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 전정(剪定)을 하며
감나무 전정(剪定)을 하며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미리 40대 중반에 은퇴를 준비하여, 오로지 발품을 팔아 산 나의 밭,‘만돌이농원’. 돌이켜보니, 벌써 15여 년 세월이 흘러갔다. 그 전체 면적은 800여 평 되나, 남들이 버린 묵정밭 등을 주워보태(?) 짓는 농토는 수 천 평 된다. 혼자 손에 벅찰 정도이다. 그렇게 주워 보탠 농토 가운데에는 ‘씨없는 쟁반감[盤柹]’밭 300여 평도 있다.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이, 쓸어안은 내 소유의 밭 가장자리에도 마찬가지로 씨 없는 쟁반감이 20여 그루 서 있으니, 이 두 밭뙈기의 감나무 그루 수는 꽤 많은 셈이다. 해마다 감 수확량도 여러 톤에 이른다.
애초 내가 그 남의 감나무밭을 관리하자, 아내를 비롯한 내 살붙이 및 피붙이들은 한사코 말리곤 하였다.
“주인이 언제 도로 달라고 할지도 모르는 그 밭. 그러니 가지 자르고 농약 치고 ... 알뜰히 관리할 게 뭣 있어? ”
하지만, 내 생각은 아주 달랐다. 전세를 살든 사글세를 살든, 현재 내가 사는 집은 ‘자가(自家)’이듯, 내가 부치는 동안은 ‘나의 감나무밭’이라고 대답하곤 하였다. 그대로 놔 두었더라면, 그 감나무들은 저 창망(滄茫)한 하늘 끝까지 웃자랐을 것이고, 병충해 등으로 말미암아 고사목(枯死木)이 되었을 터인데... . 해마다 전정으로키를 낮추고, 때맞춰 병충방제를 하는 등 관리를 함으로써 가을마다 내 호주머니를 제법 채워주니 대견할 따름이다.
감 수확을 끝내고, 일부는 생감으로 내다팔고, 대부분은 감 박피기를 가동하여 ‘감말랭이’로 가공을 하는 등 일련의 작업을 끝내자, 12월 중순이 되었다. 나는 그 감나무 곁으로 가서, ‘감사의 비료’를 발치에다 한바탕 주었다. 부디 원기를 회복하여 내년에도 열매를 많이 달기를 기원하며 그리하였다.
한겨울임에도 내 농사일정에 따라, 요즘은 감나무 전정을 하고 있다.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 알려드릴 게 많다.
첫째, 통념상, 관습상 감나무는 전정을 아니 하여도 잘만 된다고들 하는데, 그것은 바람직한 생각이 아니다. 사실 감나무는 여타 유실수들과 달리, 자기 체력에 부치면, 여름날‘땡감’을 주루루 떨어뜨리는 습성을 지녔다. 이를 ‘생리적 1차 낙과’라고 한다. 감나무는 아주 영리한 나무다. ‘감’이 영어 ‘going’과도 통한다. ‘땡감도 가고 익은 감도 가고 영감도 가고’ 이니까. 쉽게 말해, 감나무는, 젖꼭지는 두 개인데 셋쌍둥이 이상을 낳은 어머니의 형국이 되는 걸 미연에 방지하는, 자기보호 본능을 여지없이 발휘하는 나무다. 그러니 따로 적과(摘果)를 인위적으로 해주지 않아도 되는 걸로 알고들 지낸다. 하지만, 십 수년째 감 농사를 해왔던 경험에 비춰 보면, 전정을 제대로 해야 이듬해 풍성한 수확을 볼 수 있다.
둘째, 감나무는 이른바 ‘잠복아(潛伏芽)’를 지녔다. 가령, 껍질이 두꺼운 아름드리 감나무일지라도, ‘마루타’ 즉 ‘통나무’처럼 중간을 베어버리더라도, 이듬해에 그 두꺼운 껍질을 뚫고 새순이 나온다. 그러나 그 새순들은 ‘더북나기 가지’즉 ‘도장지(徒長枝)’가 되어, 영양분을 그곳으로 집중시키고 만다. 농사 전문용어로는, ‘강전정(强剪定)’·‘약전정(弱剪定)’으로 부르게 되는데, 대체로 ‘단감’은 강전정을, 일반감은 약전정을 행한다. 각각의 습성 때문에 그리 하여야만 한다. 그 도장지를 겨우내 일제히 제거하는 것도 꽤나 중요하다. 강전정은 그러한 부작용을 낳기에 조심스레 행해야 하고.
끝으로, 감나무의 꽃피우는 습성은 특이하다. 여러 해 경험해본즉, 햇순이 먼저 나오고 거기서 1차,2차,3차 ... 6차 잎이 나온 연후에 꽃을 피우더라는 거. 위 ‘둘째’의 내용과 결부시키면, 겨우내 알뜰히 잔가지를 ‘고지전정가위(高枝剪定-)’로 잘라주면, 거기서 새순이 나와서 아주 이상적(理想的)인 ‘꽃맺힘’으로 이어지더라는 거. 사실 해마다 가을이면, ‘고지전정가위(高枝剪定-) 겸 감집게’로 ‘감 알’을 잔 가지째 따 내리기에, 일차적인 ‘대충 전정’은 이뤄지기는 하지만... .
