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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수필가,<道德經> 제 22장을 읽다

윤근택 2017. 11. 24. 21:40

 

 

                     윤 수필가,<道德經> 22장을 읽다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요 며칠째 마음이 심란하던 차에, 문득 노자(老子)가 떠올랐다. 해서, 그분의 가르침을 한 차례 겅중겅중 읽으면서 마음의 평정(平靜)을 서서히 되찾아가고 있다.

잠시 노자(老子) 출몰에 관한 전설(?)을 더듬어 보고,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자.

기원전 604914, 중국 초나라 고현의 여향 곡인리에서 한 여인이 자두나무[李樹]에 기댄 채 아이를 낳았다. 그런데 이 아이의 어머니는 떨어지는 별을 찬양하면서 62년 동안 임신해 있던 상태였고, 그때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말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아이는 주위의 자두나무를 가리키며,“나는 이 나무를 따서 성()을 짓겠다.”하고 말했다.

그 후 그는 자두나무[]에다 자신의 큰 귀[]를 상징하는 이름을 붙여 스스로 이름을 이이(李耳)’라 했다. 그러나 그의 머리칼은 벌써 하얀 눈처럼 희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두고 노자라 불렀다. ()는 늙었다는 뜻이고, ()하늘의 아들이라는 뜻을 가진 존칭어다.

(이상은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따옴.)

 

어쨌거나, 노자는 예수님, 부처님, 루소 등의 인물들보다 여러 세기 전에 태어난 것만은 확실하다. 그분이 적었다고 전하는 <道德經> 은 총 5,400자이며, 보통 81장으로 나누고, 1~37장을 상편, 38~81장을 하편이라 한다. 상편을 <道經>, 하편을 <德經>이라고 부른다. 그 가르침의 깊이는 어지간하다.

나는 그 가운데에서 제 22 장을 중심으로 음미하게 되었다.

 

 

曲則全, 枉則直, 窪則盈, 幣則新, 少則得, 多則惑.

是以聖人抱一爲天下式, 不自見故明, 不自是故彰, 不自伐故有功, 不自矜故長, 夫唯不爭, 故天下莫能與之爭.

古之所謂曲則全者, 豈虛言哉?

誠全而歸之.

어느 전문가의 풀이를 살펴본다.

 

<曲則全(곡즉전) : 휘면 온전할 수 있고,

枉則直(왕즉직) : 굽으면 곧아질 수 있고,

窪則盈(와즉영) : 움푹 파이면 채울 수 있게 되고,

幣則新(폐즉신) : 헐리면 새로워질 수 있고,

少則得(소즉득) : 적으면 얻을 수 있게 되고,

多則惑(다즉혹) : 많으면 미혹을 당하게 된다.

是以聖人抱一爲天下式(시이성인포일위천하식) : 그러므로 성인은 도() 하나를 품음으로써 세상 사람들의 본보기가 된다.

不自見故明(부자현고명) : 스스로 드러내지 않기에 밝게 빛나고,

不自是故彰(부자시고창) : 스스로 옳다 하지 않기에 돋보이고,

不自伐故有功(부자벌고유공) : 스스로 자랑하지 않기에 그 공로를 인정받게 되고,

不自矜故長(부자긍고장) : 스스로 뽐내지 않기에 장구(長久)하다.

夫唯不爭(부유부쟁) : 다투지 않기에

故天下莫能與之爭(고천하막능여지쟁) : 세상 사람들이 그와 다투지 못한다.

古之所謂曲則全者(고지소위곡즉전자) : 예로부터 이른바 휘면 온전할 수 있다고 한 것이

豈虛言哉(기허언재) : 어찌 빈말이겠는가?

誠全而歸之(성전이귀지) : 진실로 온전함을 보존하고 도()로 돌아가라. >

 

또 어느 전문가는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휘면 온전할 수 있고,

굽으면 곧아질 수 있고,

움푹 파이면 채울 수 있게 되고,

헐리면 새로워질 수 있고,

적으면 얻을 수 있게 되고,

많으면 미혹을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성인은 하나로 품음으로써 세상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고,

스스로 드러내지 않으므로 밝게 빛나고,

스스로 옳다 하지 않으므로 돋보이고,

스스로 자랑하지 않으므로 그 공로를 인정받게 되고,

스스로 뽐내지 않으므로 장수(長壽)하며,

무릇 오직 다투지 않으므로

세상 사람들이 그(성인)와 다툴 수 없다.

옛 성인이 이른바 휘면 온전할 수 있다고 한 것이 어찌 빈말이겠는가?

진실로 온전하게 하려면 굽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참으로 기막힌 가르침이 아니냐. 22장의 내용 가운데에서도 앞부분은 우리네가 곧잘빈 잔은 곧 채워질 것이다.’, ‘달도 차면 기운다.’등으로 바꾸어 말하고 있지 아니한가. 현재의 모자람이나 불완전이 곧 채워짐과 완전해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가르침. 그러니 지금 내가 잠시 느끼는 실직(失職)으로 인한 헛헛함이나, 나를 실직케 한 어떤 이의 모함 내지 악다구니에 대한 노여움 따위는 거두어들임이 옳다. 내가 참소리 한 걸 후회할 것까지도 없고. 언제고 새로운 길은 내 눈앞에 펼쳐져 있으니까. 그리고 내 삶은 언제고 새로운 출발에 불과한 것이니까. 굳이 말하자면, 나는 위 노자의 가르침인 제 22장을 음미하면서, ‘전화위복(轉禍爲福)’을 생각하고 있다. 앞으로 더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믿음.

마치 주문(呪文)을 읊듯, 노자의 위 가르침 앞 부분을 거듭거듭 읊어본다.

휘어져 있으니 반듯해질 테고, 굽어 있으니 곧아질 테고, 움푹 파였으니 채워질 테고, 헐리었으니 새로워질 테고... .’

<道德經> 1장부터 제 81장까지 면면히 [綿綿-] 이어지는 노자의 역발상(逆發想)’에 감탄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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