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복수극
어떤 복수극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오늘 인터넷 신문에 아래와 같은 이색(異色) 기사가 떴다. 게을러터진 나는 기사를 그대로 옮겨 싣겠다.
<자연의 복수?…새끼 잃은 코끼리떼, 인도네시아 마을 습격
세계적 멸종위기종인 수마트라 코끼리들이 사람들이 방치한 구덩이에 1살짜리 새끼가 빠진데 격분해 인도네시아의 한 시골 마을을 집단 습격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29일 자카르타포스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북수마트라 주 랑캇 리젠시(군·郡) 바탕 스랑안 지역의 한 마을은 지난 17일 갑작스레 코끼리 떼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수컷 두 마리와 암컷, 새끼 등 12마리로 구성된 코끼리 떼는 마을내 주택 20채 중 5채를 무너뜨리고 과수 18그루를 부러뜨리는 등 난동을 부렸습니다.
다행히 목숨을 잃거나 중상을 입은 주민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2004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구눙 르우제르 국립공원에 인접한 이 마을 주변에선 예전에도 종종 코끼리가 발견됐지만, 사람을 공격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북수마트라 천연자원보호국(BKSDA) 당국자는 “현장 조사 결과 코끼리들은 나무 그루터기를 제거하면서 생긴 것으로 보이는 구덩이에 1살짜리 새끼가 빠지자 사람들이 놓은 덫인 줄 알고 마을을 공격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습니다.
구덩이에 빠진 새끼 코끼리는 며칠째 빠져나오지 못하다가 22일 결국 폐사했습니다.
북수마트라 천연자원보호국과 구눙 르우제르 국립공원측은 지난 21일 새끼 코끼리의 위치를 확인했으나 주변을 지키는 어미 코끼리 때문에 구조작업을 벌일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코끼리 떼는 새끼 코끼리가 폐사한 뒤에도 한 동안 그 자리에 머물며 사람의 접근을 막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수마트라 코끼리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지정한 ‘심각한 위기종(Critically Endangered)’이다. 이는 ‘야생 절멸(Extinct in the Wild)’의 바로 앞 단계입니다.
2007년 2천400마리였던 수마트라 코끼리의 야생 개체수는 2014년에는 1천700마리까지 줄어들었습니다. 주된 원인으로는 상아를 노린 밀렵과 서식지 파괴, 농작물 훼손에 대한 보복으로 농민들이 뿌린 독극물 등이 지목됩니다.
[MBN 뉴스센터 / mbnreporter01@mbn.co.kr]>
굳이, 내가 기사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주민들이 고의로 생후 1년 되는 ‘수마트라 코끼리’를 죽인 것은 아니다. 다만, 구덩이에 실족한 그 아기 코끼리를 제반사정으로 구해주지 못했을 따름이다. 그러함에도 코끼리네는 그렇게 들고 일어나 난동 아닌 난동을 부리게 되었다. 이를테면, 총궐기한 것이다.
문득, 그 기사를 접하자, 내 ‘만돌이농원’의 애꿎은 개들이 떠오를 게 뭐람? 참말로 속을 썩이던 녀석들. 돌이켜본즉, 벌써 여러 해 전의 일이다. 작은딸애는 자기 친구 ‘세정이’가 결혼하게 되면서, 친정에서 반려견으로 키우던 발발이 한 쌍을 처분하지 못하자, 내 농장에 데려왔다. 내가 적적할세라, 그리 하면 좋겠다고 제의해 왔기에, 그 녀석들을 선뜻 받았다. 사실 작은딸애와 화해의 메신저가 될 듯도 하여서. 그랬던 것이 암컷이 바람이 나서 저수지 위쪽에 위치한 암자(庵子)의 덩치 큰 누렁이와 연애를 해서 새끼를 낳고 ... 또 그 새끼들은 자라 동기간(同氣間)에 연애를 해서 아가들을 낳고 ... 또 그 아랫대는 동기간에 연애를 해서 아가들을 낳는 등 숫제 내 농장은 개판이 되어 있었다. 무슨 눔의 개들이 대를 이어 주인한테 그렇게 잡히질 않던지. 목줄을 채울 수가 없었다. 아마도 유전적으로, 트라우마(trauma)가 녀석들한테 대물림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실 나는 녀석들의 3세(世) 조상을 뒤늦게 붙들어 목줄을 채우고자 온갖 무리한 방법을 다 썼던 적이 있다. 심지어 ‘동물 안정제’를 먹인 적도 있다. 일종의 수면제였다. 그러나 그것들은 필사적으로 달아났고, 먹이를 주면 내 가까이 다가왔으나,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도 먼 당신들’이었다. 그것들 내외는 자식들한테 대를 이어 일렀을지도 모를 일.