사실 이밖에도 내 경험상으로, 들은 풍월로 챙긴, 감나무 관리에 관한 지식도 많으나,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서 질릴세라, 다 생략키로 한다. 대신, 지금부터는 내가 여느 해보다도 더 정성껏 감나무 전정을, 그것도 이 한겨울에 하는 이유에 관해서 이야기하겠다. 요컨대, 나는 감나무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거. 내가 또 어떤 어려움 즉 실직에 처해 있어, 활로를 모색한다는 거. 한 때 낚시광이었던 나는 연못, 소(沼), 바다 등의 바닥의 생김새와 거기 노니는 물고기들의 양태(樣態)를 상상하곤 했다. 강태공이면, 대체로 나와 같은 상상들을 하리라.
‘바닥은 이렇게 이렇게 생겨먹었을 거야! 밑밥은 이러한 꼴로 퍼져 있을 거야! 내가 가라앉힌 추가 닿은 곳은 물고기의 집일 거야!’
마찬가지다. 나는 감나무 아래에서 그 가지들의 생김새를 보며, 전혀 서두르지 않고 한 가지, 한 가지를 조심스레 베어 낸다.
‘내가 이 굵은 ‘속가지’를 베어내면, 감나무는 그 가지와 대칭을 이룬 땅 속 뿌리를 그만치 도태시킬 거야! 이렇게 이렇게 자르면, 저 가지가 대신에 더 뻗어나가서, 열매를 균형 있게 달 거야! ’
다시 두어 걸음 뒷걸음쳐서 감나무 가지를 다시 올려다보고, 다시금 다가가 한 가지 또 한 가지를 잘라내는 등 서두르지 않는다. 생각해보니, 그 많은 농사일 가운데에서 전정만은 결코 서둘러서는 아니 되겠다는 거. 과일나무와 끝임 없는 대화를 나누며 행해야 하 게 전정.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 감나무 전정을 하며 깨달은 게 또 있다는 걸 전한다. 이는 귀중한 정보이기도 하다. 마침 올해는 감이 풍년들어 가격이 폭락했다. 그러자 저 아랫녘 농부들이 단감을 따지 않고 나무째 통째로 버린 사례가 많다고 들었다. 그러한데 그 농부들은 내년 봄에 인부를 사서라도, 그 쭈그렁 단감을 감집게로 다 따낼 거란다. 왜 그리해야만 되느냐고? 내가 위에서 ‘첫째’, ‘둘째’, ‘끝으로’ 하며 밝힌 내용과 깊은 관련이 있다. 가을에 감을 따지 않음으로써 전정 또한 빠뜨렸기에, 꼭히 새봄에 전정을 따로 해야 한다는 거. 자, 나는‘악순환(惡循環)’을 ‘선순환(善循環)’으로 돌려야 하는 지혜를 지금 말하고 있다.
“ 저 감나무는 해마다 병도 잘 걸리고 과일도 제대로 달지 않던 걸 뭐!”
결코 팽개쳐서는 아니 된다는 거. 그 유명한 ‘4-H’정신인 ‘좋은 것은 더욱 좋게!’를 위해서라도, 나는 감나무 전정을 게을리 할 수가 없다. 감농사가 제대로 되지 않은 해일수록 전정과 농약살포를 더 신경써야만 한다는 것을. 이러한 나의 생각은, 전래동화 ‘3년 고개’에도 맞닿아 있다. 그 ‘3년 고개’를 다 함께 재음미해보았으면 한다.
< 그 산골마을엔 ‘3년 고개’가 있었다. 전설에 의하면, 그 고개를 넘다가 굴러 떨어지면,3년밖에 못산다고 하였다. 어느 날 한 노인이 그 고개를 조심조심 넘다가 실수로 굴러 떨어졌다. 노인은 그길로 죽을 것 같은 두려움으로, 시름시름 앓게 되었다. 용한 의사가 왕진(往診)했으나,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그런데 철딱서니 없는(?) 이웃 꼬맹이가 노인한테 찾아와서 아주 맹랑한 말을 하게 된다.
“할아버지, 그 고개에 가시어 한 번 더 굴러떨어지세요. 그러면 ‘3X2’이니, 앞으로 6년을 더 사실 거에요. 그러기를 여러 번 하세요. 그러면 앞으로 100년은 더 사실 걸요?”>
과연 꼬맹이는 지혜로운 아이였다. 내가 이 한겨울, 복면강도인양 두 눈만 내어놓고, 빵모자를 쓴 채 감나무 아래로 ‘고지전정가위’와 ‘고지전정톱’을 들고 자주 가는 이유. 그것은 그 꼬맹이의 지혜를 본받아서이다. 무슨 일이든 그 결과가 이번에는 좋지 않거들랑, 후일을 기약하며 재시도(再試圖), 삼시도, 사시도 하는 게 인간인 우리의 몫.
끝으로, 다시 한 번‘4-H의 정신’을 읊으면서, 이 글을 줄이고자 한다.
‘좋은 것은 더욱 좋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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