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
풍선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종종 보게 되는 광경이다. 새로 개업하는 점포 앞에는 수많은 풍선으로 장식한 아치형 개선문(?)이 설치되고, 한겨울임에도 핫팬츠를 입은 젊은 무희(舞姬)들이 늘씬한 다리를 드러낸 채 현란한 춤을 춘다. 대개 점포 개업 인사는 그렇게들 하는 편이다. 오늘도 어느 점포 앞에서 그러한 풍선 아치를 보게 되었는데... . 문득, 우리가 곧잘 나누게 되는 블랙유머를 다시 떠올릴 줄이야!
“남아일언 중천금(男兒一言 重千金)이 아니라 남아일언 ‘풍선껌’이다.”
다시 생각해 보아도 패러디치고는 너무도 멋진 패러디 아닌가. 남자가 하는 어떤 고소한 말도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아니 된다는, 염량세태(炎凉世態)와 감탄고토(甘呑苦吐)를 싸잡아 비웃는 말인 듯하다. 그 발음면에서도 ‘중천금’과 ‘풍선껌’은 교묘하게 맞아떨어지고.
그렇더라도 풍선은 우리들 모두한테 꿈이었다. 참말로, 풍선은 <오즈의 마법사> OST인 ‘무지개 너머’를 늘 연상케 하는 꿈이었다.
1. 운동장에서 풍선
사실 풍선 없는 운동회는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풍선 터뜨리기’는 언제나 설레는 게임. 외간의 남녀가 한 쌍을 이뤄, 마주 보고 서로 임의롭게 껴안게 하는 데에는 풍선 터뜨리기가 그저 그만이었다. 가슴팍에다 풍선 하나를 집어넣고 격렬하게 껴안으면, 여인의 젖무덤이 사내의 가슴에 짖눌리는... . 나는 신혼여행을 떠나는 이들의 승용차에도 풍선으로 장식한다는 데 유의한다. 그 풍선은 첫날밤을 상징하는 의미가 충분하다.
2. 신격호(辛格浩,1921년 ~)의 풍선
그는 울산에서 5남 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부산공립직업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 가서 와세다 대학 부속 와세다 실업학교에 입학하여 졸업했다. 그 뒤 잠시 귀국했다가 곧바로 일본으로 건너가게 된다. 그는 평소에 좋아하는 연인 이름 ‘샤롯데’가 있었으나 샤롯데에서 ‘샤-’를 빼고 ‘롯데’라는 회사를 차리게 된다. 그는 처음 일본에서 시작한 것이 껌이었다. 사업을 시작하는 이때만 해도 배고픔이 먼저였던 전쟁 직후라 주전부리에 불과했던 ‘껌 사업’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들이 많았다. 하지만, 주변의 예상과는 달리, 일본 내에서 그가 개발한 ‘풍선껌’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성공하게 되었다. 풍선껌, 아니 풍선으로 출발한 롯데. 거부(巨富)이면 대수냐, 대기업이면 대수냐? 그의 아들들은 유산 문제로 낯 뜨거운 싸움을 벌이고 있으니, 그들이야말로 ‘남아일언 풍선껌’일까.
3. 토머스 핸콕((Thomas Hancock, 영국, 1786~1865)의 풍선
그는 영국 고무 공업을 일으킨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주요발명품인 분쇄기로 가공할 고무를 잘라서 작은 고무 조각더미로 만든 후 성형하거나 잘 펴서 고무판을 만들었다. 1821년에 완성된 이 공정으로 그는 스코틀랜드의 화학자이자 방수용 섬유의 발명자인 찰스 매킨토시와 동업자가 되어 방수용 제품을 생산했다. 이 제품 가운데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매킨토시(비옷)로 알려진 매킨토시 코트이다.
요컨대, 그는 상업적인 풍선을 만든 인물이다.
4. 제프 쿤스(Jeff Koons,미국, 1955~)
쇼맨십과 뛰어난 자기 홍보 능력으로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포스트모던 예술가다. 익숙하고 평범한 것들의 재창조를 통해 키치와 대중문화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였고 큰 작업실에서 100여 명의 직원들과 함께 작품을 만든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다. 그는 막대 풍선을 본떠 대형 풍선조각으로 히트를 하고 있으니... . 그렇게 만든 <풍선 개> 시리즈물 등이 대표작이하고 하고, 거액에 팔린다니!
하여간, 그는 풍선으로 재미를 톡톡히 보는 예술가임에 틀림없다.
5.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 영국, 1791~1867)의 풍선
사실 나는 패러데이에 관해 ‘크리스마스 강연’이란 수필을 이미 적어 인터넷 매체에 발표한 바 있다. 그의 업적은 대단하다. 인류 최초로 전동기(電動機)를 발명했다는 것만 하여도 우러름의 대상이다.
그는 전자기학과 전기화학 분야에 큰 기여를 한 물리학자이자 화학자이다. 패러데이는 어린 시절에 정식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지만, 역사적으로 매우 훌륭한 과학자로 남았다.
패러데이는 본래 물리학이 아닌 화학 공부를 먼저 시작했다. 그는 왕립협회의 화학과 조교로 임명되어 실험을 수행하면서 염소와 각종 기체의 성질을 연구했다. 수소의 성질을 연구하던 중 패러데이는 인류 최초로 고무풍선을 만들었다.
풍선은 그 이전에도 수백 년 전부터 존재해왔으며 창자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 냄새나는 장난감은 유럽의 중세 시대 궁정에서 광대들이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 막대기 끝에 매달아서 들고 다녔다. 패러데이의 풍선은 훨씬 더 위생적이었다. 그것은 두 겹의 고무를 용접해서 가방 모양으로 만들어졌는데 여기에 수소를 채워 넣으면 중력을 거슬러 공중으로 떠올랐다. 패러데이는 이것을 통해 기체의 성질을 관찰할 수 있었다.
풍선이 상업화된 것은 그로부터 1년이 지난 후에 고무 생산업자인 토머스 핸콕이 풍선 제작 용품을 생산하면서부터였다.
<패러데이에 관한 위 내용 출처 : 죽기 전에 꼭 알아야 할 세상을 바꾼 발명품 1001>
위에서 주욱 적은 나의 글을 정리해보자면, 이렇게 된다. 패러데이가 인류 최초로 고무풍선을 만들었고, 그 이듬해 핸콕이 풍선을 상업화 했으며, 그로부터 세기를 훌쩍 뛰어넘어 신격호가 풍선껌으로 벼락부자가 되었다. 그러다가 우리네가 풍선으로 온갖 놀이를 하게 되었고, ‘풍선 아트’까지 하게 이르렀다. 그러한 세태를 본(?) 제프 쿤스는 얄궂은 모방(?)으로 대형 풍선조각을 만들어냄으로써 ‘모더니즘 예술’이란 아름다운 이름 아래 떼부자가 되고 명성까지 얻었다.
돌이켜본즉, ‘크리스마스 강연’의 주인공이기도 한 패러데이는 길이길이 추앙받아야 할 위인이다. 풍선에 관한 모든 영광은 패러데이에게. 그에 관한 본인의 수필작품을 링크해 드리니, 다들 다시 한 번 읽어주시길.
‘크리스마스 강연(Christmas Lecture)’/ 윤근택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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