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작

'괄목상대(刮目相對)’에 관해

윤근택 2017. 11. 3. 07:31

 

 

                  '괄목상대(刮目相對)’에 관해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마태오 복음 제 22장 제 15~22절에 이렇게 적혀 있다.

그때에 바리사이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면 말로 예수님께 올가미를 씌울까 하고 의논하였다. 그러고는 저희 제자들을 헤로데 당원들과 함께 예수님께 보내어 이렇게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께서 진실하시고 하느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지 않으시는 줄 압니다. 과연 스승님은 사람을 그 신분에 따라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스승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악의를 아시고 말씀하셨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세금으로 내는 돈을 나에게 보여라.” 그들이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오자 예수님께서, “이 초상과 글자가 누구의 것이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황제의 것입니다.”하고 대답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경탄하면서 예수님을 두고 물러갔다.

그런가 하면, 마태오 복음 제 7장 제 6절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

어디 그뿐인가. 이솝의 우화(寓話) 가운데에는 여우와 신포도가 있다. 내용인즉, 이렇다. 허기진 여우가 마을로 내려와 탐스런 남의 집 포도를 따먹으려고 여러 차례 목을 빼어 시도를 해봤으나, 너무 높이 달려 있어 번번이 실패를 하게 된다. 그러자 주릴 대로 주린 여우는 쓸쓸히 산으로 돌아가며 혼잣말을 하게 된다.

저 포도는 아직 덜 익은 신포도야. 나한테는 어울리지가 않아.”

내가 왜 위와 같은 예화(例話)를 장황히 들었냐고? 최근 글 수준으로 보아 몇 몇 시골아이들수준에 지나지 않는, 문인(文人) 행세를 하는 이들이, 이 대한민국에서 둘째로 가라면 서러운 윤근택 수필가한테 자기들 신명나는 대로 글나부랭이를 적어댔기에 본때를(?) 보여 주고자 이 글을 적게 되었다.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냐고?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서는 익히 아시겠지만, 나는 인터넷 검색창에다 내 이름 윤근택혹은 윤근택 수필가를 쳐보는 게 취미이다. 그러면 또 어떤 블로거나 카페지기가 좋은 글이니 명수필이니 추천수필이니 하며 올려두는 일이 왕왕 있다. 그러면 나는 답례로, 그분들한테 간략하나마 안부의 댓글을 달곤 한다. 그러해 왔는데, 저기 미국의 로스앤젤리스라는 곳에 활동무대를 둔 어느 문학카페의 운영자라는 이가, 어찌 알았는지 나한테 e메일로 그 카페에 정식으로 초대하였다. 나는 아주 짧은 기간 집중적으로, 열정적으로 내 글을 실어주었다. 그러했는데 ... . 몇몇 인물이 맹랑한 댓글 따위를 올려두고 있었다. 그 내용들의 집약본(?)이라고 할 수 있는 글이 오늘 아침, 내가 인터넷 검색창에다윤근택 수필가라고 치자 나타나 있었다.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서도 아래를 클릭하여 그 내용을 음미해보시길.

윤근택님에 대한 저의 생각입니다.

나는 곧바로 그 카페에 올린 그 동안의 모든 글들을 내렸을 뿐만 아니라, 그 카페에서도 곧바로 탈퇴하였다. 물론 그들한테도 질릴 수준의 작품 편수였던 것은 인정한다. 개인 블로그나 개인 카페도 아닌 터에. 하더라도, 유감스런 점 영 없지가 않다. 우리네 속된 말에 그분들을 싸잡아 일컬을 수 있는 말이 더러 있다.

곡조를 모르면 튕기지를 말아라.’, ‘가만히 있으면 2등이라도 할 것을... .’, ‘가나다도 모르는 이가... .’ 등등. 실제로 그러했다. 언제 쓰던 고어(古語)인데, 아직도‘-습니다가 아닌 ‘-읍니다를 쓰는 이도 있었다. ‘ 이 글은 문학성이 현격히 떨어지니, 이 코너에 싣는 것이 부적합니다.’라고 단안적(單眼的) 판단을 용감하게(?) 적은 이도 있었다. 그리고 내가, “직접대화체의 문장이나 간접대화체의 문장은 가급적 독립단락으로 짓는 게 좋을 듯합니다.” 권고하자 발끈해 하며 임의 삭제 경고를 보내온 이도 있었다. 또 실제로, 그 카페 운영자 자격으로 그리 하기도 했다. 도대체, 그들은 끝이 없는 문학의 길을 제대로 걷겠다는 의지가 있는 것인지? 그들한테는 배움의 자세라는 거 눈 닦고 보아도 없었다. 그저 아마투어이즘에 머무르는 ... .

나는, 줄잡아 30여 년간 문장수련을 통해 수필작가 행세를 해온 나는, 괄목상대 즉 ‘(놀라서)두 눈을 비비며 상대할 수 있는 문장가(文章家)’를 만나는 게 고소원(固所願)인데, 아쉽게도... .

하더라도, 이따금씩이나마 나의 수필작품을 퍼가는 분들이 계시어 다행스럽게, 행복하게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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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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