뉘 고르기
뉘 고르기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햇살이 따사로운 늦가을 하오. 객지친구이자 농사 협력자인 윗마을 ‘태형(太兄)’. 그 댁을 참말로 오래간만에 방문하였다. 팔순의 모친은 양지쪽 툇마루에 앉아, 여느 해 이맘때처럼 갓 수확한 메주콩을 갈무리하고 있다. 돋보기도 아니 끼고 메주콩에서 그 자잘한‘뉘’를 골라내는 게 여간 신통치 않다. 사실 모친은 해마다 콩 농사를 많지도 않은 50여 평 그렇게 고집하는데, 내가 느끼기에는, 품도 제대로 나오지 않을 성싶으니, 수고를 덜기 위해서라도 그만 두고서, 콩 전문 농가로부터 사는 게 더 싸게 칠 것 같건만... .
‘태형’도 내 말에 추임새를 넣는다.
“윤형, 그러게 말이야. 우리 할마씨(‘어머니’의 애칭임.)는 하여간 못 말려. 장댐이(장담이,장담그기) 메주를 쒀야 하고, 콩나물을 내어 먹어야 한다고 저렇게 야단이지 뭐야?”
팔순의 노파는 지칠 줄 모르고 뉘를 고른다. 타작마당에 튀어 달아났던 콩알도 낱낱이 뒤웅박에 주워 담는다. 대체로, 연로한 분들이 그렇게 알뜰살뜰하다.
문득, ‘콩사리’를 추억하게 될 줄이야! 우리는 모닥불을 피우고, 그 위에다 뿌리째 뽑은 콩대를 얼기설기 걸쳤다. 그렇게 ‘후지지는’ ‘콩 구이’를 ‘콩사리’라 불렀다. 아마 ‘-사리’는 ‘사르다’에서 온 사투린 듯. 하여간, 그렇게 구운 콩을 서로 경쟁하듯, 엄지와 검지를 새의 부리처럼 놀려, 아니 젓가락 집듯 하여 주워 먹곤 하였다. 그러면 입가와 손이 온통 숯댕이가 되곤 하였다. 곁에서 지켜보던 어른들은 언제고 그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말하곤 하였다.
“콩사리는 느그들처럼 손이 재발라야 하고, 밀사리는 우리처럼 손바닥이 크고 거칠어야 해. 그래야 쓱쓱 비벼먹기가 좋지.”
모친의 뉘 골라내기와 ‘알 줍기’를 바라보노라니, 이번에는 고향 냇가와 내 농장 뒷산 참나무류숲 아래가 겹쳐진다. 고향 냇가에는 일부러 쏟아부은 듯 다슬기가 많았다. 그 다슬기를 줍는 일은 크게 지루하지가 않았다. 낱낱이 콩사리콩을 줍듯 그렇게 주워 모았다. 생각밖에도, 다래끼에 수북수북 잘 불어나기도 했다. 한편 지지난 해 뒷산 도토리도 대단했다. 마치 누군가가 들어부은 듯 즐비했다. 우리 내외와 넷째누님 내외가 마치 내기를 하는 그것들을 주워 모았다. 한 나절 주우면 콤바인 마대자루에 가득할 정도였다. 사실 멧돼지와 다람쥐 등 야생돌물들의 겨우살이용이라, 다소 미안하기는 했지만... . 그때 우리는 양이 너무 많아 몇몇 날 그렇게 주워, 곡물상에 내다 팔기까지 하였다. 아내는 도토리를 주울 때마다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 또록또록한 알곡! 우리가 언제 비료를 줬나, 김매기를 했나? 밑천 한 푼 들이지 않았으니, 다른 농사보다 훨씬 낫네.”
그 당시 내 누님 내외는, 한 곳에서 알뜰히 줍던 우리 내외와 달랐다. 더 많고 더 이쁜 도토리를 찾아 온 산을 헤맸다. 고함소리가 쩌렁쩌렁 산메아리가 되곤 했다.
“동생, 이리 와 봐. ‘개략천지삐까리(많다는 뜻을 지닌 사투리임.)’다. ”
위에서 두서없이 흩여놓은 나의 이야기가 한낱 허튼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그렇게 타작마당에 튀어 달아난 콩알을 비롯해서 냇가 쏟아 부은 듯 많던 다슬기와 뒷산 갖다 부은 듯 않던 도토리에 이르기까지를 예화(例話)로 들어, 또 새로운 모의(謀議)를(?) 하는 중이다.
해마다 각 대학 입시에 최고득점자 등에게 기자가 인터뷰를 한다. 그러면 그들은 마치 입을 맞춘 듯, 교과서를 읽듯 하는 말이 있다.
“저는 학원이란 델 다녀본 적이 없어요. 교과목 중심으로, 학교에서, 수업 중에 열심히 공부했을 뿐이에요.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거 다들 알고 지낸다. 마찬가지다. 나한테 누군가가 묻는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 글짓기가 가장 쉽던 걸요. 내 둘레엔 글감이 ‘삐까리’던데요. 그저 주워담기만 하면 되더라고요. ”
정말 그럴까? 유년시절부터 글짓기를 생활화 했으며, 수필작가로 데뷔한 지 30여 년 되고, 끊임없이 문장수련을 해 왔다는 사실. 두 눈을 반짝이며 도토리를 줍는 멧돼지나 다람쥐가 아니고서야 어찌?
나는 이 글을 통해, 후배 수필작가와 수필작가 지망생들한테 감히 몇 가지 권하고자 하는 게 있다.
첫째, 세밀화(細密畵)를 굳이 그릴 필요는 없다. 훌륭한 화가는 가벼운 붓 터치만으로도 작품을 완성한다.
둘째, 뉘 고르기를 게을리 해서는 아니 된다. 문장 내에 비문적(非文的) 요소를 끝까지 찾아내되, 낟곡에서 뉘를 고르듯 하여야 한다. 그렇잖으면 마치 콩나물콩이 그러하듯, 온전한 낟곡도 오염되어 콩나물시루를 망치고 만다.
셋째, 글감을 찾아 온 산을 헤맬 필요는 없다. 이는 흉보는 것이지만, 내 넷째누님은 위에서도 살짝 그 성향을 보여주었듯, 욕심이 많다. 그러다보니까 도토리를 줍겠다며 그 높은 산에 허위허위 올랐다. 물론 더 태깔이 고운 도토리를 줍기는 하였지만, 등산가방에 지고 내려오는 데 생고생, 아니 개고생을 다 하였다. 반면, 내 아내는 늘 농막 가까이에서 알뜰히 한 알 한 도토리를 줍기를 고집했다. 그 태깔과 상관없이 곡물상에서는 무게로 값을 쳐주었다는 사실.
끝으로,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고,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격언을 늘 가슴에 담아두기를. 그런 의미로, 태형의 모친이 가을마당에 떨어진 콩알을 그렇게 줍던 걸 비웃을 수는 없다. 또, 내 고향 냇가에서 다슬기를 하나하나 주워 모으던 기억 새롭다. ‘어느 세월에... .’싶어도 생각밖에 금세 불어나더라는 거.
정녕 뉘를 알뜰히 골라낸, 또록또록한 낟곡만으로 된 수필 한 편 읽어보는 게 고소원(固所願)이다. 흔히, 자칭타칭 수필대가라고 하는 분들의 글에서도 나는 뉘가 숱하다는 걸 금세 깨닫곤 하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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