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58)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58)
- 재클린의 눈물 (Les lames du Jacqueline)-
윤근택(수필가/문장치료사/수필평론가)
쟈크 오펜바흐(1819-1880)는 경쾌하고 풍자적인 프랑스의 희가곡의 한 유형인 오페레타를 적었으며, 그의 곡들은 현세기에 이르러서도 연주된다. 그는 독일 태생 프랑스 작곡가 겸 첼리스트이다. 그의 곡 가운데에서 ‘천국과 지옥’ 과 ‘호프만 이야기’ 중 ‘뱃노래’는 유명하다.
금세기에 들어, 독일 출신 첼리스트 ‘베르너 토마스(1951~)’는 오펜바흐의 미발표 첼로 곡 악보를 발굴하게 되는데, 그 작품에다 제목을 따로 붙이게 된다. 그 곡이 바로 ‘재클린의 눈물’이다. 참말로, 그 첼로곡은 들을수록 슬퍼지는 곡이다.
대체, ‘오펜바흐’와 ‘‘베르너 토마스’와 ‘재클린’의 관계는 어떠한지만 내 신실한 애독자들한테 소상히 밝히면 되겠다.
1945년, 영국 옥스포드에서 어떤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옥스포드대 교수였으며, 그 아이의 어머니는 당시 피아니스트 겸 저명한 교사였다. 어머니는 딸아이가 훌륭한 음악인이 되기를 바랐다. 그 아이는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 덕분이었을까, 5세가 되던 해 라디오를 통해 나오는 첼로 소리를 우연히 듣고, 장차 첼리스트가 되기를 다짐했으며, 이 스승 저 스승 찾아다니며 공부하는 한편 음악 학교에도 진학한다. 그러다가 16세가 되던 해에 런던에서 첼리스트로 정식 데뷔하게 된다. 그때 그녀가 연주한 곡은 ‘엘가’의 ‘첼로 소나타’였다. 그녀의 인기는 하늘을 치솟았다. 가는 곳곳마다 열광자들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20세기가 낳은 가장 위대한 여성 첼리스트’, ‘거장급의 소녀 천재’, ‘우아한 영국 장미’ 등. 그녀의 연주를 듣고 난 인도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 ‘주빈 메타’도 탄복했다.
“이 소녀는 5명의 남성이 연주하는 것 같은 소리를 낸다. 단 한 소절이라도 오케스트라가 그녀의 첼로 소리를 능가할 수가 없다. 나는 그녀의 연주를 처음 듣고 쓰러지는 줄 알았다.”
그녀가 바로 ‘재클린 뒤 프레(Jacqueline Du Pre, 1945~1987)’다.
그녀가 22살 때인 1967년, 당시 피아니스 겸 지휘자로서 상승가도를 달리던 유태계 ‘다니엘 바렌보임’이란 음악인과 열렬한 사랑에 빠지게 되어, 부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개종(改宗)까지 하며 결혼을 하게 된다. 당시 전쟁통에 있던 이스라엘에서 세기의 결혼식을 갖게 된다. 그때 그녀의 말은 퍽이나 인상적이다.
“음악보다도 인간적인 행복을 추구하고 싶다. 나는 악기의 노예가 되고 싶지 않다”
남편인 바렌보임과 시간을 소중히 생각했던 그녀. 부부는 세계 도처를 돌아다니며 연주를 하게 되었고, 남편의 명성은 아내 ‘재클린 뒤 프레’의 명연주로 하여 더욱 빛나게 된다. 부부는 ‘엘가’의 ‘첼로 협주곡’을 완벽하게 연주해내고 있었다. 그 곡은 엘가가 죽은 자기 아내를 그리워하면서 만든 곡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신의 노여움이었을까, 그녀한테 비극이 찾아든다. 재클린은 27세가 되던 1971년부터 병에 걸려 신음하기 시작했다. 병명은 다중경화증. 온 몸이 천천히 마비되어 제대로 걸을 수도 없고 몸을 스스로 제대로 가누지 못하게 되는 병으로 인해 섬세함을 생명으로 하는 연주자에겐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금세 회복 될 것이라 믿었던 그 병은 끝내 낫지 않았다. 그러자 아내 덕분에 음악인으로 성공해 나가던 남편은 그녀를 버리고 다른 여자한테로 가버렸다.
그녀는 1987년 42세의 나이로 세상을 뜨고 만다.
오펜바흐는 120년 이후에 올 어느 여성 첼리스트의 운명을 예견이라도 했던 걸까? 그처럼 슬픈 곡을 짓다니! 물론, 오펜바흐 자신은 그 곡에다 ‘재클린의 눈물’이라고 부제를 붙이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세기 후에 온 ‘베르너 토마스’가 그 곡이야말로 비운의 첼리스트인 ‘재클린 뒤 프레’의 고독과 허무와 배신 등이 너무도 잘 묻어난다 싶었던 모양이다. 해서, 그 곡명을 ‘재클린의 눈물’로 고쳐, 이미 고인인 된 ‘재클린’한테 헌정하게 되었다는 거 아닌가.
사실 수필작가인 나는, 이 글을 적으면서도 내내 두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로 인하여 더는 글 적기가 어렵다. 하오니, 내 사랑하는 독자님들께서 나머지를 채워서 읽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리며 글 접으려 한다.
하지만, 한 마디는 더 하고 끝내야겠다.
‘사랑과 예술, 때로는 슬프지만, 그것들이 있어 우리네인생은 행복하다. ’
재클린의 명복을 빌며... .
듣기) 맨 아래 화면 클릭하세요.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한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