“저 할아버지, 사랑한고 하여 너무 가까이 하지는 말거라. 너희들한테 목줄을 채워 개장수한테 팔지도 모른다. 우리 내외는 똑똑히 봤다. 내 아버지 어머니가 개장수한테 끌려갔다. 그때 얼마나 슬펐는지 너희들은 모를 거다. 그러니... .”
그래서 녀석들의 족보를 다 따지기도 힘들 지경으로 수효가 늘어나, ‘들개’ 내지 ‘벌개’가 되었고, 지난봄을 기준으로 우리 속에 갖힌 네 마리 외에도 네 마리가 떼지어 우루루우루루 몰려다니곤 했는데... . 내 농막은 인가(人家)와 1.2km 떨어진 한갓진 곳에 위치한 터라, 그런대로 녀석들을 이쁘게 봐 줄 수는 있었다. 내 아이들이니까.
그러나 일철이 시작되자, 밭 이웃들의 민원이 빗발쳤다. 온갖 농작물을 해치니, 잡아 가두라고들 아우성쳤다. 한 걱정이었다. 끝내는 엽총을 가진 이를 수소문하기까지 했다. 녀석들이 못 먹을 약이라도 먹고 모조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번번이 하게 되었다. 사실 동물애호가들이 이 소식을 들으면, 동물학대니 뭐니 하며 발끈하겠지만, 여북 답답했으면 그런 생각까지 다 하게 되었을까.
지금은 꼬리를 살살 흔들어대며 달려오던 네 마리가 없다. 온데 쏘다니다가 내 승용차 소리만 들으면 마구 달려오던 녀석들. 몇 몇 날을 기다려도 한 녀석씩 차례차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건너편 ‘김씨 아저씨’한테서 전화가 왔다. 또 우리 개들에 관한 민원사항이겠거니 걱정스레 전화를 받았다.
“윤 과장(나의 택호임.), 자네 개가 물가에 죽어 있어. 알고나 계시게나. 아랫마을 사람들이 포도를 해치는 너구리를 잡으려고 포도밭에다 약을 놓았다는데, 아마... .”
한마디로, 시원섭섭한 소식이었다. 나는 어쩌자고 그런 악담을 했던고?
“형님, 형님도 밭에다 너구리약을 놓아주세요. 그것들 형님네 개밥을 다 빼앗아 먹는 등 늘행패를 부려댔다면서요?”
그렇게 해서 어디에 처박혀 죽었는지 장례조차 못 치러주고 네 마리의 개를 차례차례 잃고 말았다. 이제 더 이상 밭 이웃들로부터 민원전화를 받지 않아도 된다. <법구경(法句經)>에 이르지 않았던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들지 말고, 미워하는 사람도 만들려 하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은 보지 못해 고통스럽고, 미워하는 사람은 보는 것으로 괴롭다.’
그런가 하면, ‘樂而不流 哀而不悲 可謂正也(낙이불류 애이불비 가위정야/ 즐거우면서도 무절제하지 않고 슬프면서도 비통하지 않으니, 바르다고 할만하다).’라는 말도 있지 아니한가. 요컨대, 내 마음가짐은‘哀而不悲’여야 한다.
나는 그렇게 펄쩍펄쩍 뛰어다니던 흰 개들을 네 마리씩이나 시나브로 잃어버렸다. 공교롭게도,그 시기에 어느 여인도 내 곁을 홀연 떠나갔다.
가뜩이나 ‘애수(哀愁)의 계절’이라는 가을에,이 만추(晩秋)에 내 허허로움은 다시 도졌다. 이러한 때에 위 수마트라 코끼리들의 민가(民家) 습격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그 수마트라 코끼리들 참 잘했다. 속이 후련하다. 내 지금의 정서야말로, 심리학에서 말하는 ‘방어기제(防禦機制,defense mechanism)’ 가운데 투사(投射,projection)이겠거니.
* 이 글을 적는 내내 ‘거듭 틀기’로 들었던 음악은,
쿠스코CUSCO/Desert Island중에서 Alcatraz .....
살펴본즉, 'Alcatraz(앨카트래즈)'는 미국의 섬 이름이고,
한 때 교도소가 있었대요. 지금은 관광지로 유명하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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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한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