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이론/문장수련(문장이론)

수필로 쓰는 작은 수필론

윤근택 2017. 11. 14. 20:46

  

                         수필로 쓰는 작은 수필론

              - ‘-ic’ 수필 ,‘-()’의 수필-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일찍이 미국의 사회학자 윌리엄 필딩 오그번(William Fielding Ogburn,1886~1959)’<사회변동론>이란 책에서문화지체현상(文化遲滯現狀,cultural-lag)’을 이야기한 바 있다. 정신문명이 물질문명을, 혹은 비물질문화가 물질문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걸 이른다. 그런가 하면,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 (Jean Paul Sartre, 프랑스, 1905~1980)’실존은 본질에 앞선다고 하였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2000여 년 전 예수님께서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이르셨다.

30여 년 수필작가 행세를 하며 줄기차게 수필작품을 적어온 나. 문득, 위 삼인(三人)의 말에 귀 기울이게 된다. 문학비평가라고 하는 이들이 과연 그 동안 내가 적어 온 작품들을 제대로 평가했던가 하는 의구심과 함께. 이 이야기는 잠시 뜸을 들이기로 하고, 내 신실한 애독자들이 헷갈리리만치 엉뚱한 이야기를 펼쳐보아야겠다.

헨델과 함께 바로크 음악의 쌍벽(雙璧)을 이룬 요한 세바스찬 바흐(1685~1750)’. 그는 살아생전 1000여 편의 곡을 적었다. 그러나 그 1000여 편의 곡이 애당초부터 세상에 다 알려졌던 것은 아니다. 그의 사후(死後), 그것도 60여 년 후에 어떤 작곡가가 그의 악보를 찾아내면서부터 세상의 빛을 드디어 보게 되었다는 거 아닌가. 바로 멘델스죤(1809~1847) 덕분이다. 멘델스죤은 14살 생일날 자기 할머니로부터 필사본 악보를 선물로 받게 된다. 그 필사본 악보가 그 유명한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마태오 수난곡>. 명곡은 그렇게 해서 재발견되었다. 1925년 러시아의 작곡가 블라디미르 바빌로프는 미완성인 악보를 하나 발견하게 된다. 그는 그 작품을 개작하여, ‘카치니(Giulio Caccini, 1551-1618)’가 적은 완성작인양 발표하게 된다. 그게 바로 <아베 마리아>. <아베 마리아>는 다시 당시 무명(無名)의 여성 가수 이네사 갈란테 (Inessa Galante,라트비아 태생, 1954~)’의 데뷔작이 된다. 그녀는 그 곡으로 대히트를 하고, 세계적인 소프라노로 발돋움하게 된다. 노랫말에 아베’, ‘마리아’, ‘아멘딱 세 개만 들어있는 보칼리레(vocalize)’. 하나의 예만 더 들기로 하겠다. 이탈리아 음악학자이자 작곡가인지아조토 (Remo Giazotto,1910~1998)’알비노니(Tomaso Albinoni, 1671~ 1751)’의 필사본으로 추정되는 악보를 하나 발견하게 된다. 그는 그 악보를 손질해서 알비노니 아다지오 g단조로 발표하게 된다. 그 곡은 아래와 같이 일로 대성하게 된다.

참고적으로, 아래 내용은 본인의 수필 지아조토(알비노니) 아다지오 g단조일부다.

원문 읽기)

                  지아조토(알비노니) 아다지오 g단조

 

< 그는 베드란 스마일로비치라는 첼리스트였다. 당시 세계 주요 매스컴의 기자들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일제히 자국(自國)으로 타전(打電)했다.

 

‘1992527, 유고연방 탈퇴를 선언한 뒤 내전에 휘말린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사라예보에 연방 탈퇴를 반대하는 세르비아계 민병대가 쏜 폭탄이 떨어졌다. 빵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던 22명의 시민들이 이 테러로 목숨을 잃었다. 사고 다음 날, 피로 얼룩진 비극의 현장에 사라예보 필하모닉 연주단원 베드란 스마일로비치가 나타나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G단조를 연주했다.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시작한 이 연주는 그후 22일간 지속됐고 스마일로비치는 무사했다.’

