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작

양치를 하다가

윤근택 2017. 9. 5. 23:13

 

 

 

                                      양치를 하다가

 

 

 

 

                                                                                                  윤근택(수필가)

 

 

 

내가 천일야화(千一夜話)의 주인공인 세헤레자데왕비도 아니면서, 이야기꺼리 즉 글감을 못 챙기는 날은 아주 쩔쩔맨다. 나의 신실한 애독자들께서는 분명 페르시아 폭군(暴君), ‘샤리아르가 아니거늘... . 어쨌든, 글감을 못 챙기는 날은 어쩌다 담배를 떨어뜨린 날처럼 금단현상이 일어난다.

 

바로 오늘 새벽에 그런 금단현상을 또 겪게 되었다. 해서, 칫솔에 듬뿍 치약을 묻힌 후 막 양치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칫솔 그 촘촘하고 부드러운 숱에서 영감(靈感), 모티브를 낚아챘으니...

 

그래, 낱낱의 터럭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 그것들이 모여 일군(一群)을 이뤘을 때에만 비로소 무엇을 창출해 내어.’

 

 

 

전기주임의 생각

 

 

 

본디 나는 공업계 고등학교 전기과 지망생이었다. 그러나 실력이 달려 명문 공업고등학교에 진학을 못한 채 인문계 고등학교 문과(文科)를 졸업했다. 대학 진학 때에는 국어국문학을 전공하여 학자가 되는 게 꿈이었으나, 수학 과목을 지지리도 못해서, 심지어 인수분해도 제대로 못해서 농과대학 임학과를 졸업하게 되었다. 사실 당시는 예비고사와 대학 본고사에 수학과목이 필수였으며 배점 비율도 높았던 관계로. , 지난 직장은 그 동안 익힌 학문과는 동떨어진 통신회사였고, 사무직으로 사반세기 지냈다. , 기초가 부실했던 내가 30여 년째 수필가 행세를 하고 있다. 뭣인지는 모르겠으나, 아귀가 맞아떨어지지 않는 듯한 나의 삶. 어디 그뿐인가. 지금은 격일제로, 시쳇말로 전기를 개뿔도 모르면서어느 아파트 전기실에서 전기주임으로까지 지내고 있다.

 

업무가 업무인지라, 전선(電線)을 자주 만지게 되는데, 그 전선들의 피복을 벗기면, 외가닥인 예보다는 여러 가닥인 예가 더 많다. 오늘 아침 그 많은 숱의 칫솔로 양치했던 일에 비추어 보면, 그 다양한 가닥수를 지닌 전선이 여간 신기하지 않다.

 

전선은, 그 유명한 오옴(Ohm)의 법칙’ ‘I(A)= V/R(Ω)’를 감안해서 만든 것으로, 그 굵기에도 정격(定格)이라는 게 있는 법. , 전류는 전압과는 비례하나 저항과는 반비례하기에, 전선은 굵을수록 좋다. 그러나 경제적인 측면과 다루기 용이한 측면을 사전설계 아니 할 수가 없다. 오늘 나는 특히 후자에 관심을 더 두게 된다. 흔히 심선(心線)이라고 하는 그 가는[] 가닥으로 일군을 이룬 전선을 우리는 주로 사용하게 된다는 것을. 좀 더 물리학적 접근을 하자면, ‘임피던스(impedance)’리액턴스(reatance)’니 속이 꽉 찬 전선보다는 대롱같이 생겨먹은 전선이 전류가 더 잘 흐른다느니 따위를 모두 이해해야겠지만... . 어쨌거나, 외가닥으로 된 것보다는 여러 가닥으로 된 전선이 다루기 쉽고, 내가 지난날 토양학에서 익힌 토양입자의 공극율(孔隙率)’을 감안해보더라도, 그 전선의 굵기가 균질(均質)이면 부피(저항치)는 같을 것이기에 경제적이다. 그리고 각종 와이어로프(wire-rope)’에서 보았듯, 공중에 걸려 있을 때에도 동일한 굵기의 외가닥보다 오히려 더 질길 거라는 사실.

 

요컨대, 전기주임으로 지내는 나한테는 여러 가닥 심선이 든 전선이 아주 유용하다. 그렇게 다루기 쉬운 전선을 고안해낸 이들한테 다시 감사를 드린다.

 

 

 

어떤 노인의 생각

 

 

 

나는 분명코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에 다녔다. 그것도 오십여 년 전에. 그때 도덕책에는 어떤 노인의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었다.

