그의 대표작 가운데는 <<인간, 영웅적이고 숭고한>>도 있는데, 그 높이가 8피트나 된다. 하기야 그것조차도 우리네 당간지주나 인도의 꾸뜹 미나르에 비하면 새 발의 피이지만.  그가 어느 역사학자와 인터뷰를 한 기사를 읽어보면 더욱 웃긴다.

  나의 작품을 진정으로 이해한다면, 그것은 바로 국가 자본주의와 전체주의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임에 틀림없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조차 헷갈린다.

  , 1943년 그는 내가 앞으로 소개할 마크 로스코(안개 꼴로 화선지를 물들이는 기법을 구사했음.)와 함께 공동성명을 발표한 적도 있는데, 그 말도 가관이다.

  우리에게 미술은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모험이다. 그것은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는 자들에 의해서만 탐험할 수 있다.

  의욕과 자신만만은 좋은데, 글쎄?

  사실 동양권에는 벌써 자기가 태어나기 수 세기 전에 이미 종교적이며 신비적인 당간지주와 꾸뜹 미나르가 서 있었다는 걸 몰랐다는 말일까?

아니면, 알면서도 애써 모른 척하며 마치 독창적인 시도라고 우겼더란 말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그의 말에만 현혹되어 미술평론가들이란 자들이 헬레레 그를 위해 좋은 글만 써 주었더란 말인가? 내가 미술 밖의 사람인 까닭에 무식하면 용감해서 이런 글도 함부로 적는지는 모르겠으나, 함께 고민해보아야 할 사항인 듯하다.

  그는 조작가이기도 하여 <<부러진 오벨리스크>>라는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조각작품도 만든 바 있으며,이웃 나라 일본에도 그의 조각품이 있는 것으로도 알고 지낸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언을 빌자면, 예술은 모방에서 비롯된다지만,이미 존재하였던 걸 그대로 모방한다는 것은 영 개운찮은 느낌을 준다. 내가 몇 해 전 부득이한 사정으로 남의 학점을 따주기 위해 어느 대학의 현대미술이해 과목을 한 학기 동안 인터넷으로 수강하면서 곧잘 느꼈던 점이다. 소위 전문가라는 평론가들의 말에 휘둘려 오히려 작품을 주관적인 관점으로 감상할 수 없었다는 점. 이번 글을 통해서는 그 점을 되짚어보았다. New man인지 Old man인지 그 분한테는 다소 미안하지만 . 사족을 또 하나 붙여야겠다. 사실 나는 그 동안 독자님들께 이런 유형의 글도 창작후기 등을 통해 종종 적은 바 있다.

나의 글은 이러저러한 내용이었고, 이런저런 동기로 인해 적었으니 그리 아시고 읽어주세요.

크게 반성할 일이다.

 

 

l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한국디지털도서관>윤근택> 작품/논문>미발표작)으로 찬찬히 따라가시면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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