피아(彼我)를 구분하기 어려운 난리통에, 희생자를 추모하며 연주하던 첼리스트. 그 누구도 총을 그에게 겨누지 않았고, 연주시간 동안에는 전투도 멈추었다.>

 

내 글이 다소 산만했다. 다시 미뤄뒀던 문학비평가들과 그들의 비평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온다. 다들 올바른 자세로, 제대로 남의 문학작품들을 평가하고 있는 것인지? 예술작품은, 당대에 평가받는 예보다는 그 예술품을 빚은 작가의 사후에, 그것도 꽤나 시간이 흐른 다음에 제대로 평가 받는 예가 많다. 어떤 미술평론가가 말하기를, 미술작품은 빚은 후 17년쯤 흘러야 제대로 비평할 수 있다고 하였다. 외국어가 외래어로 정착하는 데에도 10여 년의 시간이 요한다고 들었다. 음악인들은, ‘연주한다라는 말 대신에 해석한다는 말을 곧잘 쓴다. 사람의 임신기간은 280여 일이다. ‘서로 아는 알음등으로 인해 내키지 않으면서도, ‘꿈보다 해몽 형태의 서평(書評) 또는 작품평(作品評)을 마구 적어대지는 않는지? 내가 다시 이야기하지만, 다들 문화지체현상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를 한번쯤은 고민해보아야지 않겠나. 달리 말하지만, 그 많은 이론에 앞서 작품은 이미 세상에 나왔고, 그 작품을 해석하고 연구코자 이론이 뒷받침되어야 정상(定常)이라는 거. 그러한 점에서 내가 30여 년 빚어낸 여러 장르의 수필작품을 제대로 해석해낼 문학비평가를 여태 만나지 못하였다. 내가 이 세상을 뜬 이후에나 올까말까 한 수필평론가. 이는 나의 오만(傲慢)이다. 사실 몇 몇 분의 문학비평가들이 나의 수필작품에 관해 이러쿵저러쿵 달콤한(?) 글을 쓴 적은 있으나, 그것조차도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한사코 달려가고 있는데, 그들은 나를 뒤따라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더라는 거. 그러니 예수님께서 이르신 대로, ‘새 술은 새 부대에.’가 지극히 마땅하다.

저 브라질의 빌라 로보스요한 세바스찬 바흐를 너무도 좋아한 나머지 브라질풍(-)의 바흐를 적었다. 저 스페인의 호아킨 로드리고는 자기 나라 17세기 기타연주자이자 작곡가였던 산츠를 너무도 존경했다. 그래서 어느 귀인을 위한 환상곡을 적고, 2악장에다 산츠의에스파뇨레타(Espanoleta)’를 원용(援用)했다. 이를 풀이하면 에스파냐풍(- )’또는 에스파냐풍으로가 된다. 오미자(五味子)는 다섯 가지 맛을 지녔다고 해서 생긴 이름, 팔색조(八色鳥)는 여덟 색채를 띤다고 하여 생긴 이름. 그리고 고래고기는 부위마다 맛이 다르다고 하였다. 나는 감히 말한다. 윤근택 수필가의 글 가운데에는 ‘academic’한 게 있는가 하면, ‘농부풍(農夫風)’내지 시골풍의 것도 있다. 그밖에도 나의 글 가운데에는 논리적인 것도 있고, ‘서정적인 것도 있다. 참말로, 다양한 장르의 수필작품을 써왔다. 내 자랑을 많이도 늘여 놓았다. 다들 어쩔 텐데? 30여 년 줄기차게 수필작품을 적어왔는데, 이런 배짱 하나 없어서야 쓰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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