 

노인은 병상(病床)에 누워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 산지사방(散之四方) 자녀들이 달려와 임종을 하고 있었다.

 

노인은 숨을 몰아쉬며 슬하의 자제들한테 일렀다.

 

각자 저기 화살대를 하나씩 가져 오거라.”

 

노인은 큰아들더러 그렇게 모아온 화살대 열 개를 한꺼번에 부러뜨려보라고 일렀다. 큰아들이 시도해봤으나 부러지지 않았다.

 

그러자 노인은, 자기가 가져온 화살대를 제가끔 하나씩 잡고 부러뜨려보라고 명했다. 다들 쉬이 부러뜨렸다.

 

바로 그런 이치다. 너희들은 형제끼리 우애있게 합심하면, 남들이 함부로 넘보지 못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

 

노인은 그렇게 유언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춘추전국시대 어느 철학자의 생각

 

 

 

한 겨울, 노자(老子)는 눈이 소복 쌓인 산길을 걷고 있었다. 나뭇가지를 올려다보았더니, 가지마다에도 눈이 쌓여 있었다. 그런데 노자는 아주 이상한 걸 발견하게 된다. 가는[] 가지에 쌓인 눈은, 가지가 부러질 듯 휘어짐으로써 그 눈을 털어내고 다시 원상(原狀)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비해 굵은 가지에 쌓인 눈은 털려나가기는커녕 그 가지를 와지근부러뜨리지 않았겠는가.

 

노자는 그 광경을 보고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으니, 그게 바로 유능제강(柔能制剛)’이다. 풀이하면, ‘부드러움이 강함을 능히 이긴다.’가 된다.

 

그러했던 노자가 병석(病席)에 누워 맞이하고 있었다. 제자가 문병차 찾아와서 노자의 병석 옆에 앉았다.

 

노자가 크게 입을 벌려 제자한테 물었다.

 

내 입 안이 어떠한고? ”

 

그러자 제자가 대답하였다.

 

스승님, 이빨은 다 빠져나가고 혀만 남았습니다.”

 

노자가 제자한테 다시 물었다.

 

왜 그러하다고 생각하는고?”

 

지혜로운 제자는 이내 답했다.

 

스승님, 혀는 부드러워 살아남았으며, 이빨은 강해서 빠져 달아난 것입니다.”

 

노자의 이 깨달음, 이 가르침은 후일 병법(兵法)으로까지 이어졌다는 거 아닌가.

 

 

 

삼략(三略)에는 노자의 사상을 본따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 군참(軍讖)에서 이르기를, “부드러움은 강함을 제어하고, 약함이 강함을 제어한다. 부드러움은 덕이고 강함은 적이다. 약함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강함은 사람들의 공격을 받는다(軍讖曰, 柔能制剛, 弱能制强. 柔者德也. 剛者賊也. 弱者人之所助. 强者人之所攻.).>

 

 

 

수필작가 윤근택의 생각

 

 

 

내가 믿는 예수님도 정식교육을 받으신 바 없다. 한 때 내가 믿었던 부처님도 따로이 정식 교육을 받으신 바 없다. 두 분은 공히 살아생전 당신이 직접 적은 글 한 편도 남기지 않으셨다. 진리는 언제고 손에 잡히는 거리에 존재하는 법. 특히, 예수님의 가르침은 명쾌하기만 하였다. 어렵게 말을 빙빙 돌려 하신 적도 없다는 것을. 다시 거슬러, 위 노자도 한 겨울 나뭇가지와 거기 쌓인 눈을 통해 진리를 깨쳤다는 것을.

 

여태껏 아침, 점심, 저녁 빠뜨리지 않고 칫솔을 거머잡고 양치를 해왔던 이 수필가. 왜 칫솔 속 그 많은 섬유요소인 숱의 부드러움을 깨닫지 못했던고. 낱낱 균질의 숱들이 모여 한 몸체를 이뤄 내 이빨, 그 강한 뼈를 마사지해주고 있었다는 것을. 앞으로는, 양치할 때만이라도 그 부드러움이 가져다주는 엄청난 힘을, 합력(合力)을 생각해야 할 것이며, 그 낱낱 칫솔 숱의 소중함도 깨달아야하겠거니.

 

 

 

 

 

* 오늘의 음악 (이 글을 적는 동안 도와준 음악) 듣기

 

Neil Sedaka - You Mean Everything To Me [듣기/가사/해석/독음] 2016.06.28

 

  님이야말로 '나의 모든 의미'인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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