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작

‘식자우환(識字憂患)’에 관해

윤근택 2017. 10. 7. 22:40

 

 

 

                     식자우환(識字憂患)’에 관해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나는 10개월 여 이곳 대구의 팔공산(八公山) 초입에 자리한 어느 아파트에서 전기주임으로 재취업해 근무하고 있다.

문득, 오늘은 지난날 내 어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떠오를 게 뭐람?

야들아, 느그들은 살아생전 외할매 뵌 적 없으니 잘 모르지만, 외할매는 부잣집 외동딸이었다더라. 독선생(獨先生)을 뫼시고 중국 고전을 익히는 등 학식과 교양이 대단했대이. 느그 외할매는 정감록(鄭鑑錄)’에 이렇게 적혀 있다고 말했대이. ‘팔공산 밑이 피난처라고 말이야. ”

그러면서 내 어머니는 외할머니가 나름대로 풀이한 팔공산의 의미도 전해 주었다. 그 독음(讀)은 같으나, 그것이 八孔山이며 지게를 일컫는다고. 지겟가지 양쪽 구멍을 다 합치면여덟 구멍 즉 八孔이 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 무슨 이야기냐고? 한국전쟁 때에 지식인들은 납북(拉北) 당하는 등 고난을 겪었으나, 무지렁이 지게꾼들은 비교적 무사할 수 있었다는 거. 이쯤 되면, 내 외조모님은 예지력이 빼어났던 분이라고 아니 할 수가 없다. 당신은 식자우환을 이처럼 달리 말한 듯하다.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도 오버랩되는 풀이다. 저 서양의 프란시스 베이컨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했지만, 우리한테는 아는 것이 병이다.’는 말이 있지 아니한가. ,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말도 있지 아니한가. 사실 모르는 게 약이다.’를 가장 잘 실천한 이는 원효대사다. 그분은 중국 유학길에서 해골바가지를 바가지인 줄 알고, 그 안에 고인 물을 맛있게 마셨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으니까.

이제 내 이야기는 식자우환의 유래를 탐구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당나라 시인 소동파(蘇東坡)’, 어느 시에선가인생이 고달파지는 것은 글자를 알 때부터라는 시구(詩句)를 남겼다고 한다. 정작 식자우환의 유래는 <삼국지>에 전한다.

제갈량이전에 유비의 책사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서서였다. 서서는 유비의 군사로 지내면서 여러 계략으로 조조를 물리치곤 했다. 그러자 조조의 책사인 정욱이 서서를 유비한테서 떼어놓을 계략을 세운다. 서서는 효심이 지극했다. 서서의 어머니 위부인은 학식이 높은 사람이었는데, 아들더러 그 누구도 아닌 유비를 섬기라고 진작부터 일렀던 터. 이러한 내용을 파악한 조조는 위부인의 서체를 위조하여 거짓편지를 써서 서서를 자신의 진영으로 오게 한다. 이때 서서는 자기 후임으로 제갈량을 유비한테 천거하고 떠나게 된다. 뒤늦게야 서서가 거짓 편지에 속아 조조의 진영으로 가게 된 걸 안 위부인. 그녀는 탄식하게 된다.

여자가 글씨를 아는 것이 걱정을 낳게 하는 원인이구나(女子識字憂患). ”

서서는 조조한테 가서 관직에 있었지만, 조조를 위해 계략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식자우환, 돌이켜본즉, 60여 년 살아오는 동안 내가 으로 겪은 우환 즉 근심이 영 없었던 게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정치판을 볼 적이면 울화통이 치밀곤 하였다. 거슬러, 조선시대의 그 많은 정쟁(政爭)과 암투를 사극(史劇)을 통해 가끔 보았는데, 기가 막히는 일들이 많았다. 그 악행(惡行)들이 반복되는 것도 같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이날까지 일제 앞잡이와 그들 후손들이 득세를 하고, 기득권을 좀체 내려놓지 않으려는 꼬락서니도 넌더리 날 지경이다. 그 그릇의 크기로 따져, 무지렁이 지게꾼보다도 못한 이들이 권력을 잡고, 국민(國民)궁민(窮民)’으로 여기며 함부로 다룬 꼴도 주욱 보아 왔다. 이른바 우민정치(愚民政治)를 일삼았던 그들. 오랜 악습의 뿌리는 쉬이 뽑히지도 않는 것 같다. 더욱이 한심한 것은, ‘헬레레 묻지마 투표를 해놓고서도 막상 얼마 지나지 않아, 자기들이 어리석게 뽑은 지도자한테, “저 놈 죽일 놈. 감방에 보내야 할 놈.”한다는 점이다. 흔히 말하는 수구꼴통 늙은이들이 그들이다.

사실 동서고금 식자우환을 겪은 이들이 많다. 절대진리를 주장하다가 당한 이들, 진실을 말하다가 당한 이들, 신념을 굽히지 않다가 당한 이들 등등. 이민족도 아닌, 동족(同族)으로부터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 종교재판을 받고 법정을 나서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말했다던 코페르니쿠스’, 빨갱이라고 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민주주의 신봉자 고 김대중 대통령 등이 그러한 위인들이다.

나는 때로는 탄식한다.‘다수결 원칙이라는 민주주의 기본정신마저 허망하게 느껴질 때 더욱 그러하다. 많은 이들이 설마... .”하였지만, 몽매(蒙昧)한 이들로부터, 여론조작으로 신성한 표를 훔친 예도 있기에 더욱 그렇다.

위에서 살펴본 대로, 내 외조모를 포함한 선인(先人)들은 종종식자우환이라고 탄식도 하고 자조(自嘲)도 했지만, 선지자(先知者) 내지 선각자(先覺者)가 존재했으므로 역사는 이만치라도 발전해 왔다는 것을. 그리고 안다고 너무 나부대는 것도 해롭지만, 알면서도 애써 진실을 외면해서는 아니 되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나아가서, ‘식자우환을 피하려면, 어리석은 척 해도 크게 어리석은 척을 하면 될 듯. , 짐짓 눈감아주면 되리라.

 

 

작가의 말)

 

무슨 말을 하고는 싶은데... . 모자라는 부분은 내 신실한 애독자 여러분들께서 채워서 읽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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